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고대 바간(Bagan) 지역 사원 답사
(세계 제일의 불교문화 유적지)
바간의 역사
역사는 AD107년에 타무다리 왕(King Thamudarit) 이 주변의 19개의 부족을 통합하여 욘류준(Yonhlyuthyun) 이라 불리는 현재 바간 근처마을에서 처음으로 부족국가를 세웠다. 그 후 티레준 왕(King Thelegyun의344~387)통치기간에는 도읍지를 티리피싸야 카우사가(Thirpytsaya Kyauksagar) 로 옮겼다. 훗날 타케탕(Thaiketaing 516~523) 왕이 다시 오늘날 파싸(Pwasaw) 마을인 땀파워디(Tampawady) 로 옮기었다.
그 후 삔바(Pyinbya-846~878) 왕에 의해 AD 849 년에 현재 장소에 뿌리를 내렸다. 초기의 바간은 타무다리 왕부터 사마니트(Sawmonnit)왕까지55명의 통치자가 있었다 하나 1044년 아나라타(Anawrahta) 왕부터 비로서 강력한 왕권을 확립하였다.
그는 미얀마 서남부 (지금의 리카인 종족 주)를 평정하고, 전역으로 영토를 확장하였다. 1056년 몬 족 주(Mon State)에 있던 따똥 왕(King Thaton)국에서 온 승려 신 아라한(Shin Arahan) 에 의해 아나라타 왕은 불교신자가 되었다. 그전에는 이 지역에 힌두교와 무속신앙이 퍼져 있었다.
그 후 아나라타 왕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소승불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았다. 그는 따똥 왕국에다 불교의 경전을 요구했으나 마누하 왕이 거부하여 아나라타 왕은 따똥국을 정복하고 경전 30권과 마누하 왕을 포로로 잡아왔다. 그 때 왕과 함께 많은 건축 기술자들이 잡혀와서 사원을 짓고 경전을 봉안하게 되었다.
이 후 그는 불교를 바탕으로 왕권을 강화하여 14대에 건친 250년간의 번영을 누리며 바간 지역 78㎢에 수많은 불교사원과 탑을 건설하여 강력한 왕조국가를 이루었다. 그 후 12대 왕 나라띠하파띠(Narathihapati) 때인 1287년에 쿠빌라이 칸의 몽골 군의 침입으로 왕권이 기울어졌다. 마침내 1368년 14대 왕 소몬니(Sawmonnit)때에 멸망하고 말았다. 당시의 바간은 4면이 성곽으로 둘러 쌓인 네모진 왕도로 북, 동, 서 쪽으로는 해자(垓子)가 있었다.
1. 쉐지곤 사원(Shwezigon Paya)
고대 미얀마를 최초로 통일한 아나라타(Anawrahta) 왕(1044~1077AD)이 따똥국(Thaton)을 정복하고 일대 지역을 평정한 후 건축한 사원이다.
1060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1077년 왕이 사망 후 그의 아들인 잔시타(Kyansittha)왕이 왕위를 승계한 후인 1085년에 완성 되었다.
사원의 이름인 쉐(Shwe)는 황금을 의미하고 지곤(Zigon)은 언덕을 의미하니 즉 언덕 위의 황금 사원을 의미한다. 거대한 탑 둘레로는 금으로 장식된 꽃으로 둘러 처져 있다. 원래의 탑(Pagoda)은 돌로 쌓고 그 위를 황금으로 칠을 하여 바간 평야에 금빛 횃불처럼 찬란하게 빛난다.
(사진: 쉐지곤 사원 전경)
탑을 쌓는데 사용한 돌은 바간의 동쪽 경계인 투인탕(Tuyintaung) 언덕에서부터 탑의 건축 장소까지 신자들의 의해서 운반 되어 졌다.
이 탑은 원래는 인도의 불탑 (Stupa)으로 분류되며 3층의 테라스로 되어 있다. 탑 구조 안에는 수많은 불교 신자들이 아직도 믿고 있는 37명의 정령이 모셔져 있는 사당이 있다.
입구에는 회랑이 조성되어 있어 양쪽으로 상가가 있다. 회랑 위로는 석가의 일대기가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탑을 둘러싸고 있는 작은 누각은 작은 왕궁처럼 보인다. 중심 탑 주위의 동서남북 네 방향에 있는 누각에는 15 세기에 주조한 높이가 13 피트나 되는 청동 석가모니불이 금빛으로 찬란하게 안치되어 있다. 높이 솟은 중심 탑은 황금을 입히어 찬란하게 빛나며 첨탑 맨 꼭대기에는 보석이 박혀있고, 그 아래로는 부처님의 전생의 관한 이야기를 부조로 표시하였다.
맨 아래로 탑의 기단이 쌓아진 후 그 위로 차례로 둥글게 쌓아 올리고 맨 위로는 탑이 올려 졌다. 탑의 정 중앙에는 석가모니의 이마 뼈가 모셔져 있다 한다.
