(4) 리투아니아(Rituania)
4. 리투아니아(Lituania)
발틱 3국 중 가장 넓은 면적에 인구도 많은 편이다. 면적은 6만 5,200㎢, 인구는 335만 명 이다. 18세기 말 폴란드에서 분할할 때 러시아에 합병 되었다. 제 1차 대전 후 독립하였으나 1944년에 가서 다시 소련에 병합되었다. 합병 당시 독일에 협조 하였다고 3만 가구나 시베리아로 강제 이주 당했고, 12만 명이 국외로 추방되었다.
1991년 소련연방 해체로 독립을 하였으나 그 해 1월 소련군이 침공하여 13명이 사망, 700명이 부상을 당하면서 강렬하게 저항 하였다. 마침내 91년 9월 17일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와 함께 독립을 하여 UN에 가입. 2009년 5월 17일 총선에서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였다.
이 나라는 중세 시대인 1420년 대에는 오늘날 벨로루시와 우크라이나에 이르는 대공국을 건설한 바가 있다.
라트비아 국경을 넘어 A12 E77 도로를 따라 리투아니아의 “샤울레이”(Siouliai) 로 간다. 샤울레이 37 km 지점에서 우회전, 도로 십자가 4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십자가 언덕” 주차장에 이른다.
( 사진: 샤울레이 언덕에 대형 십자가 모습)
1) 샤울레이 십자가 언덕: 1831년에 리투아니아가 러시아에 항거하다 희생된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 동산을 조성한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결혼식 후 신혼부부가 십자가를 들고 참배하는 장소로 되어 있다. 이 곳은 리투아니아의 슬픈 수난의 역사를 간직한 민족의 성지다.
발틱 3국은 독립과 자유를 위해 1989년 8월 23일 리투아니아 수도 “빌리우스”로 부 터 라트비아의 “리가”를 거처 에스토니아의 “탈린”을 잇는 620 km의 “발트의 길”에 이 지구 상에서 가장 긴 인간사슬, 즉 인간 띠를 형성하여 소련에 대항하여 자유와 독립을 외쳤다.
그 길 위에서 발틱 3국의 사람들은 “Laives<자유>Freedom”을 목메어 외침으로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거대한 자유의 물결을 형성하였다. 수 백 년간 열강에 다툼 속에 짓밟힌 그들의 자유와 독립의 외침이 전 세계를 감동 시켰다. 이 인간사슬은 발틱 지역의 새로운 역사를 이루는 출발점이었다. 우리는 탈린에서 부 터 바로 이 자유의 길을 따라 답사하는 것이다. 이 인간사슬의 시발점은 바로 빌리우스 대성당 앞이다. 우리는 이제 이 길을 따라 역사의 준엄함을 몸으로 체험한다.
(사진: 십자가를 세우려고 샤울레이를 방문한 신혼부부)
십자가의 언덕은 1861년, 1863년의 농민봉기가 계기가 되었다. 러시아의 수탈에 견디지 못한 농민들이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으나 진압되었다. 반란이 진압된 후 가족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이곳에 십자가를 세우고 가족의 무사귀환을 빌었다.
1944~90년 까지 리투아니아 국민들이 이곳에 십자가를 세우는 것이 애국운동 이었으며 소련의 지배를 벗어나려는 염원이었다. 소련은 이곳에 십자가를 수시로 없앴으나 리투아니아 인들은 밤에 몰래 갔다 놓았다. 그 숫자는 늘어만 갔다. 1991년 독립이 된 후 이 언덕은 성지가 되었고 1997년 교황 요한 바오르 2세가 이곳을 방문하여 평화를 상징하는 표시로 십자가를 놓고 갔다. 독립 후로는 신혼 부부가 이곳에 와서 십자가를 세우고 행복을 비는 코스가 되었다.
현재 이 언덕에 있는 십자가들은 대형이 약 25,000여 개, 작은 십자가가 41,000여 개로 추산되고 있으며 리투아니아 인의 영원한 성지이다.
이제 십자가 동산을 떠나 A12 E77 도로를 따라 카우나스로 간다. Kaunas 108 km 지점 에서 우회전, A7 E85 도로로 끝없는 평야를 달린다. 17:57분 Kaunas 시내로 들어와 A5 E85 도로로 계속 간다. 이 도로는 빌니우스(Vilnius) 까지 연결된다. 숲이 무성한 곳에는 드문 드문 농가 주택이 있다. 우회전하여 시내로 들어와 Kaunas Hotel에 들어오니 18:00.
