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추천 여행지
서산의 역사속으로
땡큐 이영옥
2011. 2. 28. 18:31
2011년 2월13일 일요일 한달에 한번씩 두번째 일요일 산을 오르는 대학동창 등산모임이 벌써 300회가 된다고 한다. 오랫만에 친구들 얼굴도 보고 많이 웃고 즐기위해 아침일찍 집에서 출발 양재역 구민회관 앞에서 7시 30분 출발이다. 이제는 아침 일찍 일어나는것이 귀찮아 일찍 움직이는것은 싫어하지만 그래도 친구들이 신청을 해놓고 꼭 나와야 한다고 하니 ............. 역시나 환한 얼굴로 나타나는 친구들 보기만해도 반갑고 즐겁다. 아침은 서산대교 행담휴계소에서 설농탕으로 해결하고 황금산을 향해서 봉고는 달린다. 황금산은 서산시 대산읍 독곳리에 위치한 높이 156m의 낮은 산으로 그동안 군사지역이라 우리가 갈수없었든 곳이지만 이제 모두에게 개방되어 작년 여름부터 사람들이 찾아 가는 산이다. 바다와 산이 있고 낮은 산이지만 정상에 오르면 주변의 작은섬들과 펼쳐지는 경치가 시원하고,바다 물이 멀리빠지는 시간에는 코끼리바위 사이로 빠져나가 해안길을 트레킹 할수있으며 트레킹 코스가 너무 아름다워 인기가 있는곳인데 우리가 찾은 시간에는 물이 들어와 있어 해안길 트레킹은 못하고 코끼리 바위와 넓적한 몽돌해변길 산책으로 황금산과 안녕 아쉬움을 남기고............. 황금산에서 내려와 서산시내에서 우럭젖국과 간장게장으로 맛있는 점심을 먹고 가까운곳에 있는 동창이 운영하고 있는 약국도 들어가 보고 서산마애 삼존불상을 찾아서 마애불의 은은한 미소를 보면서 나도 마애불의 은은한 미소를 닮아 보려고 흉내를 내본다. 서산마애삼존불상은 국보 제84호<1962년12월20일 지정>로 마애불<磨崖佛>이란 절벽의 암벽이나 거대한 바위면에 선각이나 돋음기법을 사용하여 불교의 주제나 내용을 형상화 한것이다.마애불은 인도의 석굴사원에서 부터 유래하며 기원전후부터 조성되기 시작해 5세기경부터 매우 빈번히 조성되었다. 이후간다라,서역 지방을 거쳐 중국각지의 수많은 석굴에 무수한 마애불이 조성되었으며 특히 산동지방의 마애불은 백제의 대중국 통로인 서산 태안지역을 거쳐 우리나라 삼국시대 마애불의의 조성에 큰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마애불중 가장 뛰어난 백제후기의 작품으로 얼굴가득한 미소는 햇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웃는 모습이 달라진다고 한다. 마애삼존불의 미소를 떠올리면서 우리는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 1번지 개심사로 <開心寺>를 찾아간다. 입구에 벚꽃이 만발한 개심사 사진이 우리를 반긴다. 4월 초팔일을 전후하여 만개하는 벚꽃이 아름답고 개심사에는 대웅보전이 보물 143호,개심사영산회쾌불탱이 보물1264호로 지정되있다. 개심사의 건물 기둥은 나무가 뒤틀린그대로 사용한 기둥이 있는데 오랜세월의 흔적을 느낄수 있고 더 독특한 느낌이 든다. 다음에 찾은 곳은 사적 116호 해미읍성<海美邑城>으로 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에 위치하고 있고 성곽둘레 1800m,높이 5m,면적 약 20만입방m다. 해미읍성은 1416년 조선3대왕 태종이 해안지방에 출몰하는 왜구를 효과적으로 방어하기위해 덕산에 있던 병마절도사영을 옮겨쌓은 것이다. 1579년10월부터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10개월간 병사영 군관으로 근무한곳이다. 해미읍성은 230여 년간 병마절도사가 주둔하는 충청도의 군사중심지로 군사권은 물론 내란방지등 사회질서의 기능까지 담당하는 격이 높은 성이었다. 해미읍성은 조선후기 천주교인들이 처형당한 천주교 순교성지다. 1790년 정조때부터 시작된 천주교박해로 이곳에서 처형된 수는 1000여명이나 되었다고한다. 현재는 텔레비젼 드라마 근초고왕의 촬영지로 사용되고 있다. 넓은 읍성안을 둘러보고 이곳이 천주교 순교성지인것은 오늘에야 알았다. 당시에 끌려온 천주교인들을 철사줄에 매달아 고문을 했었다는 회화나무가 겨울이라 잎이 다 떨어진채로 쓸쓸하게 서있어 가슴속이 찡해진다. 나무잎이 풍성한 여름이면 회화나무의 역사도 잊은채 잘자란 나무 아래에서 잠시 쉬면서 옛 천주교인들의 슬픈역사를 이야기 했을텐데. 오늘의 일정을 계획데로 마치고 읍성앞 뚝배기집에서 소머리국밥과 소머리고기 묵을 맛있게 먹고 다시 서울로 룰루 날라 행복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