11세기에 건축한 이 쉐지곤 탑 아래 모퉁이에는 뒷몸이 두 개인 사자상이 신앙의 탑의 수호자로서 옆에서 보면 인간의 궁둥이를 연상케 한다. 그래서 18세기에 와서는 왕이 모양이 흉하다고 해서 시멘트로 덮은 일도 있었으나 그 후 이렇게 변모하였다 한다.
탑을 둘러 싼 북서쪽 경내에 있는 조그만 방 안에는 사원을 지켜달라는 2 명의 정령인 낫(Nats)이 있다. 그러나 그 두 정령은 아들인 잔시타 왕이 아버지인 아나라타 왕보다 윗자리에 앉기 위하여 부왕보다 한 달 먼저 군대에 들어갔다. 그러나 주변 전투에서 부왕과 함께 전사하고 말았다. 그래서 아들이 아버지인 부왕보다 높은 곳에 앉았다고 전해진다.
(사진: 사원 내의 부속 탑)
낮은 곳에 있는 아버지는 쉐노딘(Shenyothin)이라 부르고 아들은 쉐사가( (Shwesagar)라고 알려져 있다. 또 이 사원 안 요케손(Yokesone) 누각 안에 새겨진 수많은 나무 목각상은 석가모니의 전생(Jataka)을 말하는 550개로 된 이야기를 묘사한 것이다. 이 목조 조각은 백 년 이상 된 것이다. 또 다른 석가의 자타카를 설명하는 빛나는 부조들은 이 사원의 2층과 3층 테라스에 새겨져 있다.
주위 사원 방에는 석가의 다섯 제자가 설법을 듣는 모습의 조각상이 모셔져 있다.
(사진: Shwezigon Pagoda 의 구조도)
마당에는 수령 천 년의 대형 보리수가 있으며 그 주위로 37명의 낫(정령)이 모셔진 곳이 있다.
신비스런 것은 탑 주위에 많은 금박을 붙였으나 흘러내리지 않으며, 우기에 아무리 비가와도 사원 경내에는 물이 차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진: 아나라타왕 의 부자의 정령-아래가 부왕)
2. 구바우치(Gubyaukgyi) 사원
이 사원은 잔시타 왕의 아들 라자구마르(Rajakumar)가 1113년에 건축한 사원이다. 마름모꼴 탑으로 인도에서 전래된 형식으로 축조되었다. 올드 바간과 뉴 바간 사이에 위치한 밍카바 지역에 있다.
1975년 지진으로 붕괴된 것을 재건한 사원으로 내부에는 큰 좌 불상을 안치하였다. 사원 내부의 둥근 벽에는 544개의 석가의 전생기를 그림으로 그려놓은 것이 특징이며 천정에는 108개의 족적을 그려 놓았으며, 석가모니 불이 중앙에 서있고 그 좌우로 두 제자의 상이 작은 크기로 안치되어 있어 석가를 모시고 있는 형식이다.
둘레 벽에는 그림으로 바간의 왕조시대를 표현하였다. 중앙에는 탑을 바치고 있는 중심축 기둥을 중심으로 벽 감실 속에 작은 부처를 모시었다. 그러나 창이 없어서 어두우니 전지가 필요하다. 바간 시대의 불상은 귀가 어깨까지 내려온 것이 특징이다.
(사진: 구바우치 사원 전경)
3. 띠로민로(Htilominlo) 사원
바간에서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온 사원이다. 띠로민로란 “우산의 뜻대로”라는 의미이다.
사원의 건립자인 난타옹마(Nantaungmya)왕이 여러 아들 가운데 후계자의 지명이 어렵자 하늘을 향해 우산을 던져 우산 끝이 간 곳에 서있는 왕자를 후계자로 삼았다는 전설이 서린 곳이다. 그 후 그가 1218년에 건립한 사원으로 높이가 46m 나 되는 거대 사원이다.
벽돌로 쌓아 올려 탑을 완성한 후 회로 바르고 유약으로 처리 하였다. 탑의 균형이 가장 잘 잡혀 있고 큰 사각의 기반 위에 네모난 테라스가 올려져 있고 입구 위에는 바루가 양쪽에 자리잡고 있다.
(사진: 띠로민로 사원 전경)
안으로는 거대한 불상이 가운데 서있고 불상 주변과 좌우 벽과 천정에는 벽화가 가득하다. 내부 통로에도 벽화가 그려져 있으나 마모와 훼손이 심하여 안타까운 모습이다.
정문 양쪽에 수호신인 낫신이 서있다. 동서 남북으로 입구가 나있고 입구 안에마다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4. 우팔리 테인(Upali Thein)사원
우팔리 스님의 이름을 붙인 사원으로 원래는 목조 건물이었으나 붕괴되어 새로 건축하였다. 안에는 28불이 모셔져 있고 중앙에는 석모니가 출가하는 과정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건축과정에 2명의 부부가 일년 여 에 걸 처 그렸다고 하는 벽화는 의상의 모습이 뛰어나다.
