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교의 영원한 성지 Varanasi 에서 14:40분이 되어 겨우 이륙한다.
날씨가 너무 화창하여 아래가 잘 보이고 태양이 작열한다.
40분만인 15:20분에 Varanasi 공항에 내리니 새로운 버스를 타고 먼저 박물관으로 간다. 관내에서 부처님이 처음으로 설법하는 모습의 조각상을 감상하고 바로 인근 유적지 Sarnath (사르나트=녹야원)로 옮긴다. 사르나트는 바라나시에서 동북 10 km 지점으로 혼잡한 도시를 벗어나
가로수가 무성한 도로를 따라가면 나무가 없는 넓은 잔디밭에 커다란 Chakra Stupa(탑)와
폐허를 발굴한 유적지가 나타난다.
내부 구조물이 없는 산처럼 둥글게 2단으로 높이 33 m, 지름 28 m 정도 되는 거대한 불탑으로
석가의 사리를 보관한 묘로 생각되며 불교의 탑의 원형으로 보인다.
이곳은 불교의 4대성지의 하나로 “Siddhartha”(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뒤 처음으로 설법한 곳이다.
당시에는 30여 개의 사찰과 3천명의 승려가 있던 곳이라고 현장법사가 쓴 기행기에 남아있다.
불교가 인도 전역으로 퍼지면서 성지가 되었으나 이스람의 침입으로 불교성지로서의 지위는 사라져 갔다. 6세기 초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며 이 탑 주위를 돌며 승려와 불자들이 예불을 올린다.
부다가야에서 해탈한 석가는 걸어서 바라나시로 와서 5명의 제자들을 만나 해탈의 진리를 설법한 자리가 바로 이곳이라 한다.
이후 이곳이 불교성지가 되었고 “Ashoka” 왕이 불교를 국교로 선포하고 이곳에다 돌기둥을 세워 성지로 삼았고,
그 둘레에서 당시의 유적이 발굴되어 성역화 되어 있다.
그곳에는 석가가 부다가야에서 여인에게서 공양을 받는 그림도 있고 그로 인해
오해한 제자가 떠났으나 혼자 깨달음을 얻은 후에 이곳에서 다시 5명의 제자를 만나서 처음 설법한 곳으로 되어 있다. 우리는 부처가 앉았었다는 자리를 둘러보고 기반만 남은 곳에서 한동안 묵상하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큰 보리수 나무 밑의 명상자리도 둘러본다. 다음에는 저녁무렵 간지스 강가로 가기 위해 자전거 릭샤를 타고 혼란의 거리와 향냄새로 가득한 바자르를 지나
“산 데하 이르티 부자” 라는 저녁기도회를 참관한다. 어둠 속에서 배에 올라 강물로 나가서 강가에 단위에서 벌어지는 종교행사를 참관한다.
순례자들도 강에 내려와 성수에 몸을 씻고는 종교의식을 하는 사람들과 합류한다.
7개의 제단 위에서 힌두교 승이 집전하는 행사를 본다.
음악이 울리고, 향불이 피워지고 붉은 승려복을 입은 7명의 승려가 각 단위에서 행사를 진행한다. “Arti Pooja” 라는 의식으로 “신이 가까이 계시니까 사는 것이다.”라는 감사를 표시하는 행사란다.
힌두교인들의 간지스 강 목욕 순례는 그들의 영성을 다지는 행위란다. 다시 배에서 내려 오던 길을 되돌아 나와 자전거 릭샤를 타고 버스로와 호텔로 돌아오니 오후 7시 30분이다.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도 한동안 간지스 강변의 냄새가 코에서 가시지 않는다.
이상한 나라에서 알 수 없는 이상한 영적행동을 보고 점점 미궁속으로 빠져 든다. 갠지스강에 배를 타고 아침 일출을 바라보며 1월15일: 아침 일찍 일어나 일출을 마지 하기 위해 05:45분에 출발한다.
