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종 여행기/김한종세계여행기

세게 문화탑방 - 발틱 3국 1~코카서스 3 국 2

땡큐 이영옥 2012. 2. 14. 12:18

세계문화탐방

          1.    발틱 3국 의 역사를 찾아             P 320

     2.    코카서스 3국 기행을 마치고        P 320

 

1991년 소련방이 "페레스트로이카"와 "그로스노스트"(개방과개혁)에 의해해체되면서

거대한 공산주의 국가는 15개의 나라로 분리되어 독재와 압제의 쇠사슬을  끊으면서

각기 독립하여 민주국가로 다시 태어 나면서 독립을 이루었다.

이번에 발틱의 약소국가인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3국이 제정 러시아,스웨덴,독일 등의 강대국의 침략과 압제를  어떻게 견디어 내고,

민족과 문화를 이어가며 살아남았는가를 탐구하였고,

이어 동서의 교차로에 자리한 코카서스 3국인, 아제르바이잔, 그루지아, 아르메니어의 3국이 소련의 지배와, 페르샤 , 오스만 터키 제국의 민족말살 정책을 이겨내고,

그들의 민족과 언어와 문화를 지켜 냈는가를 깊이 탐구하는 시간을 마련하여

이를 글과 사진을 통해 구현하여 2권의 책으로 엮어 간행 하였읍니다.

 

                http:blog. daum.net/leeook11( 지구촌에 이런곳도 있다네!)

 .                                    E-Mail: leeook11@ ahnamil.net

                               2012. 01.30.  

 

 

 

 

작가 후기

 

  발틱 3국의 역사를 찾아

소련 방이 고르바쵸프의 개혁 개방 정책에 의해 공산주의 국가는 해체 되었다. 1991년 소련 방이 무너지면서 거대한 영토는 15개의 나라로 분해 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약소국인 발틱 3국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3 나라는 천년 이상을 스웨덴, 독일, 러시아의 침략으로 피압박 민족으로 살아오면서도 언어, 종교, 역사가 다르다. 3 국이 다 합쳐도 한반도 보다 작으며 인구도 7백만 정도다.

그러나 에스토니아의 수도 타린은 무역을 하면서 번영을 이루었다. 1,2차 대전 후에는 소련의 침공으로 나라를 잃고 에스토니아인의 상당수가 추방되어 유랑민이 되었다.

라트비아는 근대 이후 독일이 들어오면서 현 수도인 리가는 한자동맹의 중심도시가 되었다. 이 나라도 1941년 이후 소련에 의해 10만 명이 강제 이주 당해 인구가 줄어 들었다.

리투아니아는 1230년대에는 거대한 통일 국가였으나 폴란드의 지배 당한 후 1795년 러시아로 편입되어 1941년부터 2만 명이 시베리아로 추방 되었고, 다시 독일이 침공하면서 많은 국민이 학살되었고, 30만 명이 조국을 떠나 유랑민이 되었다.

이런 약소국가의 수난은 1991년 소련의 붕괴로 비로소 독립하여 그 해 9 17일에 유엔에  가입하게 되었다.

 

이들 3국은 오랜 세월 동안 핍박을 당하고 민족이 흩어지는 수난을 당했어도 에스토니아는 나의 조국, 나의 사랑이란 노래로 민족 정체성과 고유문화를 이어가고, 라트비아는 한자동맹으로 부를 축적하여 나라를 지키고, 리투아니아는 1989년 소련의 압제 사슬을 끊으려고 빌리우스로 부 터 타린에 이르는 620 km3 나라가 인간 티로 이어 가면서 자유를 위한 투쟁을 전개하여 전세계를 감동 시킨 한편의 드라마를 연출하였다.

사울레이의 십자가 언덕에서 우리는 자유는 영원하다 라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 작은 3 나라가 전통을 유지하면서 중세시대 부 터 문화유적을 지키며 나라의 정체성을 이어가는 과정을 배우게 되었다.

 3국이 한자동맹을 맺으며 한데 뭉쳐 무역을 하면서 부를 쌓아간 과정을 배웠고, 조그만 도시 전체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남아간 슬기로움을 배우는 값진 여행이었다.