저녁식사는 호텔 지하 레스또랑에서 하기로 한다. 이 지역은 소련 치하에서 보드카 생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레스또랑 입구에 보드카 생산 시설과 술통이 전시되어 있다. 저녁은 이곳의 감자요리, 소고기 요리에 보드카 한잔씩이 제공된다. 추가로 와인 한 잔씩을 마시니 기분 고조. 식 후 구시가지 입구까지 산책을 하고 돌아와 일정을 마감한다.
이곳에서 카우나스 대학교 한국학 강사를 안내자로 만난다. 멀고먼 낫 선 곳에서 한국어를 하고 이곳 사정을 잘 알고 우리나라를 소개하고 한국에 발틱 국가를 소개하는 선구자적인 일을 한다.
Kaunas는 인구 30만의 리투아니아의 제 2의 도시다. 이 나라의 처음의 수도였다.
이 튼 날 아침 이 중세도시의 문화유적을 탐방한다.
1) 로마스 카란타(Romas Kalanta 1972년): 1943년부터 소련에 합병 되어 1972년 까지 갖은 학정에 시달리다 조국의 자유와 해방을 외치며 분신 자살한 “로마스 칼란타”를 기념하는 공원으로 간다. 공원 바닥에 검은 오석으로 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후 독립하면서 그의 거룩한 죽음을 기리기 위해 기념물로 주변에 돌이 19개가 놓여 있다.
(사진: 공원바닥에 새겨진 Romas Kalanta 기념비)
길 건너에도 동상이 서있는데 이는 폴란드 침공에 저항하였던 “비타오타스”(Vytautas) 공작의 것이다. 이제는 구 시가지 입구 빌니우스 대로로 간다.
2) 대통령 궁: Kaunas는 1921~38년 까지 리투아니아의 초창기 수도로서 이곳 카우나스에서 3명의 대통령이 탄생한 것이다. 스메토나스, 스웨트나 와 다른 한 명의 대통령의 동상이 궁 앞 공원에 세워져 있다.
3) Kaunas 대 성당(바울 대성당): 14세기 경에 건축한 고딕 양식의 건물이다. 그 후 개축하면서 로마의 건축 양식이 가미되었다. 이 성당은 하얀 백조라고도 부른다. 이 성당은 “Vytautas” 공작이 설립한 곳으로 1993년 교황 바오르 2세가 방문하였다.
성당 안에는 중앙 제단에 예수상. 그의 제자 4명의 조각은 돔 아래 밝은 곳에 서있어 엄숙한 분위기를 더한다. 메인 홀 기둥마다 둘레조각이 장식되었다. 일요일
(사진: 카우나스 대성당 앞에 조각상)
4) St. Francesco 성당: 15 세기 말의 바로크 양식 건물. 예수회 성당에서 프란체스코 공회에서 사용한다. 소련의 점령 시에는 다른 용도로 쓰였다가 리투아니아가 독립 후 성당으로 사용한다. 내부의 규모는 적으나 중앙의 십자가의 예수상, 그 양쪽으로 황금색의 고딕 장식의 대리석 기둥이 7개씩 양쪽에 서 있어 무게를 더해 준다.
5) 페루쿠나스의 집: 15 세기 한자동맹의 상인들이 조합 건물로 세웠다. 수도원 부속건물이 되면서 고딕양식의 건물로 새로 났다. 당시에 천둥을 치는 신인 “페르쿠나스”를 모신 곳으로 판명되면서 “페루쿠나스의 집”으로 불리게 되었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된다.
6) 성모 승천 기념 성당: 리투아니아에서 마지막 고딕양식의 건축물이다. 제정 러시아 시대에 정교회로 바뀌는 등 수난을 많이 당한 성당이다. 1993년에 가서야 다시 성당으로 되돌아 왔다. 내부는 검소한 편으로 미사가 진행 중이다. 바깥 벽에는 하얀 미터 표시 판이 벽에 그려져 있는데 이는 성당 아래로 흐르는 강이 범람하였을 때 물이 차오른 표시이다.
7) 나무 십자가: 세계 무형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십자가로 아래로 부 터 5단 위에 나무 십자가. 태양을 상징하는 햇살 식 나무가 둘레에 퍼져있고 가운 데에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상이 조각되어 있다.
