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종 여행기/오키나와여행기

앙코르와트와 하롱베이

땡큐 이영옥 2008. 3. 22. 22:08

30년이 넘는 교직생활을 물러나온 우리는 회원들의 의견을 모아 이번에는 해외 문화재를 탐방하는 기회를  마련하였다.

1월24일: 겨울 추위가 오늘은 좀 누그러진 것 같으나 여전히 쌀쌀 하였다.

07:00 공항로에 나오니 20여분의 기다림 속에 버스에 탑승. 08:00 정각 인천공항  H Terminal 에 도착하니 반가운 얼굴들이 보였다.

겨울 휴가철이라 인천공항은 학생들, 어린이들, 여행객들로 초만원이다. 검색대를 통과하기가 만만치 않을것 같다. 46 Gate 에 이르니  Vietnam Airline Boing 777 기가 제법 큰 동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939항공편은 10:40분 경 이륙 한반도를 따라 남으로 대만 방향으로 남하하기 시작 하였다. 6시간이 소요되어 호치민시(옛  Saigon)  Tan son nut  공항에 착륙하니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시차가 2시간이라 현지 시간으로 14:20분이다.

비행기에서 내려  Transit 대로 향하니, 3명이 여권 심사대에 군복을 입고 않아 업무처리가 답답하게 이어져 갔다. 30분만에 심사를 끝내고  Cambodia  Siem  Reap 으로 가는 방향으로 따라가니, 아까 내린곳과 동일한 통로 옆 유리로 분리 된 곳에 이르니 활주로 방향에 공항이 훤하게 바라다 보였다. 그 옛날 자유월남 당시 공항이 그대로 남아있어 너무 낙후한 것으로 보였다.

1975년 월남 패망시 대통령  Guen Van Tieu 는 이곳을 통해 영국으로, 수상 Guen Kao Ky 는 미국으로 도주한 것이 벌써 30년의 세월이 흘러 무상한 감이 들었다. 꽁가이  베트남 처녀의 하늘색 아오자이 복장이 눈길을 끌었다.

한시간 후  Siem Reap    VN 823 쌍발 푸로펠러 비행기에 맨 앞 자리에 탑승. 비행기는 시끄럽게 소리내며 이륙. 호치민시 상공으로 오르니 시내가 회색과 흰색의 도시로 생동감이 없는 듯하다. 그 옛날 동양의 파리란 명성은 어디로 갔을가?

맑은 하늘을 가로 질러 한시간 정도 비행하니 메콩강의 줄기만 내려다 보이고, 밀림이 군데 군데 보이는 것이 전부다. 잠시 후 큰 호수 ( Ton le Sap) 가 나타나면서 잔잔한 바다 같은 끝없는 지역을 비행, 16:50분  Siem Reap  공항에 착륙하니  바람이 시원하다.

단층의 공항 청사 앞에 시하누크 부부와 그 아들 국왕의 대형 초상화와 크메르 국기가 나부 낀다. 입헌 군주국가 냄새가 풍기었다.  청사에 들어오니 좀 시원 하였다. 30분을 기다린 끝에  입국심사 완료. 일본, 중국, 한국 관광객이 주류를 이루었고 미국인 2명이 전부였다.

버스에 올라 한국인 안내자 최 인식 씨가 소개 되었다.  제법 깨끗한 호텔이  보이는 거리를 지나 한국관이란 식당에 이르러 저녁 식사. 순 국내식인 한식으로 소주 2병, 베트남 술 한병으로 장도를 자축 하였다.

 Khermara Angkor Hotel 에 이르니 21:00시경. 239호실에 Cambodia의 밤은 깊어 갔다.

이곳은 관광지라 모두 새롭게 건설되어 비교적 깨끗하였다. 아침 식사는 호텔  야외 수영장 옆 분수대 앞에서 제법 우아하게 부패식으로 진행하였다.  캄보디아 는 197578년 사이에 폴 포트 가 사회주의 이상국가를 건설한다는 미명하에 약 300만 명에 이르는 전정권의 관리, 사상 의심자 등을 처형하여 악명 높은 의 나라로 알려졌고 그후 친미 성향의 훈센총리가 실권을 장악하였고 시아누크 국왕 3개월 전 시아모니 아들에게 왕위를 승계 한 입헌 군주국가이다.