버스로 노타리까지 가서 걸어서 갠지스 강(Ganga river)가 “Sandhya Ghat” 에 내려가
배에 올라 선상에서 일출을 보기 위함이다.
강가에 Ghat로 내려가니 사람들로 가득한 사이를 뚫고 배에 오른다.
강으로 아침 순례를 나가는 배가 많아 q복잡하다. 강으로 나오면서 촛불을 켜서 신에게 빌면서
강에 꽃과 더불어 기도하며 띄워 보내는 행사이다.
강물 위에는 꽃접시에 촛불을 밝히고 촛불은 기원을 싣고 떠내려 가면서 강물에 반사되어 어둠을 밝힌다.
강변에는 일출 전에 성수에 목욕을 하려는 사람들이 계속 몰려든다.
목욕도 하고 먹기도 한다는데 먹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물에는 너무 많은 오물이 떠다니고 유속이 느려 정화도 되지 않은 채로 흐르기 때문이다.
또 이 강물은 순례자들이 프라스틱 통에 담아 가지고 가 성수로 사용한다고 한다.
강가로 내려오는 주변에는 많은 프라스틱통이 쌓여있는 것도 볼거리이다. 갠지스 강물을 검사해본 결과 병원균 박테리아가 없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다.
목욕행사가 2 일전에 있어서 수많은 순례자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어 영적행사에 참가했다 한다. 강가에는 지방 각주의 왕들이 사원을 짓고 이곳에 와 기도하며 명상하기 위한 여러 개의
“Mandir”(Temple) 가 강가에 늘어서 있고 어떤 것은 제법 호화롭게 지은 것도 있다. 아침이라 날씨가 찬데 성수에 들어가 목욕하는 남자는 팬티만 입고
여자는 사리를 입은채로 물에 몸을 담갔다가 나온다.
그 사이에 해는 떠올라 행운의 일출을 맞이하여 신에게 감사한다.
배는 강 상류로 올라가 화장터로 향한다. 신성한 화장터에서 아침을 맞으며 “Manikarnika Ghat”(Ghat 는 강가에 시멘트로 계단을 만들어 논 것을 의미) 는 강가에 대규모 화장터로
아침 일찍부터 화장을 한다. 주변에는 사람들이 몰려있고 나무가 많이 쌓여있고
화장단위에는 나무를 쌓아놓고 연기가 나며 3구의 시신을 화장 중이다.
냄새가 나는 곳으로 다가가며 배에서 내려 화장터로 올라간다.
연기와 불꽃 속에 상 채 시신의 일부만 연소 되고 하체부분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다.
참 이상한 화장 방법이다. 나무를 적게 쌓아서 화장을 하기 때문 이란다.
어려운 사람에게는 나무 값이 부담이 되기 때문이란다. 보호자가 없이 죽은 자는 나라에서 처리하게 되는데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화장 후 마지막 나머지는 그대로 강으로 밀어 넣어 떠내보낸다. 그러면 영원히 다시 태어 나지 않는다고 한다. 화장터 뒤로 올라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니 소도 다니고 가축들의 배설물이 그대로 골목길에 떨어져 밟히기 일수이다.
사람이 혼자서 간신히 갈 수 있는 골목에 소, 사람, 똥이 함께 있으니 참 인내심이 무한대로 필요하다.
이들에겐 일상이라 표정이 없다. “Golden Temple” (황금사원)을 방문하기 위해 좁은 골목을 이어가다 가게에다 휴대품을 맡기고,
심지어 볼펜까지도 맡겨야한다. 좁은 골목을 내려가 우측으로 들어가니 황금사원 마당으로 들어간다.
사원의 탑은 좁은 곳이라 올려다 볼 수도 없다. 사원의 탑은 금으로 만들었는데 1 kg 의 순금으로 만들었다 한다.
원래 1500년 전 시바신의 사원 터로 그 아래로는 모스크 사원도 있어
힌두교와의 공존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나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많다 한다.