8) 성 조지(St. George) 성당: 가축의 수호신을 모신 성당으로 15세기의 고딕 양식 성당이다. 연속하여 수난을 받았으며 3번이나 화재가 났다. 소령 점령 시에는 창고로 사용하다가 1990년에 가서야 다시 성당으로 환원되었다. 지금은 “노르웨이”의 출연금으로 복원공사 중이다.
9) 통일 광장: 1921년 독립당시의 기념으로 통일 광장이 조성 되었다. 중앙의 큰 동상은 독립기념으로 만들어져 횃 불이 그 앞에서 계속 타오르고 있어서 정장을 한 노병 2명이 지키고 있다. 양 옆으로는 독립 용사들의 업적을 기리는 흉상이 여러 개가 서 있다. “타우칸타스” 같은 리투아니아의 역사가의 흉상, 민속학자의 흉상 등 리투아니아를 빛낸 사람들의 추모 공원이다. 탑 우측으로는 종탑이 서있고 11:00시 정각의 되니 종이 울린다. 건물 앞에는 좌, 우에 사지상이 있고 양 옆으로는 10 여문의 대 소 대포가 전시되어 있다.
(사진: 통일 광장에 타오르는 불꽃-노병이 근무 중)
10) 악마 박물관: “즈무이지나 비츄스” 라는 작가가 평생에 수집한 악마 상들을 모아 논 곳. 도깨비에 가까운 악마, 악마가 사람을 쫏아가는 모습, 악마한테 잡힌 사람 등 다양하고 재미있는 악마들이 목재모형으로 전시되어 있다. 목제로 된 “Samogitian Devel” 은 1906년에 제작된 것으로 뿔이 나고 삼지창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2층에는 리투아니아 영토를 밟고 있는 “히틀러”와 “스타린”의 모습이 나무 조각으로 조각되어 그들의 야욕을 악마로 표시하여 보여 주고, 악마의 탈과 탈을 쓰고 춤을 추는 악마들의 군상이 전시되어 있다. 3층에는 외국에서 수집해온 악마와 탈이 전시되어 있다.
11) 트라카이(Trakai) 성: 트라카이는 2번째의 수도였다. 이 지역은 호수가 200여 개가 넘는 지역으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리투아니아 공작이 거주 하던 성으로 14 세기 독일 기사단의 침입으로 폐허로 방치되었다가 1910년에 복원된 곳이다. 입구에 이르니 “비타우타스” 공작의 목상이 서있다. 입구 아래로는 해자가 만들어 졌고, 성 안팎은 붉은 벽돌로 쌓았다. 방의 천정은 둥글게 아라베스크 식으로 벽돌로 쌓았다.
(사진: 갈베 호수에서 본 트라카이 성 전경)
벽에는 전투에 나가는 비타우타스 공작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당시 성내에서 쓰던 각종 소도구, 망치, 도끼, 칼, 낫 등이 전시되어 있다. 또 리투아니아 인들과 폴란드 군인과 싸우는 장면이 모형으로 길게 만들어 져 있다. 또 다른 방에는 중세 시대에 사용되었던 동전들이 전시되었다. 트라카이 시대의 기사들이 입던 복장도 전시되었고, 그 당시의 법 집행과정, 즉 재판을 진행하는 모습이 모형으로 만들어 졌다.
이 성이 중세 이후 폐허에서 1902년~1987년 까지 5단계를 거처 복원되는 과정을 그림과 자재들도 전시되었다. 마지막 방에는 리투아니아 나라 상징의 문양 그림이 전시 되었다.
밖으로 나와 성의 바깥으로 외부를 한 바퀴 돌아보니 이 성은 호수로 둘러 쌓여 완전히 요새 형태로 되었다. 성을 돌고 나서 이번에는 갈베 호수에서 돚으로 움직이는 요트 유람선을 타고 호수 한 가운데로 나오니 이 성의 위치가 호수 섬의 한가운데로 망루와 성 내부가 완전히 둘러 쌓인 요새를 다시 한번 확인 할 수 있었다.
트라카이 성을 방문한 후 수도 “Vilnius” 시내로 들어간다. 에리스 강 너머로는 신 시가지로 고층 건물이 즐비하다. 오른쪽은 구 시가지다. 18:00 시경에 구 시가지 안에 “Naturis Hotel”로 들어간다. 이 호텔은 중세 시대의 건물로 리 모델링하여 숙소와 레스또랑으로 사용한다.
저녁은 호텔에서 나와 “Kletis” 중세식 레스또랑 에서 갖기로 한다. 170년이나 된 오래된 곳이다.