1월25일: 기원전후 해상  Silk Road 에 부남국이 있었는데 7세기경 크메르국은 부남국의 속국이라고 신당서(新唐書)에 기록되어있고, 그 후 9-14세기 간 약 500년간에 앙코르 문명이 존속 되었다 한다. 802년  Kmer 를 통일한  자야바르만 2세에 의해 국가가 건설되고 12세기 초 수라바야 2세에 의해 건설되기 시작한 분묘사원, 그 후 자야바르만 7세 40년간 재위시 현재의 사원 건설, 102개의 치료시설, 121개의 간선도롤 건설, 12세기 전성기에  Angkor Thom(앙코르 돔), Bayon(바이욘 사원) 사원 건설, 이후 500년간 지탱하여온 왕조의 물락 후  16세기에는 불교사원으로 변신 하였다가 그대로 방치되었다가 1861년 불란서인 탐험가 앙리 무어가 재발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1992년  UNESCO  가 지정한 문화유산이다. 현재는 12 개국이 복원사업에 참가중이다. 입장료는 1일 20$, 2일 30$, 3일40$로 비싼편이다. 그러나 자국인은 무료다. 입구에는 수라바야만 2세가 건설(1112-52)한 인공 해자(垓字)가 5.5 km 에 이른다.

 “ Ta Prohm ,타프롬 사원

1180-1219년간에 자야바르만 7세가 건설한것으로 어머니를 위한것이라 한다. 나무가 자라면서 유적을 파괴하고 붕괴시키는 것을 보여주는 곳이다. 사원 곳곳에 거대한 나무들이 탑을 둘러쌓고 자라나서 그 뿌리가 뻗어내려 가면서 휘감겨 붕괴시키는 현장이다. 이제는 너무 파괴되고 나무가 크게 자라나 복원이 불가능 하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사원의 석주, 석탑들을 뿌리가 감고 자라나서 마치 뱀처럼 보인다.

최근 영화 안제리자 줄리 주연의 Tomb Raider에서 그가 지하로 추락하면서 땅속으로 뻗은 나무뿌리를 잡고 살아나는 장면에서 여러 팔이 달린 불상이 달려드는 액션영화 촬영지로 더욱 유명해 졌다. 이곳은  Kmer 왕국이 수도를 옮기면서 알려지지 않고 밀림에 묻친곳 이었다. 약 30 km 에 걸처 유적이 산재해 있다.

타프롬 사원으로 들어가는 문위에 조각한 칼라신은 수문장 역할을 하며 벽면에 도깨비가 조각 되었다. 벽을 쌓는데 사용한 돌은 라페라이트 라는 돌로 강도는 약하다. 조각이나 부조(浮彫)를 한돌은 사암을 이용하여 비교적 정교하게 한것으로 보인다. 곳곳에 서있는 거대한 나무는 고무나무과의 이엉나무로 원액을 채취 사용한다고 한다.

Prea Khan  사원:  이는 신성한 칼을 의미한다. 시간속에 묻처버린 흔적으로 바이욘사원에서 북문을 지나 3 km 지점에 위치. 자야바르만 7세 12 세기에 건설, 부처님께 봉헌 하였다. 복원은 안되었지만 비교적 잘 보존이 된 곳이다. 이 사원은 처음에는 불상을 조각하면서 건립 되었으나 점차 힌두교의 설화와 신성함을 나타내는 조각으로 변화되었다.

 Angkor Thom

Angkor Thom  Angkor Wat 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곳으로 앙코르 와트 북으로 1.5 km 떨어진 곳에 한변이 3 km 의 정방형 모양으로 높이 8 m 의 붉은색의 라테라이트 돌로 성벽을 쌓고 너비 약 100 m 의 수로로 둘러 쌓여 있다.