전에 이곳에서 충돌이 발생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경찰이 삼엄하게 경비하고 있고 힌두교인만 입장이 가능하며 외국인은 입장 불가라 우리는 담 밖에서 탑을 바라보기만 한다. 사원 방문을 마치고 골목을 나온다.
입장료가 아깝다는 생각을 하며 되돌아 나오니 좁은 골목의 상점도 문을 열고 호객을 한다.
다시 강가 화장터에 이르니 아까 화장하던 시신은 다 타버리고 연기만 난다.
다시 배로 돌아와 강물로 나오니 시신이 강물 위로 조금 노출된 채 떠내려 온다.
참 어이없는 아침 풍경, 이물에 목욕하고 세수하고 빨래하고 먹기도 한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아래로 내려오면서 “Gangatri Seva Santi” 사원 앞에는 성수에 목욕하는 남녀로 성황을 이룬다.
꼬마아이는 싫다고 하는데 아버지는 아이를 물에 넣었다가 꺼내기를 반복한다.
과연 어린이에게 축복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사리를 두른 여성은 두른 채로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온다.
남자는 팬티만 입고 수영도 하고 머리까지 물속에 잠수 하였다가 나와서 비누질을 하면서 몸을 닦는다.
이 도시에는 목욕탕이 없어 모두 갠지스 강이 이들의 목욕 장소이다. 강가의 Ghat 마다 까마귀 때가 몰려들고 원숭이가 올라 다니는 아침 풍경.
그 앞으로는 죽은 개가 물에 떠내려 온다. 그런데도 목욕은 계속되고 해가 뜨자 아침 빨래를 하는 남녀가 많이 보인다.
빨래 금지구역이라고 하는데도 마구 빨래를 한다.
한참 하구로 내려가니 이곳은 정식 빨래터이다. 강가에 빨래 돌이 놓여있고
돌에다 비비거나 큰 빨래는 돌에 처서 빨거나 큰 나무로 두들겨서 빤다.
세탁소 인듯하며 많은 빨래가 건조 중에 있으며 우리 돈으로 500원 정도면 다려서 주기도 한다고 한다. 강 건너로는 모래밭이 펼처 지고 강폭은 800~1000 m 정도이다.
건너편에는 모래사장이고 Ghat 가 없어 사람이 별로 없으나 드문 드문 목욕과 빨래를 한다.
이들에겐 간지스 강의 이런 모습이 일상생활로 그들의 전부인 것 같다.
배에서 내려 다시 가던 길로 올라오니 화장터가 보인다. 영구차로 시신 한 구가 들것에 실려 내려진다.
들것에 천으로 덮고 그 위 꽃 몇 송이로 장식한 것이 떠나는 이의 전부이다.
오늘 화장하는 자에게 명복을 빈다.
화장터를 지나오면서 화장 후 마구 비로 쓸어 먼지를 피워 무척 역겹지만
참고 견디고 인내하는 자세로 체험을 한다.
버스에 올라 호텔에 돌아와 휴식을 하며 오늘의 오전 체험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생각해 본다. 이제 바라나시에서 인생의 모든 종착역을 마지하여 마음의 평정을 찾아야 한다.
여기까지 세상 사에 부대끼며 살아온 하찮은 인생살이가 얼마나 부질없고 덧없는 것 일 가?
생명이 다하여 강가에서 한줌의 재로 변해 강물에 떠내려가면서
인생이란 그 져 세상에 왔다가 가는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스스로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다시 갠지스 강가에서 오늘은 새벽부터 갠지스 강을 오르내리면서 일출과 화장터,
목욕 장면 등을 본 후 오전 내내 휴식을 하고 오후 14:30분에 호텔을 나선다. “람네가성”을 방문하기 위해 어제와 같이 강가 로타리 까지 버스로 간 후
자전거 릭샤를 타고 터덜거리는 도로를 따라 삼성전자 매장 앞을 지나 “Karnatak Stat Ghat” 앞에서
배에 승선 “Nirajani Ghat” 를 지나 저 멀리 보이는 임시 강다리(Pontoon Bridge) 방향으로 배를 타고 내려간다.