식사 전에 5가지 전통 주를 제공하면서 중세시대 부 터의 전통 음식점임을 과시한다. 소고기, 되지 고기, 오이피클, 감자의 맛이 일품이다. 식사 후에 2인조 악사가 등장하여 아코디언과 기타로 민요를 연주하며 노래도 부른다. 연주에 맞춰 젊은 남, 녀 둘이 등장하여 전통 춤이 이어지고, 빠른 템포로 손바닥을 마주치며 경쾌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리투아니아의 민요 “사랑의 고백”, “봄 봄” 등의 노래가 이어지면서 다 함께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고조 시킨다.
우리 에게도 민속악기를 나눠주고 다 함께 리투아니이식 폴카를 연주한다. 30 여분의 연주와 춤으로 여행의 절정을 장식한다.
Lituania 의 수도 Vilnius
오늘은 빌리우스 시내를 걸어서 하나하나 유산을 답사해 나간다. 도시 전체가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되어 있다.
1) 베드로, 바울 성당: 1668년 부 터 7년간 건축한 성당이다. 건축가 “잔 짜오”(Jan Zaor)가 설계하였다. 외부로는 평범한 성당 건물로 보인다. 그러나 내부는 이태리 조각가 “피에르트로 파르티”(Piertro Perti)거장의 지휘아래 2000여명의 조각가 들이 석고와 대리석 가루의 혼합으로 성당 돔과 벽면을 200여 개의 조각과 후레스코화로 장식 하여 최고로 화려하다.
(사진: 베드로, 바울 성당 전경)
제단은 바울과 베드로의 그림으로 장식하였다. 조각 상은 성자들의 것이고 천정에는 성경과 역사, 신화 등의 이야기를 그리고,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군인들의 모습, 동 식물 등 다양한 상생화의 단면이 석고로 조각되었다. 성전에는 부활하는 예수가 조각되어 있다. 또 교황 바오르 2세가 방문하여 그의 초상화가 오른쪽에 걸려있다. 외관상으로는 왼쪽이 시계탑의 대칭으로 되어 있고 노란색의 건물로 입구의 바로크 형태의 조각이 특이하다.
2) 십자가의 언덕: 샤울레이 언덕의 십자가와는 달리 십자가 3개가 솟아있는 언덕이다. 리투아니아가 이교였을 때 처음으로 기독교 선교사가 이 나라에 와서 선교하다 죽었다는 곳이다. 이곳에다 선교하다 순교한 기념으로 세운 것이다. 이 언덕은 빌리우스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이다.
3) 국회의사당: Seimas(국회) 로 3층 규모의 건물이다. 게디미나스 대로를 지나 이 도시의 중심대로에 있다. 러시아 지배 시에는 레닌 대로로 불리었다. 9번 건물은 시청이었으나 지금은 백화점으로 변신하였다. 이곳은 벌써 가을로 넘어가 가로수가 빛을 잃기 시작한다.
의사당 앞면에는
4) KGB 박물관: 독립 투쟁 당시 소련 비밀 경찰 KGB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의 명단이 박물관 외벽 기단 화강석 3계층에 새겨져 있다. 이날이 월요일 이라 휴관이어서 유감이다. 건물 아래 지하층은 당시 비밀 감옥으로 고문이 자행되고, 처형하였던 곳으로 이렇게 이제는 박물관으로 거듭 났다.
(사진: KGB 박물관 아래 기단에 새겨진 투사들의 명단)
왼쪽의 명단은 독립 투쟁 시 빨치산의 역할을 한 투사이고, 오른쪽은 독립 투쟁 시 희생자들이다. 돌에는 희생자들의 이름과 태어난 해와 죽은 해가 새겨져 있다. 모두다 20~30대의 청년들로 조국을 위해 산화한 것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또 리투아니아 인들은 훗날 이 근처에서 재판 없이 죽은 740여 명의 유골을 발굴 하였다. 당시에는 소련에 의해 해외로 추방하거나 시베리아로 유형에 처한 수 많은 애국자들이 있었다.
5) 바실리카( Basilaca) 대성당: 1251년에 “민다오가”(Mindaugas) 대 공작이 최초로 이곳에 성당을 지었다. 그 후 성당이 로마네스크에서 고딕 양식으로 변하면서 중축을 거듭했다. 그 후 1387년 리투아니아가 기독교화 하면서, 1419년 화재 이 후 “Vytautas” 공작에 의해 고딕 성당으로 재건 되었다.