앙코르 돔과 황금탑이라 불리는 중앙사원인 Bayon 사원은 크메르 왕조 붕괴 직전인 1181-1220년 간에 자야바르만 7세에 의해 축조된 최후의 불교사원이다.약 45만평 부지에 절반은 왕궁과 신전이 차지하고 나머지에는 왕족, 승려가 살았다 한다. 당시에는 바로크 양식으로 된 왕궁과 신전이 있었고 10만 명의 주민이 살았고, 주변에는 100만 명의 거대도시 였다 하나 현재는 돌로 된 기념비 만이 남은 상태이며 남머지 건축물은 모두 사라졌다. 미소를 띠고있는 수 많은 자야바르만 부처와 남문쪽의 돌 거인상, 오른쪽에 악마의 석상이 남아있다. 코끼리 테라스 는 300 m 가 넘는 긴 벽에 수많은 코끼리가 무리로 움직이는 섬세한 조각, 벽에서 뛰어 나올 것 같은 역동감이 난다. 다음에 나타나는 문둥이 테라스는 전설에 의하면 왕 앞에서  항명한 신하의 목을 베니 독기가 나와 왕이 문둥병이 걸렸다는 신화를 조각하였으며 문둥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조각이 섬세하게 표현됐고  그 상이 자야바르만 7세 왕과 같이 보이니 왕이 문둥병 환자로 추정 된다.

왕궁 터는 붕괴되어 터만 남고 앞에 승리의 문 좌우에 탑만이 여러 개 남아있다. 왕궁 터 왼편에사원 앞에서 소마공주 의 얼킨 사연을 들으며, 이 사원은 오르고 내리기가 무척 어렵게 생겼는데 그 당시 신이 아니면  출입이 불가능 하지 않았을까? 그 앞에서 야자음료를 시음하면서 휴식을 취하였다. 다음에  옴겨간 Baphuon 신전은 복원중인 곳으로 1060년 우디야디트바르만 2세가 세운 것으로 앙코르 사원 이전부터 존재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는 프랑스가 복구공사 중이다.

남문의 성문 위에는 바위 조각으로 맞춘 4개의 얼굴상이 독특한 형상을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고푸라 탑문이며 이문을 통과하여야  Angkor Thom  내부로 들어간다. 

  Bayon 사원

바이욘 사원은 앙코르 돔 도시 정면 중앙에 위치한 중심도시로서 동서와 남북으로 난 두개의 도로로 인해 도시가 4등분되어 있다. 북쪽에는 왕궁이 자리잡고 바이온 사원이 중앙에 세워졌다. 북문,서문, 남문, 동문은 승리의 문, 사자의 문이 대신하고 있다.

이 사원은 3층 구조로 이루어 졌다. 1층은 8개의 코푸라 문과 16면 사각형 구조, 2층도 같은 구조나 3층은 지성소로 원형 탑 모습이다. 각층과 벽면은 갤러리와 문, 별실로 미로처럼 구성 되었고 1200m 의 갤러리에 1000여 점 섬세하고 멋진 부조(浮彫)가 새겨져 있다.

사원의 외곽으로 54개의 크고 작은 미소 조각상이 역사책의 역할을 하는듯하며 중앙 성문을 감싸고 있는 여러 탑의 바이욘의 미소가 우리를 기쁘게 한다. 인자한 모습을 Smile of Angkor 라 표현한다. 일층 갤러리는 자야바르만 7세의 전승과 평화로웠던  시절을 부조로 새긴 벽이 찬란하게 연결되었다. 사면 벽에 병사들이 코끼리를 타고 전장에 나가는 장면부터 승리하기 까지의 여러 장면이 조각으로 표현된 것이 압권이다.

자야바르만 7세의 임종의 모습도 뛰어나다. 배를 타고 전투를 하는 장면의 연속부조와 승리에 이르는 부조는 역사의 기록이다.

Angkor Wat

 Cambodia Angkor 지역에는  A.D 790-1432 년 사이 600년간 이 지역을 지배했던  Kmer 왕국이 있었고, 9-12세기에 힌두교 사원이 세워졌다.