내부벽화는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벽화에는 마야(Maya)부인이 세속을 떠나 숲 속으로 들어가려는 왕자인 싵달타(Siddaltha) 에게 그의 계획을 만류하며 설득하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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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위-우팔리 테인 전경 아래- 내부의 벽화 )
이 사원 내에는 붓다 상과 많은 벽화가 그려져 있다. 특히 북쪽 벽에 새겨진 것에 의하면 이 벽화들이 1793년에 시작해서 일년에 걸 처 완성 하였으며 당시 돈으로 1920잣(Kyats)이 들어갔다는 내용도 새겨 있다.
또 내부에는 아노라타 왕의 일대기가 그려져 있어 중요한 사원으로 여기고 있다.
5. 부파야(Bupaja) 파고다
이 사원은 바간 북서쪽에 이야와디(Ayeyarwaddy) 강변에 자리잡고 있다. 11세기경 퓨 사우티(Pyu Sawhti) 왕이 세운 것으로 강을 따라 생활하는 사람들의 항해 표시점으로 여기고 있다. 어부들은 그들의 생계를 강에 의존하면서 강에서 고기를 잡아 시장에 내다판다. 그들은 다시 배로 돌아와 배에서 살며 그런 생활을 반복한다.
강변에 서있는 단순한 사원으로 탑신은 황금으로 장식되어 있어 강과 더불어 운치가 있다.
기원전 3 세기 경에 건축하였다 하니 바간 왕조 이전에 사원으로 간주된다. 1975년에 지진으로 파괴된 것을 퓨족 스타일의 탑으로 만들었다. 주위에는 정령 낫을 모신 조그만 사당이 자리잡고 있다.
(사진: 위-부파야 사원 탑, 아래- 부속 탑과 정령 모신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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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사원 아래 이야워디 강변의 풍경)
6. 마하보디 사원 (Mahabodhi Temple)
석가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7일간 머물렀다는 전설이 서린 곳이다. 인도에 부다가야(Bodhgaya)에 있는 마하보디 사원을 본 따서 만든 사원으로 독특한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사원에 탑에는 465개의 석가의 좌 불상이 네모 난 탑의 사면 외벽에 층층이 조각되어 있어 장관을 이룬다.
이 탑은 1215년 띠로민로(Htilominlo) 왕이 건축하였다. 가장 특징은 피라미드 형태의 첨탑이다. 그 옆으로는 수도원의 기능으로 건축된 사원이 있으나 지금은 상층부가 붕괴되어 아래 기단만 남아 있고, 그 둘레에는 해자(垓子)가 있으며 해자 오른쪽으로는 배수로가 강으로 연결되어 있다.
(사진: 마하보디 사원 전경)
(사진:상-마하보디 사원의 아래 전면 조각, 하-탑신 위의 조각)
7. 아난다 사원 (Ananda Phaya)
이 사원은 잔시타 왕이 1091년에 건립하였다. 바간에서 가장 예술성이 뛰어나는 사원으로 여긴다. 고고학자들은 방곡 서쪽 따라와디(Dwarawaddy) 유적지에 있는 낙혼 파툰 사원(Nakhon Patun Chedi) 과 방글라데시 파하푸 사원(Pahapu Chedi) 과 유사한 사원이라고 한다. 사원의 기단은 4면 위에 누각을 세운 십자가를 닮은 형태이다. 이 사원은 88m의 십자로로 되어 있고 탑 꼭대기 (The Kya Mauk Kya Lan 라 부름)까지의 높이가 51m 에 이른다. 전체적인 규모는 동서로 182m 이고 남북으로 180m 에 이른다.
사원의 내부의 천정에는 석가의 전생(Jataka)을 637개의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사진: 아난다 사원 전경)
우선 남문으로 들어가면 부처님의 발자국의 조형물이 새겨져 있고, 그 가운데로는 목조로 된 9.5m 나 되는 높다란 가섭불(迦葉佛)의 입상이 서 있다. 이 불상의 가사를 잡고 있는 자태는 자비로운 자세를 나타낸다. 북쪽 문안에 있는 구루 부처는 사원 건립 당시의 원형으로 잘 보존되어오고 있다. 동쪽 문 입구에는 구나함모 불로 1857년에 티크 목재를 사용하여 조성된 불상이다. 서쪽 문에 서있는 부처는 최근에 조성된 것으로 합금으로 만든 불상이다.
아난다 사원은 규모가 커서 통로만도 세 겹으로 되어 있다. 제일 바깥쪽에 통로는 일반인들의 참배 통로로 사용되고, 그 안쪽의 통로는 왕들의 참배 통로이다. 가장 안쪽은 승려들이 참배하는 통로이다. 이처럼 이 사원은 건축 기술상으로도 기적에 가까운 공법을 사용하였다.
