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르 쉬즈 와즈는 파리에서 34km 떨어진 곳에 있다. 우리는 37세를 살다간 가난하고 고독한 색채의 화가 고흐가 생을 마치기 까지 70일간을 살면서 그림을 정열적으로 그렸든 그 장소들을 찾아보려고 이곳을 찾았다. 숙소는 이층의 작은방,가난해서 남긴것도 없는지 그림에 나오는 데로 의자와 침대 뿐이다.
마을은 집집마다 창가에도 길에도 마당에도 꽃들이 예쁘다. 그림에도 나오는 밀밭은 지금도 넓은 들판이 다 밀밭이다. 길가에는 빨간색 양귀꽃들이 하늘거리고 오베르의 성당도 언덕위에서 많은 여행자들의 발길을 머물게 한다.
고흐의 생전에는 그림이 한점만 판매됐으나
지금은 그림가격 상위권 10위안에 두점이나 있다고 한다. 빈센트 반고흐는 1853년 네델란드 시골의 가난한 개신교 목사인 아버지와 외형적인 성격의 어머니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유명한 왕실 제본사의 딸로 그림도 잘 그렸고 글 솜씨도 있었다. 고흐는 어렸을적에 그림을 잘 그린것은 아니지만 30여점의 그림이 남아있다. 15살때 가정사정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고흐는 숙부가 파리의 유명한 화랑인 "구필 화랑 "의 네델란드지점을 하고있어 1869년 7월 숙부의 권유로 헤이그의 구필화랑에서 판화와 복제화를 파는일을 담당하면서 독서와 미술과 관람을 즐기는 청년기를 보낸다.
1872년에는 동생 테오와 함께 일하면서 고흐의 일생에서 제일 행복한 기간을 보낸다. 그 후 동생과 편지를 주고받는데 편지는 668통이나 남아있다.
1886년 2월 파리 몽마르트 거리에서 동생테오와 함께 생활한다. 그리고 이때 파리의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보고 네델란드시절의 어두운 그림에서 강한 색채의 그림을 그리고 의욕적인 전시회도 하지만 화가들과의 교류가 잘 안되고 파리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파리에서 1년 6개월만에 파리를 떠날 결심을 한다. 파리를 떠나 1888년 2월 아를에서 생활하면서 그림도 그리고 10월에는 고갱과 함께 한집에서 동생 테오가 보내주는 돈으로 생활한다. 한동안은 안정된 생활을 하지만 정신적인 안정을 찾지못해 1888년 12월 23일에는 자신의 귀를 자르는 행동을한다. 이로인해 병원에 수용된다. 1890년 병원에서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전시회에도 출품하면서 화가들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기 시작한다. 1890년5월17일 고흐는 혼자서 오베르 쉬즈 와즈로 온다. 그리고 이곳에서 치열하게 그림만 그리다가 1890년 7월29일 새벽 권총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동생 테오는 형의 주머니에서 마지막 편지를 본다 "그래 나의 그림,그것을 위해 나는 나의 목숨을 걸었고 이성 까지도 반쯤 파묻었다" 그후 테오는 6개월후 33세의 나이로 발작을 일으키고 사망한다. 형제는 나란히 누워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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