앙코르 와트는 사원의 도시라는 뜻이다. 1113-1150년 사이 37년 간 수라바야만 2세에 의해 25000여 명의 인력이 동원되어 둘레 6 km 에 거처 건설되고 14-15세기에  Angkor Wat 라 붙여진 것으로 세계7대 불가사의(不可思議)의 하나이다. 이 축조물은 왕권의 신격화가 배경을 이룬 것이다. 동서 1.5 km, 남북 1.3 km 의 정 사각형의 사원 으로 다섯개의 정상탑은 힌두교의 우주 중심 및 메루산 (수미산)의 상징이고 높이 65 m 의 중앙탑은 히말라야 영봉을 상징한다. 전반적으로 분묘사원으로 보아야 하며, 길이 5.5 km, 폭 100 m 의 해자가 앞에 위치하고, 다리는 1세기 후에 만든 것이고, 난간의 구조는 나가의 형상으로 뱀의 상징이며 팔이 8개가 달린 비�상이다.

사원 입구 좌우에는 도서관 건물이 있으나 천문 관측소라는 설도 있으며 현재 일본이 다리의 좌측 건물을 복원중이다. 1860년에 재발견 되었고  UNESCO 1234 호로 지정된 세계 문화유산이다.

사원은 거대한 사암으로 축조된 돌의 구조로 정문 좌우에 회랑이 있으며 서쪽부터 제1회랑은 200 m 정도로 그 벽에는 아래부터 위까지 인도 서사시 Ramayana 를 벽면에 부조하였고 중앙부터 우측 회랑에는 서사시 Mahabharata 를 부조로 표현하였고  다음에는  Angkor 제국의 역사를 부조 하였다. 제일회랑  북서 코너에는  Vishnu(the God)  의 전투장면을 차례로 부조 하였고 우산을 쓰고 출전한 장수들의 죽어가는  모습을 표현 하였다.

돌아서 북쪽 벽에는  Suryavarman 2 세 왕의 Vishnu 신으로 탄생하는 생전의 모습은 신과 똑 같은 형상으로 부조로 표현 하였고 코끼리를 타고 전쟁터에 나가는 모습, 우산이 15 개나 호위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다음 남쪽으로 이어진 면에는 Heaven and Hell( 천국과 지옥)에서 인간이 심판받는 여러 장면이 사실적으로 표현 되었다. 여기서 부터는 천정이 연꽃무늬로 조각 되었다. 지옥의 모습에서는 눈이 뽑히고 온몸에 못질을 당하는 형벌을 받는 사람의 고통스런 장면이 차례로 부조 되었다.

중앙에는 심판관이 죄인을 형벌하고, 죄인은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이 표현 되었다. 악신이 아미타 세계로 가기 위한 행위가 부조 되었고 선신과 악신은 죄인들이 1000년을 두고 서로 당기는 고통스런 인간의 행동을 부조하여 놓았다.

우리는 한동안 중앙광장에서 휴식 후 중앙탑으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을 기어 올라 가니 중앙탑 의 거대한 통 돌로 된 탑 안에 불상이 안치 되었다. 전에는 이 사원 안에 천개의 불상이 안치 되었다 하나 지금은 없다. 돌탑에는 사방으로 Apsara라는 아름다운 여신의 조각상이 새겨 져 있다.  도대체  이 거대한 돌을 어떻게 옮겨 왔으며 무슨 방법으로  이렇게 높은 곳까지 올려 쌓았을까? 또 그 높은 곳에 어떻게 조각을 하였는지 후세 인간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로 보였다.

 17:50분 일몰의 광경을 보기위해 서쪽 회랑 위에서 휴식. 태양은 한참 후에 구름속으로 사라지는 희안한 것으로 막을 내렸다. 우측계단으로 내려오니 18:00시가 넘었다.