안쪽 통로 벽면에는 수많은 감실(龕室)을 만들어 불상을 모셔 놓았다. 특히 안쪽 가운데 통로 감실에는 석가가 출가해서 고행하는 동안 몸이 말라 갈비뼈가 앙상한 모습의 조각이 벽 감실에 들어있어 눈길을 끈다.
전체적으로 밖에서 보는 사원의 탑은 금으로 번쩍이고 있으나 아래의 기초부터 올려 쌓은 부분은 오래되어 검은색으로 변해있다.
윗 층 테라스에 네 귀퉁이의 조그만 탑도 대칭을 이루어 아주 기하학적으로 이뤄져 있다. 아래로는 2마리의 사자상이 사원 양 옆을 지키고 있다.
(사진: 가섭 불의 모습)
또 아난다 사원의 북쪽 복도에 새겨진 조각상은 마야(Maya) 부인이 싣달타(Siddaltha) 왕자를 생산하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이것은 바간 지역에서 발견된 석가의 탄생장면으로는 가장 훌륭한 사암 조각상이다.
사원 아래 벽에 유약을 바른 조각물은 석가모니 주변에 악마를 물리치는 무사들의 모양과 양손에 꽃을 들고 석가를 모시는 무사들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사진: 내부에 있는 사원 구조도)
(사진: 사원을 지키는 사자상)
(사진: 사원 외부벽의 무사상 조각)
8. 밍글라제디 사원(Mingalazedi Pagoda)
바간 왕조의 마지막 왕인 나라띠하파띠(Narathihapati)가 1268년에 세운 탑 사원이다. 탑 내부에 부처님의 전생에 대한 벽화를 많이 그려 놓았으나 이제는 훼손이 심하다.
이 탑 사원을 건립 후 1287년 몽골제국의 징기스칸의 손자 쿠빌라이 칸의 침입으로 멸망에 이른다. 그로 인해 바간의 마지막 사원이 되었다.
사원 뒤로는 이야워디 강이 흐르기 때문에 일몰장소로 뛰어나다. 방치되고 관리가 안되어 지저분하나 마지막 왕조의 사원으로 무상함을 느끼기에 좋은 장소이다.
(사진: 밍글라 제디 사원 전경)
9.마누하 사원 (Manuha Phaya)
바간 왕조의 아노라타 왕이 몬 족의 왕으로 있던 마누하 왕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1067년 마누하 왕을 잡아와 그들에게 사원을 짓게 한 곳이다. 사원은 밍가바(Mingaba) 마을 근처에 있다.
입구 중앙에는 불전 함이 황금으로 칠해지고 그 크기가 엄청나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게 설치해 놓았다.
사원 안으로 들어가면 불상이 너무 커서 균형감이 없고 부자연스럽게 보인다. 좁은 공간에 대형불상이 너무 꽉 차게 조성되어 보기도 어렵다. 대 불상이 중앙에 한 개, 좌측 입구에 한 개, 우측 입구에 한 개가 대형으로 만들어져 좌우 통로가 좁아 제대로 볼 수가 없을 정도다. 이것은 마누하 왕이 전쟁에 패하여 감옥에 갇힌것을 상징한 것으로 보인다. 표면에 입힌 금칠에도 엄청난 양의 금이 동원 되었다.
뒤로 돌아가면 좁은 통로 위로 와불(臥佛)이 조성 되었는데 길게 누워 있어 겨우 사람이 지나가면서 볼 수 있다. 이는 불상을 먼저 조성하고 사원을 그 위에 건축한 것으로 보인다. 사원 밖에 조그만 방안에 마누하 왕과 왕비의 정령이 따로 모셔져 있고 그 옆으로는 정령이 또 3인이 모셔져 있으며 주변에는 꽃으로 장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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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상-마누하 사원 전경, 하 -대불상, 하 -뒤편에 있는 와불 )
10. 난파야(Nanpaya) 사원
올드 바간과 뉴 바간 중간에 위치한 밍카바(Myinkaba) 지역에 칠기공장 근처에 있다.
마누하 왕이 투옥되어 있었던 힌두교 사원이다. 감옥으로 쓰던 곳을 사원으로 조성하여 창이 작아 아주 컴컴하다. 무너진 사원이었으나 복원하였고 벽면의 조각과 내부 조각이 뛰어나다.
(사원: 난파야 사원 전경. 아래- 사원 내부의 조각 벽면)
(사진: 난파야 사원 전경)
(사진: 닌파야 사원의 외부 조각)
(사진: 난파야 사원의 내부 조각 벽)
11. 아베야다나(Abeyadana) 사원
잔시타 왕의 부인의 이름이 붙여진 사원. 대승불교 사원으로 규모는 작으나 테라스 위의 양쪽에 사자가 코끼리를 깔고 앉아 있는 모습의 조각이 특징이다.