“Ghat” 를 내려오다 2006.12.03일 세상을 떠나 24시간 내에 화장을 하고
13~15일 사이에 추모의식을 가진다는 힌디오(Hindio) 언어로 쓰인 초대장을 한장 얻어본다.
글을 전혀 알 없어 안내자에게 해독을 부탁하니 그런 답변이다. 이번에는 오후라 한가히 유람을 한다.
강 너로는 명상하는 사람, 고기 잡는 사람, 빨래하는 사람을 본다.
이곳 “Harish chandra Ghat”는 남쪽에 있는 곳으로 북쪽 “Manikarnika Ghat” 보다 규모는 작으나
“Dasaswamedh Ghat” 부근처럼 사람이 많이 모이지 않아 좀 한가하다.
오후에 아직 화장하는 시신이 없어 여기 Ghat 부근에서 조그만 발동선에 일행이 올라 탄다.
아래로 임시 가교가 가설된 쪽으로 강을 건너 내려가 다리 앞 모래톱에 배를 대고 내려서 도로로 올라간다.
모래톱에는 온통 사람의 배설물이 빈자리를 찾지 못할 정도로 깔려있다.
미안한 일이지만 화장실이 없다고 한다.
간신히 발길을 피해 옮기면서 도로로 올라가니 먼지가 너무 심하고 릭샤와 차가 엉킨 길을 따라 성으로 향한다.
이곳은 비교적 한적한 곳이라 성 앞에는 걸인도 장사꾼도 없다. 성을 지키고 관리하는 사람이 더 많다. 이성은 14~15 세기에 건축한 성이나 그 후 영국식으로 개조 건축하여
현재는 군인, 경찰이 일부에 거주하며 왼쪽은 박물관으로 이용한다. 박물관에 들어가니 18~19세기에 사용했던 마차, 영국의 자동차, 왕과 왕비가 사용하던 가마,
특히 “Singh Badadu” 왕의 1882년 사용하던 가마 등 여러 점이 전시되어 있다.
직물 박물관을 거처 무기 박물관에서 칼, 대소 소총, 은 칼집, 상아 칼집 등과 시간별 별자리를 알려주는 시계
등을 둘러보고 나와 17:00시경 다시 부교다리 옆에서 발동선에 올라 아까 오던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오후에 해지는 모습을 감상. 좋은 날씨이지만 지는 해는 구름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다시 올라가 “Dasaswamedh Ghat” 앞에 정박 시킨다.
이 가트는 창조의 신 “브라흐마”가 말을 10 마리 받쳐 제사를 지냈던 곳이라 한다.
이 가트는 그 옆 가트와 더불어 사람들이 많이 몰리고 대나무 우산이 여러개나 처진 곳이다.
주변에는 각종 성물을 팔려는 사람들이 언제나 참가자 보다 많이 보인다.
이곳에서 어둠이 내릴 때 까지 행사를 지켜보다가 이제 다시 “Harish Chandra Ghat” 로 내려오면서
4구의 시신을 화장하는 정경을 목격한다.
강가에서 보다 시신이 불속에서 타는 것이 뚜렷하게 보인다.
그 아래로 내려와 다시 오던대로 Ghat 를 올라와 나온다.
이번에는 찝 차를 타려는데 또 한구의 시신이 들것에 실리어 화장터로 내려간다.
이렇게 자주 연기로 사라져 가는 시한부 인생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이제 생명의 유한함에 담담해지는 느낌을 체득한다.
우리의 육신은 지상에서 영원으로 가는 티끌 같은 존재임을 실감한다.
죽음의 철학 같은 것을 몸으로 느낀다. 찝 차를 타고 호텔로 돌아와 먼지와 냄새를 대충 씻고 저녁식사에 소주 한 병을 곁드려 모두 날려보낸다.
인생은 살다가 생이 다하면 덧없이 연기로 화하는 것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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