 5개의 탑은 기하학적으로 쌓았고, 회랑의 기둥이나 벽면까지 빽빽하게 부조를 한 놀라운 기술은 어떻게 설명하수 있을까?  당시 크메르 인들은 모두가 역사(力士)이고 조각가 였을 까? 또 장비가 없었던 시절 37년간에 이 거대한 돌의 사원을 어떻게 축조할 수 있었나? 무게로만 처도 수백만 톤의 돌이고,  더구나 이 근처에는 산도 돌도 없는데 어떻게 운반 하고, 그렇게 높은 곳으로 쌓아 올릴 수 있을까? 돌을 이어 부치는 기술도 놀랍다. 물이 새지 않으니, 그 당시에도 접착기술이 있단 말인가? 의문이 꼬리를 무니 불가사의의 연속이다.

1월26일: 오늘은 08:30분 호텔을 출발해  Siem Reap 시내를 통과해 가는데 도로 양쪽 상가는 지저분함의 극치라 할가?  Siem Reap 강이 황토색으로 흐르는 강가에 오두막 같은 주거 모습은 시내와는 달리 옛날로 거꾸로 돌아간 모습. 맨발의 주민들, 윗 상의를 벗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호수는 건기라 한참을 뚝으로 들어가야 한다. 길 좌우에는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야지나무 잎으로 역어진 집이 뚝가에 늘어서 있고 냄새가 지독하다.

뚝길로 조금 들어가니 논이 좌우로 비옥하게 전개되고 농약을 뿌리는 농부의 모습도 보인다. 30분 만에  Ton Le Sap  호수 선착장에 도착하니 냄새가 역하다. 관광객과 현지인이 뒤섞이어 관광선에 안내되니 우리는 8명씩 두개의 배에 나누어 타고 미로 같은 더러운 수로를 빠져 나갔다. 좌우에는 각종 장사꾼, 수상족의 집, 상점 등이 물위에 떠 있다. 여인들은 빨래도 하고 취사도 하고 냄비는 빛나게 닦아 걸어 논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 호수 물로 생활용수, 식수, 빨래도 하고 용변도 자연 배출이니 어찌하랴!

 호수는 동양 최대로 길이 129 km, 폭 49 km, 850종의 물고기가 서식한다. 군데 군데 고기를 잡으려고 조그만 배에 서서 그물을 들고 투망을 한다. 물론 하의만 입고 상의는 항상 안 입는다. 여기서 잡히는 새우는 젓갈로 사용하며, 양식장도 눈에 띤다.  민물새우가 많이 잡힌다. 호수에서 20분쯤 나간 곳에 수상 시장이 열린 곳에 들렀다. 그곳에서 새우튀김과  Angkor 맥주, 음료수로 휴식. 새우는 튀기어 소금 기름에 찍어 먹으니 맛이 좋다.  이 호수는 메콩강으로 연결되었고 현재는 건기로 물이 적다. 우기에는 메콩강 물이 역류하여 2-3배의 수량이 되어 호수가 넓어지고 건기에는 물이 방출되어 메콩 델타의 농업용수로 사용도된다. 10:30분  경 호수 관광을 마치고 호텔로 귀환.

한동안 휴식 후 12:00 체크 아우트. 인근의 상황(桑黃) 버섯 전시장으로 갔다.

상황버섯이란 뽕나무 그루터기에 자생하는 노란색의 버섯으로, 영지버섯에 이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버섯 류의 식물. 물에 달여서 농도를 맞추어 음료수 처럼 복용한다.

최근 캄보디아 산이 좋다는 소문에 힘입어 이곳에서 이것을 채취하여 상품화한 것을 우리는 상당량 구입을 하였다.

그 효능은 면역력 증강, 암, 당뇨, 각종 알레르기 질환에 효능이 있어 상황버섯 100g 에 2 L 물을 넣고 1 L 가 될 때 까지 고온에서 끓이며, 재탕, 삼탕도 가능하며, 10일 복용, 1일 5회, 회당 100 cc  정도를 음용한다.

점심은 漢식당에서 우거지 탕이 일미라 호평, 나이는 어찌 속이랴?