이 사원은 불교의 벽화가 최고로 여기고 있다. 중앙 불상 좌우에 제자 2명이 있고, 벽 감실에는 조그만 불상이 무수하게 안치되어 있다. 또 벽에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벽화가 많으며, 중앙 좌우에는 석가의 탄생과정과 열반에 드는 모습이 그려져 있으나 마모가 심해 보기가 어렵다.
(사진: 상-아베야다나 사원 전경. 중-사원 내부 벽화 하-석가와 제자 2명의 불상 모습)
12. 쉐산도 사원(Shwesandaw Paya)
오늘의 마지막 방문지로 일출과 일몰의 전망 사원으로 유명하다. 이 사원은 아노라타 왕이 1057년 따똥국을 정복한 후 낭우 지역의 쉐지곤 사원과 함께 건설한 것이다.
이 지역에서 최고의 높이를 자랑하는 사원 탑으로 5 개 층의 테라스 위로 금탑이 하늘 높이 솟아있다.
바간 평원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5단으로 건축하여, 동서남북으로 오르는 계단으로 올라 사방으로 돌면서 전방위로 바간 평원을 조망한다. 주위에는 2000여 개가 넘는 사원을 관찰하며 오늘의 사원 순례를 마감한다.
해는 오늘을 마감하며 서서히 서쪽 사원 탑 위로 몸을 불태우며 사라져 간다.
(사진:상-쉐산도 사원 전경. 하-탑의 상층부 크로즈업 사진)
(사진: 쉐산도 사원 4층 테라스에서의 일몰 전경)
(사진: 쉐산도 사원 테라스 위에서 본 사원 주위 풍경)
13. 민예공 (Minyeingon) 사원
바간 평원에서 매일 일출과 일몰을 보는 것이 큰 즐거움의 하나이다. 아침 일찍이 05:45분 일출을 보기 위해 이번에는 바간 호텔에서 마차로 출발한다. 알고 보니 호텔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으나 그리 크지 않은 사원이라 해돋이를 위해서 주로 가는 곳이다.
탑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작은 통로를 이용 해야 하고 상당히 깜깜하여 전지를 가지고 가야 한다. 사람 한 명이 통과할 수 있는 좁은 통로를 올라 3층 테라스로 나가니 바간 평원이 훤하게 내려다 보이고 사방이 탁 트인다.
06:55분 마침내 먼 사원 탑 너머로 붉은 태양이 어둠을 불사르고 솟아오르니 오늘도 행운의 날이었다. 어제는 일몰 풍경을, 오늘은 일출 장면을 제대로 보면서 테라스에 걸 터 앉아 커피도 한잔씩 마시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해가 솟아오르자 멀리 왼쪽으로는 3개의 열기구가 떠 오른다. 열기구가 해가 오름에 따라 점점 높이 오르니 즐거움이 두 배 이다. 다시 내려와 사원을 들여다보니 중앙엔 요염한 자태의 좌불상(座佛像)이 가운데 모셔져 있다.
(사진: 민예공 사원 테라스에서 아침 해가 떠오르는 장면, 하 -열기구가 떠오르는 장면)
(사진: 민예공 사원 전경)
14. 뽀빠산 (Popa Mt)
어제 사원과 파고다를 13곳이나 방문하니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오늘은 오전에 미얀마의 정령(Nats)신앙의 본거지인 뽀빠산을 방문하기로 한다.
뽀빠산은 바간에서 동쪽으로 약 50 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 1520 m 의 산으로 마을에서 오르기는 737m 이나 실제로는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어 그리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가는 길에는 직선도로가 나있으나 포장이 가운데만 되어 있고 고르지 못하다. 그래도 중앙분리대가 설치되고 푸른 나무가 적당한 거리와 크기로 심어져 있다. 양 방향으로 1차선으로 포장 상태가 고르지 못해 심하게 흔들린다. 그러나 가로수 밑으로 달리니 기분은 상쾌하다.
가는 중간에 도로에는 입장권 10$를 받는 게이트가 나온다. 도로 중간에 물탱크가 가끔 보이고 주변은 황무지이나 이제는 나무를 심고 녹화에 치중하여 주로 팜나무(Palm Tree) 를 심어 녹지를 조성 중이다.
우리는 가다가 도로변에 있는 휴게소에서 내려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도로변에는 노점상이 형성되어 있어 우리를 맞이한다. 팜나무 잎으로 기름을 짜는 연자방아도 소가 끌며 돌리고 있다. 또 팜나무 위에 열매에서 직접 기름을 채취하는 시범을 보이기 위해 팜나무 위로 올라가기도 한다. 팜 주(酎), 차, 땅콩 등도 맛보며 팜나무로 발효하여 만든 소주 맛 같은 팜주도 마셔본다. 팜나무 잎을 말아 만든 담배도 피워본다. 이처럼 이들에게 팜나무는 하나도 버릴 것이 없이 그대로 생활의 기본 식물이다.