(사진: 바실리카 대성당 전경)
소련 체제하에서 1950년에 성당은 폐쇄되었고 그 후 미술관으로 사용되다가 1989년에 와서야 다시 카도릭 성당으로 돌아왔다. 이 성당은 리투아니아의 정신적 지주이다. 성당의 전면과 측면은 조각으로 장식 되었다. 가장 아름다운 조각은 가운데 입구 기둥 뒤에 벽감(壁龕)에 있는 아브라함, 모세, 요한 등 3인의 조각상이다. 그 아래로도 좌,우로 각 3 인의 조각상이 장식되어 상스러움을 더해준다.
내부로 들어가니 간소하고 깨끗한 장식으로 양면 벽에는 프레스코 성화가 가득하다. 뒷면 벽에는 대형 성화가, 앞 기둥에는 길이로 된 성화가 기둥마다 가득하다. 천정은 둥글게 X 자식의 아라베스크의 흰 문양으로 장식되어 운치를 더해준다.
특히 기둥 위에 골고다로 향하는 예수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표정이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
이 성당은 중국산 대리석으로 앞면의 바닥을 깔았다. 성당 앞 대리석 바닥에 있는 “Stebukala” 라는 표시는 이곳이 1989년 발틱 3국의 “인간 띠” 항쟁의 시발점이다. 이 바닥 표시 점에 올라서서 한 바퀴 돌면 소원을 이룬다는 믿음이 퍼져 있다. 누구나 딛고 한 바퀴씩 돌아본다. 부디 모든사람들에게 행운이 있기를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성당 뒤에 있는 흰 건물은 리투아니아의 옛 왕궁으로 쓰였던 곳이다.
6) 대통령 궁: 1543~1794년 까지 빌리우스의 주교가 살았던 곳이다. 1795년 부터는 빌리우스 총독의 관저였다. 1812년에는 나폴레온이 침공 시 이 궁에 살았었다. 그 후에는 소련이 장교 크럽으로 사용하였다. 이렇게 주인이 바뀌면서 나라도 계속 지배자가 바뀌었다. 1997년에 가서야 리투아니아 대통령의 관저가 되었다. 중앙에 국기가 나부끼니 현재 여성 대통령이 집무 중이다. 경비병도 없고 2층 건물로 노량 미색으로 단아한 모습이고 도리아식 기둥으로 전면이 장식 되었다.
(사진: 대통령 궁의 전경)
7) Vilnius 대학교: 대학 캠퍼스가 궁 옆에 있다. 캠퍼스가 넓어 1~13구역으로 되어있다. 1579년에 설립되어 리투아니아 학문을 선도해 가는 대학이다. 대학 안에 성당이 노란색의 바로크 양식의 건물이다. 개교 400 주년 때에 개축하였다.
벽면에 옛 그림이 희미하여 복원 중이다. 회랑에는 빌니우스 대학을 빛낸 사람들의 이름이 벽면에 새겨져 있다. 대학교 내부로 들어가니 2층에 기둥, 벽, 천정이 그림으로 장식된 방들이 우리들의 눈에는 너무 신기하고 새로운 것이다. “Dom vs Philologiae”(인문학동) 건물 내에는 리투아니아의 지성인, 시인, 작가, 음악가 등의 평소의 모습이 그림으로 묘사되어 벽을 장식하고 있다. 강의 실 복도 벽에도 리투아니아 지성인의 조각 두상이 걸려있다.
대학 전체가 구 시가지에 있어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니 유지 보수에 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 학교가 학문연구에 투자를 많이 해야 하는데?
오늘 점심시간에는 자유로이 시간을 내어 Naturis Hotel 근처 노천 카페에서 salad, 피자, 스파케티, 하우스 와인, 맥주로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
8) Anna 성당: “Maironio St.8”, 매로니오 거리의 8번 건축물로서 빌니우스에서 후기 고딕 양식의 걸작으로 평가되는 건축물이다. 건축가 “Benedikt Rejt”의해 설계되어 1495~1500년 사이에 건축 되었다. 지금까지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성당의 특징은 그 색갈과 우아한 대칭을 이루는 뾰족한 첨 탑이다. 33가지의 다양한 벽돌로 장식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 성당내부는 네오 르네상스식 풍이 가미되었다.
나폴레옹이 침공 시 그가 가지고 가고 싶어 하던 건축물이다.