 식후 작년에 새로이 개방한  Folk Village 를 방문. 자료실에 는 그림으로 자야바르만 7세 왕과 왕비, 압살라의 궁중 생활 모습,  16세기의 장군 기마상,  시아누크 국왕가의 사람들의 모습. 고산족의 생활상, 60년대 가수의 활약상, 어는 캄보디아 가정의 생활모습  등 다양한  그네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나 빈약하기 이를데 없다.

 베트남 참족과의 전투장면 등,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앙코르 사원 축조 시 일꾼들이 어떻게 노동을 하였는가를 보여주는 그림이며, 프놈펜 로얄 패리스 미니아처 등이 돋보였으며, 현왕궁은 1886년에   Norodom 왕  건축했다 한다.  최초의 사원은 나무와 루핑 타일로 지어 졌고, 왕궁의 벽화는 1873년 그렸다는 기록이 있다. Napoleon Temple 1876년 건축 하였고,  Silver Pagoda 는 1892-1902년에 건축 되었다고 쓰여있다.

 도중에 민속쇼를 30분간 관람 후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나왔다. 전체적으로는 새로 문을 열었기 때문에 너무 허술하다.

다음에는 쇼핑 장으로 이동 휴식 후  마지막으로 내전 시  폴 포트 정권에 희생되어  캄보디아가 Killing Field 라는 오명을 쓰게 된 당시에 희생자들의 유골을 모아 봉안한  한 사원을 방문하고 말만 들어온 유골 더미에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유골 탑 안에 두개골과 뼈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것을 보고 참으로 정권의 만행이 빚어낸 결과에 치를 떨 수 밖에 없었다. 순박한 크메르인이 사상 논쟁으로 300만이나 숨져간 나라여! 

공항으로 이동,  Siem Reap 공항에 이르니 한국 사람들로 가득. 17:40분 이륙, 19:30분 하노이 노바이 공항에 착륙하니 너무나 어두워 전력난이 심각함을 느끼었다.

하노이는 홍강이 가운데로 흐르는 호반 도시로서 1010년 수도로 되었고, 베트남은 남북으로 2500 km, 1번 국도 1700 km,폭은 작은 데가 54 km에서 700 km  까지 넓으며 해안선 길이 3200km, 면적 33만 평방 키로 미터, 인구 8500만 명, 하노이 500만, 호지민시는 700백만이다. 열차로 하노이-호지민 간은 36시간 소요된다. 날씨도 다양하고, 민족도 소수민족이 다양하게 살아간다. 농업이 주이나 지하자원은 아주 풍부한 나라이다.

치안이 비교적 양호하나 마약사범 등은 공개 처형한다. 한국 새마을 운동을 모델로 수입하여 농촌운동으로 삼고있다. 공항에서 나가는 2층 도로에는 한국  L.G 그룹의 광고가 밝게 일정한 간격으로 달려 있어 퍽 인상적이었다.

1982년 도이 모이 (개혁, 개방)정책을 실시하며 농산물은 싸나 기타 물가는 비싼편이다.

 GDP 는 450$, 도시는 2천-3천 $, 국토의 75%가 산지며 농업에 71%가 종사한다.

  Ho chmin 의 묘-바딘광장

1월27일: 오늘은 하노이시의 명소를 방문하는 날이다. 먼저 찾아간 곳은 국가지도자인 <胡 志名>이 미이라로 잠들어 있는 곳이다.

베트남 국회의사당 건물이 작은 규모로 지어 졌고, 건너편 바딘 광장에는 회색의 대리석으로 된 사각형 석조물이 베트남의 독립통일의 두 가지 과업을 이룬 위대한 지도자 호지민의 묘이다.