(사진: 뽀빠산으로 가는 도로가의 휴게소 상가 풍경)
화장실도 팜입으로 짠 벽을 대서 만들어 통풍이 잘되어 좋으며 변기는 네팔 식으로 되어있다.
이 나라에도 코리아가 88 올림픽 이후와 2002년 월드컵 이 후 한국이 알려지게 되었다. 최근에는 대장금, 주몽 등 우리나라 드라마가 TV 에 등장하면서 한국말이 보급되어 물건 파는 상인, 아이들의 인사말, 형, 누나, 아주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등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대기업으로는 삼성, LG 등이 알려져 있다.
다시 출발하여 가다가 학교 앞 로타리에서 차가 서니 과일 노점상이 즐비하다. 학교가 끝나서 돌아가는 아이들이 길을 메운다. 딸기, 아이스크림도 길에서 판다. 가다가 “Yangon Restaurant" 에 들러 점심을 예약한 후 차를 다시 달린다.
차는 “Popa Mountain Park" 라 써진 입구를 지나 언덕길을 먼지를 내며 올라간다. 오른쪽으로 뾰족이 솟아있는 산을 보면서 언덕을 내려가니 상가가 나타나고 뽀빠산으로 올라가는 입구가 나온다.
(사진: 뽀빠산 원경)
(사진: 뽀빠산의 정령들)
(사진: 사원을 놀이터로 아는 원숭이들)
(사진: 정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길)
(사진 : 정상에 기둥 감실에 모셔진 부처님들)
(사진 : 정상의 탑 사원)
주차할 곳에 차를 세우고 뽀빠산으로 오른다. 정령의 고향이라 입구에서부터 “낫” 사당이 나온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상가가 연속으로 나오고 여기도 맨발로 올라가야 한다. 계단을 오르면서 만나는 원숭이의 무리가 앞길을 막기도 하고 귀찮게 군다. 놈들은 무리가 져서 딩굴고 노느라고 가는 길을 막는다. 오줌을 싸서 계단 길에서 악취가 심하게 난다. 계단을 굽이돌아 올라가는 위에는 지붕이 가려있어 그리 덥지는 않다. 올라가면서 사방이 내려다보이니 아주 시원하다. 예전에는 산림이 무성하여 여러 동물들이 살았으나 지금은 인간에 밀려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입구 중앙에서부터 3개의 정령이 모셔진 사원이 나오고, 이곳을 지나 오르니 타톤 왕의 딸인 “매화”의 정령이 모셔진 곳에는 그의 일대기가 8폭의 그림으로 통로 위에 그려져 있다. 계단을 힘겹게 올라 정상에 이른다. 여기 저기 탑 사원이 내려다보이고 그 중에는 황금색을 칠한 탑이 돋보인다. 25분 내외를 오르니 정상으로 나온다. 정상에는 기둥 벽 감실에 부처님과 불제자의 조그만 조각이 모셔져 있다. 그 둘레에는 각종 정령신이 모셔진 방이 여럿이 계속되어 있다. 이곳에서 사람들이 재물이나 안전을 비는 곳으로 각 곳마다 불전함(佛錢含)이 있고 지폐가 가득히 들어있다..
한 바퀴 돌아보고 한동안 원경을 조망하고 산 위에 세워진 여러 탑들을 사진에 담아본다. 내려오는 계단은 양쪽으로 나있어 뒤로 내려와도 중간에서 만나게 된다. 이들의
신앙의 원천을 돌아보고 미얀마인들의 일상생활이 불교사원의 참배와 정령사원을 방문하여 복을 비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돌아오는 길에 예약한 식당에 이르니 주변이 부겐베리 분홍 꽃이 만발하고 하얀색의 타마린 꽃도 향기를 내뿜어 공기가 싱그럽다.
15. 탓빈뉴 사원(Thatbyinnyu Paya)
바간에서 가장 거대한 사원으로 알려져 있다. 높이가 61 m 에 이르고 내부는 4층의 구조로 되었다. 예전에 1,2층은 승려들이 살았고, 3층은 박물관으로 사용되었다.
1144년 잔시타 왕의 손자인 아라웅씨두(Alaungsithu)가 건축한 사원으로 지금은 내부에 흰 칠을 칠하여 수리한 관계로 가치가 훼손 되었고 외부는 오래되어 시꺼먹해 변해 있어 상당히 흉물스럽게 보인다.
이 사원은 규모를 크게 지으면서 건축 당시 벽돌 만장을 사용할 때마다 한 장씩 빼어 오른쪽에 탑을 하나 건축하였으니 당시에 얼마나 많은 벽돌을 사용하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얼마 전에 보수를 하여 지금은 폐쇄되어 들어 갈 수 없으나 전에는 내부로 올라가 상층 테라스에서 이 일대를 환하게 조망할 수 있었던 사원 이었다.