(사진: Anna 성당 전경)
9) 우주피츠 마을: 예술가들이 모여 만든 마을로 매년 만우절(4월 1일)마다 행사를 연다. 소 공화국으로 빠리의 예술인 촌과 같은 마을이다. 화가들이 모여 작품활동을 하나, 대통령도, 의회도 있다 한다. 공식적으로도 “우즈피츠 공화국”이란다. 우리나라에서는 “경마장 가는 길”의 저자 “하 일지” 씨가 대사이다. 한국에도 통영 충무마을의 “동필 항”과 같은 곳이다.
10) 리투아니아 문학의 거리: 구 시가 작은 골목에 벽에다 작가들의 이름과 사진, 그림 등이 사진과 돌 판에 새겨져 벽에 붙여놓거나 그려져 있다. 아주 재미있는 아이디어의 거리이다.
11) 러시아 정교회: 교회 안에는 의자가 없고 성화만 가운데 그려져 잇다. 1345년 “Grand Duke Algirdas Maria”에 의해 건축. 현재 교회는 1865년 “N,Chaqrin” 이 새로이 건축. 다른 데서와 같이 러시아 정교회 건물 안은 우중충하고 언제니 촛불이 켜져 있다. 가운데 제단에는 십자가에 못 밖히는 예수의 그림이 단장되어 있다. 컴컴한 안에서 노란색 사제복을 입은 성직자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12) “Kasimir” 성당: 400년 된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이다. 코너 스톤은 700명이 끌어다가 1604년에 안치하였다. 나폴레옹이 침공 시 파괴되었으나 1868년 러시아 정교회 건물로 복원되었다. 2차 대전 후 박물관이 되었다가 1991년에 “Jesuits“ 교단으로 복귀 되었다. 내부에 중앙에는 예수상, 좌, 우 6개씩의 대리석 기둥 머리에 고딕 양식으로 장식을 하여 황금색으로 빛난다. 뒤에는 2층에 파이프 올갠이 서 있다. 이곳에서는 금년 7월 6일~ 8월 31일 사이에 11번에 걸 처 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 Kasimir 성당 내부 모습)
13) 여명의 문-성문 위 성당: 빌니우스 시 상징의 문으로 “여명의 문”이다. 옛날 이 시의 동쪽 문이었으나 지금은 시가 커지면서 중심에 있다. 여명의 문 교회는 성문 위에 세워져 있으며 순례자들이 오는 코스다. 이 날도 폴란드에서 모터 싸이클을 타고 온 수 백 명이 거리 미사를 올리는 중이다. 주교가 성문 위에서 미사를 집전한다.
교회 안에는 “자비의 어머니” 성모상이 그려진 그림이 모셔져 있고, 이는 빌니우스 시의 수호신이다. 병든 자를 치유한다는 기적의 성모상으로 발틱 3국, 폴란드, 러시아 정교회 신도들이 자주 찾는다. 발코니 난간에 있는 엠브렘은 “Maria” 를 표현한 것이다.
여명의 문으로 오르는 길에는 교회와 수도원이 여러 곳이 있다. 옛날에는 이 길을 무릅으로 가는 순례자의 고행 길이었다.
이제 이 길에서 발틱 3국의 문화유산 순례는 막을 내린다. 저녁은 “Naturis” Hotel 연회실에서 아주 품위 있고 우아하게 진행하며 만족한 여행으로 마음속 깊이 간직하는 게기를 마련한다.
(사진: 바실리카 대성 당 앞-1989년 "인간띠" 투쟁의 시발점)
(사진: 빌니우스의 순교자의 언덕에 십자가)
(사진 : 빌니우스 대학 인문학동 구내 그림 모습)
리투아니아의 샤울레이, 카우나스, 빌니우스 의 풍경
( 사진: 샤울레이 언덕에 십자가 모습)
(사진: 나무 대형 십자가와 그 밑에 무수한 소형 십자가 얽혀있는 모습)
(사진 : 카우나스 거리 모습 )
(사진 : 카우나스시 시청사 전경)
(사진: 페루쿠나스의 집 전경)
(사진: 카우나스 성 망루 전경)
(사진: 악마 박물관의 악마의 모습- 상, 하)
(사진: 사진 갈베 호수에서 요트 타기)
(사진: Kletis 중세 레스또랑에서 시음한 여러 전통주와 악사의 연주와 함께-상,하)
상
(사진: Kasimir 성당의 전경)
(사진: KGB 박물관 기단에 새겨진 독립 투쟁 당시 희생자 명단)
(사진: 빌리우스 시내 광장 앞의 첨탑 전경)
(사진: 빌니우스 대학교 인문관에 그려진 벽화-상, 중,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