묘지내에서는 입장객의 모자,소지품 등이 휴대가 안되며, 잡담도 금지된 채 조용히 참배하여야 한다. 그의 시신은 유리관에 안치되어 환한 모습으로 인민에게 다가가며, 병사 4명이 지키고 있다. 호지민은 1890년 9월2일 낀리라는 농촌마을에서 2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났고, 부친은 마지막 관리로 청렴하게 어렵게 살았으며, 호는 정규교육이 아닌 서당에서 배웠다. 14세 때 어머니의 사망으로 가족이 다 흩어져 버려 그는 프랑스와 맞서 싸우는 베트민에 가입, 영국으로가 3개월 후인 1924년 프랑스로 건너가 공산당을 창립한 후, 세계 각지에 공산당 초청으로 여행기회가 많아졌고, 그 후 8년간  Mosco 에서 수학한 후 어떠한 이념이나 주의도 없이 일생동안 조국해방을 위해 헌신하였고, 자신이 죽은 후에는 화장을 유언 했으나 그 반대로 국익을 위해 시신이 보관되어 추앙을 받고 있다. 그는 평생 베트남 소수민족인 54개의 민족 단합을 위해 바첬으며, 가난과 외세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 헌신 하였다.

1945년 일제에서 해방, 하노이 입성,  그 후 베트남 건설에 매진하지 15년 만인 1969년 사망하여 75년에 묘지 건립. 의회건물이 작게 지어진 것도 그의 검소한 의식에서 나온 유언으로 된 것이다.

그 옆  그의 유물관은  총독관저로 바오다이 황제가 사용했던 곳이나 수리 중이다.

 이곳에 야자나무는 아주 하나도 버릴것이 없는 식물로 신이 내린 귀중한 자연의 선물이다. 호지명의 집무실은 3칸 정도로 된 침실, 사무실, 서재가 나란히 붙어있는 일자집으로 작아 아주 검소하게 독신으로 생활한 것으로 보였다. 그 옆에는 그가 소련에서 선물로 받은 고급 승용차가 2대 보관 되었으나 평생을 걸어 다녔다 한다. 그의 제2 집무실은 호수 가에 목조로 지어져 개방되었고 1958-69년 사이에 사용되었다 한다.

孔子 사당과 국자감

공자사당은 1070년 에 건립되어 공자를 모시고, 유교사상이 베트남 사회에 폭 넓게 영향을 주었다. 사당으로 들어가는 곳에 규문각은 건축미와 균형감으로 유명한 건축물이다. 그 안에 위치한 국자감은 우리나라의 성균관과 같은 최초의 국학기관으로 매 3년마다 실시되는 국가고시를 통한 합격자의 명단이 1484-1780년 까지 82회에 걸 처 합격한 1306명의 성명,나이, 출생지가 새겨진 82개의 비석이 거북이 위에 전시되어 있다.

사당 안에는  청나라 강희제의 글인 萬世師表 (스승은 만세의 근본이다)라는 말이 현판에 새겨져 있다. 문묘에는 공자상과 그의 제자 증자, 맹자,사자, 안자 4인의 석고상이 안치되어 있다.

한기둥 사원

이 사원은 1049년 리.하이퉁 왕조때 축조된 자그마한 기도처로 가로,세로 3 m 정도의 정사각형으로 지어 졌다. 지름 1.25 m 의 원형 석주위에 세워졌다. 연못 한가운에 서있고  연꽃모양으로 보이며, 뒤에는 보리수 나무가 서있다. 기도가 잘 받아 들여진다는 소문으로 사람들이 붐빈다.

전쟁 박물관: 2층 건물로 지어 졌고 독립 투쟁당시의 유물과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들어가면 왼쪽 마당에 미그기 1대가 전시되어 있다. 이비행기는 미군기 14대를 격추시킨 전설적인 비행기란다. 또 오른쪽에  T54 소련제 Tank 한대는 남부월남 해방당시  Saigon 당시 대통령 궁에 최초로 진입한 것이라 한다. 105 mm 곡사포도 전시되어 그 당시에 무기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안에 전시관에는 프랑스(1930-45), 일본, 미국과 싸워  이긴 게릴라 전쟁 영웅인 <보 구엔 지압>, <호 치민> 등의 업적이 사진으로 전시 되었다. 지압은 세계 100대 전략가의 한사람으로 추앙되고 있다.