(사진: 탓빈유 사원의 원경)
16. 담마양지 사원(Dhammayangy Pagoda)
알라웅씨두의 아들이었던 나라뚜 왕(1167~70)이 1170년에 건축한 사원으로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같은 형태로 쌓았다. 나라뚜는 아버지 알라웅씨두를 살해하고 왕이 되어 이 사원을 건축하면서 그는 두려운 생각에 왕비와 그의 동생까지 살해해 버린다. 패륜의 왕이 되면서 주변의 신하들과 왕자들도 살해한다.
사원 건축 당시에도 벽돌 사이에 틈새가 나면 건축담당자도 죽이거나 팔을 잘랐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잔인한 성격의 나라뚜 왕은 마침내 3년 뒤에 자객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이 사원은 오른쪽으로 수도원 기능을 하던 건물이 무너진 채로 남아있다. 본 사원은 내부는 벽 사이로 바늘도 안들어 가게끔 정교하게 쌓았고 외벽은 회칠을 하였다.
중앙 불상 뒤에 벽에는 불상벽화가 그려졌던 흔적이 남아있다. 공사 중에 나라뚜 왕이 죽자 미완성으로 남아있었다. 통로 중간에 부처님은 새로 조성된 것으로 그 조형미가 떨어진다. 통로에는 군데 군 데 창문이 있고, 한 층에 두 개의 창문아 있는 곳도 있다. 불상이 있어야 할 곳에는 건축하중 문제로 막아서 쌓았고, 그 앞에 와불이 한곳에 있고, 와불 앞으로 2개의 불상이 조성되어 있다. 피라믿 형태로 보이고 맨 위 탑은 붕괴되었고, 공간을 넓히기 위해 건축구조가 설계 되었다. 웅장한 감이 있으나 내부는 미보수 상태라 2층은 폐쇄되어 입장이 불가능 하다. 표지석에는 서투른 영문으로 바간에서 최대사원으로 표시되어 있다.
(사진: 상-담마양지 사원 전경. 하- 사원의 영문 안내 비석 )
17. 술래마니 사원(Sulamani Pagoda)
나라트 왕의 아들인 나라파띠시뚜(1174~1211 Narapatisithu) 왕이 1184년 마을 사람들을 동원하여 건축하였다. 건축미가 뛰어나고 2층 테라스 위부터 맨 위층까지 탑이 좌우 균형을 이루었다. 왕조시대의 전성기에 건축하여 견고한 벽돌과 무게를 받는 곳에는 석조를 사용하였다. 대들보, 기초 석, 톱날구조 흉 벽, 아취 형 문을 만들기 위해 석조를 사용하여 아주 견고하게 건축하였다.
입구 장식 조각이 뛰어나고, 도깨비 조각이 입구 좌 우에 있고, 그 옆으로 채색된 조각이 무늬를 이루고 있다.
안에 중앙에는 부처가 좌대(座臺)에 높이 앉아있고 천정에는 원형의 불화가 그려져 있다. 벽화에는 부처님이 아주 크게 그려져 있다. 양쪽 통로에도 28불이 그려져 있으며 대부분 크게 그려져 있다. 불화가 원형으로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으로 석가의 제자들의 모습과 깨달음을 얻은 자들의 모습이 6개 층으로 된 벽화로 구성되어있다. 주로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 모습이 많이 그려져 있고 안치된 부처님도 머리에 왕관을 쓴 특이한 형태이다. 맨 아래 단에는 지옥도가 그려져 있으나 손이 타서 마모가 심하다.
동서남북 출입구의 양식, 조각 등이 동일하며 그 좌우로 작은 입구도 똑같은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사원의 4면으로 각기 5개의 출입구가 나있어 모두 20개의 출입구가 있다. 건축상으로 아주 정교한 기법을 사용하여 무거운 하중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바간에 있는 중요한 사원을 두루 방문하여 정리하고자 한다.
(사진: 슐레마니 사원 전경)
(사진: 슐레마니 사원의 출입구 조각)
(사진: 중앙에 모셔진 부처님)
(사진: 사원 내부에 남아있는 원형벽화)
(사진: 슐레마니 사원 외부 테라스 위의 탑 모습)
18. 태옥페(Tayokpye) 사원
오늘의 마지막 일몰을 보러 가기 위해 술레마니 사원을 천천히 벗어나 큰 길로 나와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들어간다.
조그만 사원이나 바간 평야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중심에 위치해 있어 자주 찾는다는 곳이다. 사원의 특징은 없으나 좁은 계단을 통해 테라스 2층으로 오르니 멀리 이야워데 강 너머로 태양이 서서히 넘어 간다. 우리는 테라스에 서쪽부분에 걸터앉아 이번에는 제법 여유 있게 휴식을 취하며 기다린다. 사원 주위 전방 위로 사진을 찍으니 사원 아래로 주민이 한 사람 지나가는 것을 본다. 이곳은 주거지가 없어 주민을 만나기가 어렵다. 사원 아래로 소를 몰고 가는 것으로 보아 방목을 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주민인 것 같다.