 

             2011. 12.       , 사진 松山 김  한 종.  영 옥

 

 

 

 

작가후기

코카서스 3국 기행을 마치고

소련 방이 해체되면서 코카서스 산맥 이남 지역이 아제르바이잔, 그루지아, 아르메니아 3국으로 1991년 발틱 3국과 더불어 독립국가로 탄생하였다.

이 지역도 3 국이 합쳐도 한반도 보다 작고 인구도 1800 만에 불과하다.

주변 강대국에 의해 수 천년 동안 유린되어 나라를 잃고 민족이 수난을 겪으면서도 면면히 그들의 민족과 문화, 종교와 역사를 이어온 곳이다. 이 지역은 지정학적으로 아세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요충지로 페르시아, 오스만 터키, 몽골, 로마제국, 러시아의 침공과 지배로 얼룩진 땅이다.

 아제르바이잔은 카스피 해에 면해 있고, 원유와 Gas가 발견되면서 러시아에 약탈 당했고 독립 후 신생 산유국에 대열에 서서 날로 발전하고 있다. 카스피 해 연안의 바쿠 시는 코카서스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로서 지금은 Oil money의 상징이다.

이스람교를 국교로 하면서 지구상에서 오래된 문명의 발상지이자 불의 종교인 조로아스타교의 발상지이다. 기원 전부터의 암각화가 유명하고 왕국의 찬란한 발자취가 남아있다. 또한 중앙 아세아로부터 이스탄불에 이르는 동서 교역로의 발자취가 남아있다. 바쿠에는 강대국의 침략에 저항하다 죽어간 이들의 묘역이 꺼지지 않는 불로 장식되어 있고 어디를 가나 대형 국기가 휘날리어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있다.

그루지아는 러시아의 침략통로이자 이 지역의 자원 수탈의 통로였다. 아이로닉 하게도 이 나라 Gori 지역은 소련 독재자 스타린이 태어난 곳이다. 고리에는 박물관과 그의 거대한 기념상이 서있고 그가 타고 다니던 열차가 전시되어 있다. 독재자들은 비행기 보다 열차를 이용한다는 사실을 실감하였다. 그루지아 인들도 수 천년 동안 피지배 민족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여 고난을 이겨내면서 박해를 피해 먼 산간 지역에 수도원을 짓고 그들의 명맥을 이어갔다. 라브라 지역의 동굴 수도원에서 종교가 그들의 정신적 지주가 된 것을 보면서, 산 정상에 동굴 교회와 카즈베기 산간 지역의 석조교회에서 그루지아 인들의 고난에 찬 삶을 보게 되었다.

최근에는 바쿠에서 터키를 거처 유럽으로 통하는 송유관이 지나는 지정학적 요충지이다. 이 나라는 온화한 기후로 장수하는 사람이 많고 양질의 포도로 와인이 유명하다.

가장 작은 나라인 아르메니아는 우리의 경,남 북 면적에 인구도 380만이다. 그러나 수 천년 간 오스만 터키의 지배로 아르메니아 인들은 추방되고 학살을 당했다. 특히 20세기 초 터키에 의한 수 차례의 대량학살은 유태인 학살보다 더 잔인한 것이다. 그로 인해 아르메니아 인들은 추방되거나 유랑민이 되어 1300만 명이 세계에 흩어져 사는 기구한 민족이다.

그들은 기원 전부터 고유 문자를 갖았고 기독교를 받아 들여 고난을 이겨가면서 뛰어난 재능과 단결력으로 유대인처럼 세계 각지에서 성공하여 이제는 그들의 조국을 돕고 있다. 그들도 산간에 교회를 짓고, 수도원을 만들어 고단한 삶을 영위하여 왔다.

 아르메니아의 문자는 1600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이 조그만 나라도 종교유적을 그들의 유산으로 삼고, 영혼의 노래를 부르며 꺼지지 않은 불로 민족의 긍지를 이어 가고 있다.

 이 세 나라에서 역사, 언어, 종교, 문화를 어떻게 지키고 이어져 가는 가를 통찰하고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2011. 12.         , 사진 松山    한 종. 이 영 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