여행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태양은 서서히 강 너머로 사라져 간다. 2일간 연속 아침 저녁으로 일출, 일몰을 보는 것도 큰 행운이다.
(사진: 사원 주변의 일몰전 풍경)
19. 바간 지역의 시장 구경하기
어느 나라고 여행을 하려면 먼저 그 나라의 서민생활을 돌아보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우리는 먼저 언제나 서민들의 시장을 찾아가 그들의 생활상을 살펴보고 그들과 호흡을 같이 하면서 그 나라의 방문지를 풀어나간다. 이번에도 먼저 낭우 지역에 있는 냐웅 재래시장을 찾아간다.
아침이라 시장은 각종 야채, 먹거리 등이 짐 차로 들어오고 맨바닥에 노점상이 좌판이나 땅바닥에 벌려놓고 손님을 맞이한다. 우리는 살 것이 없더라도 사람 사는 냄새를 맡기 위해 늘 서민을 찾아간다. 시장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동남아 특유의 야채, 과일, 먹거리, 의류, 옹기, 기타 일용품으로 가득한 곳에 원주민들과 같이 노점상을 누비며 골목마다 들어가 보고, 여기 저기 기웃거려본다. 그들의 꾸밈없고 소박한 웃음을 마주한다.
(사진: 아침 야채 시장의 풍경)
미얀마에서는 사원에 들어 갈 때는 누구를 막론하고 맨발이어야 한다. 물론 양말도 벗어야 한다. 인도의 사원은 현장에서 양말을 사 신으면 양말바람으로 순방할 수 있으나 이곳은 영 다르다. 우리는 신발 노점상 골목으로가 현지 화폐로 바꿔 우선 벗고 신기 쉬운 스리퍼나 조리를 하나씩 마련한다. 물론 제품은 조악하여 볼품이 없으나 그래도 이렇게 현장 체험을 한다. 노점상에 앉아있는 여인들은 하나같이 얼굴에 다나까를 바르고 있다. 여인들은 양 볼에 다나까 나무를 갈아 노란 가루를 만들어 양쪽에 바르거나 이마에도 칠한다. 미용효과와 방향제로 향기가 있으니 누구나 다 바르고 있다.
시장에는 어린이를 데리고 돈을 구걸하는 젊은 여인도 많이 있다. 우리는 어린아이를 앉고 끈질기게 쫓아다니는 여인과 사진을 찍고 현지 지폐를 건네준다.
어떻게 보면 지저분하고 무질서 하나 바로 그 속에 삶이 녹아있어 마음이 편안하다.
(사진: 상-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 하- 바구니 안에서 노는 아이들)
20.민난투(Minnanthu Village) 마을 방문
바간에는 모두 13개의 마을이 있는데 우리는 오늘 마지막으로 태옥배 사거리에서 나와 민난투 시골 마을을 방문한다. 이곳 마을의 유일한 커피숍이다. 커피숍이라야 길가에 천막 하나를 처 놓고 그 안에 나무 테이블 두 세계가 노여있고, 음료수 몇 가지와 티와 커피가 전부이다. 어머니와 대학을 다닌다는 딸이 방학이라 천막 가게에 있고 손님이라야 우리가 전부이다. 비포장 도로 곁이라 먼지가 상당하다.
이 집 마당에서는 소여물을 써는 아낙네도 있고, 물레질을 하는 할머니도 실을 뽑아 직조 틀에 않아 직물을 짜는 여인도 우리가 가니까 틀에 올라 앉아 보여준다. 직접 짠 직물도 팔고 있다. 농사도 많이 짓고, 땅콩 수확을 많이 하여 큰 바구니에 기득하게 담겨있다.
(사진: 민난투 마을 입구)
이 집 아이들 두 명이 조그만 나무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들은 교과서를 펼 처 놓고 노트에 쓰고 있는 모양이 제법 진지하다.
기왕 들어간 김에 내실도 들여다보고, 그들의 시골 생활상을 직접 눈으로 본다.
부엌은 개방식으로 되어있고 나무를 때어 밥솥이 새까맣게 그을러 있어 뚜껑을 열어보니 감자 삶은 것이 가득하다. 또 하나의 솥에는 밥이 가득히 들어있다. 마을 주민의 생활을 너무 깊이 본 것이 아닐까? 어린이들이 손을 벌리고 사람마다 쫓아다닌다. 한번 주면 수십 명이 몰려오기 때문에 어찌할 수가 없다. 마침내 기념사진을 위해 일행 중 한 분이 준비한 것을 논아주고 입구에서 사진을 찍고 마을 방문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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