호안 킴 호수: 이호수는 하노이 중심부에 위치 수심 6 m 로 나라에 큰일이 생길때마다 거북이 나타난다는 전설적인 곳이다. 거북으로 부터 보검을 받아 베트남 레왕조의 태조가 중국의 침략을 격퇴시켰다는 일화가 있다.  이섬에 세워진 사당은 텐곡 손이라 부르며 섬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번화가인 하노이 딘티엔 호양 거리와 훅교로 연결 되었다. 또한 13 세기 몽고군을 물리친 찬 홍 타오 장군 을 모신 사당이다. 시내로 나오니 도로에는 쎄바이(오토바이) 가 거대한 물결을 이루고, 승용차나 버스는 그사이로 재주 좋아야 운전을 한다. 하노이는 500만 인구에 1200만 대의 오토바이가 다닌다니, 가히 천국이다.  그것도 2-3명이 함께 타고 다닌다. 아침에는  하노이 호텔  옆 호수가에 있는 초등학교를  산책해 보니 부모가 자녀를 전부 오토바이에 태워 등교 시키느라 수라장이다.걸어오는 학생은 아주 적다.

하노이 시내의 관광을 마친 후 한국 식당에서 중식을 한 후 하롱베이로 가기위해 180 km 의 장거리 투어에 들어갔다. 하노이 시내에서 동남 12 km 지점 삼거리에서 하아퐁(91 km) 방면이 아닌 왼쪽으로 도로를 바꿔 시속 40 km 도 안되게 달려 간다. 왕복 일개 차선이나 오토바이 자전거 등이 마구다녀  차선을 지킬 수도 없다. 좌우에는 끊임없이 전개 되는 논들이 겨울이라 빈 땅으로 놀고 있다. 그 논에는 소떼나 물소들이 풀을 뜯고 한가롭게 쉬고 있다. 국토의 70%가 산지라 하나 이곳 평야는 끝다은 곳이 보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베트남 최대의 곡창지대로 보인다. 간간히 나타나는 대로변의 소 도시는 전면 4 m 후면 10-15 m 의 콘크리트 2-3층 건물이 상가와 주거를 겸하고 있다. 길 쪽 앞면만 페인트를 칠해서 측면은 보기가 흉하다. 페인트 값이 비싸서 그렇다한다.

한시간 이상 달려도 끝없는 논의 연속이다. 2시간 정도지나는 곳에서는 논에 모를 심는 농부가 많아 이곳은 2모작이 한창이다. 우리나라 60년대의 모습으로 사람이 직접 모를 심고 논에 물을 댄다. 

4시간이 넘게 달려온 하롱베이 관광단지는 이제 한창 건설 중이다. 우리는  Royal Hotel  3층 콘도에 여장을 풀었다.(216호) 새로 지은 시설이라 실내가 넓고  욕실도 아주 세련되어 있다. 우리나라  Arirang T.V 도 시청할 수 있다. 창밖은 바로 수영장이고 바다는 100 m 앞에 전개 된다. 우리는 식당에서 저녁을  Round Table 에서 10코스 정도의 특이한 식사를 소주를 곁드려 한시간 정도 담소 하면서 진행 . 21:00시경에  야외 수영장에서 10시가 넘도록 담소시간을 가졌다.

1월28일: 아침 08:00시경  하롱베이로 향하는 선착장에 도착하니 관광선이 가득하다.  Halong Dream 이라는 중형배를 우리만 타고 30분정도 바다로 나가 동굴이 있는 선착장에 도착.

이곳은 카르스트 지형으로 500만년전에 바다였다가 솟아올라 섬이 형성된곳으로 300여개의 섬중 1500개가 베트남 쾅린성에 속해있고 나머지는 통킹만지역에 있으며 현재는 50여개의 섬만이 관광이 가능하며 빼어난 경치로 1994년  UNESCO 자연 유산으로 지정되오 있다.

먼저 섬에 상륙하여 계단을 올라 동굴로 들어 갔다. 하얀 궁전이란 별칭대로 물끼가 없는 동굴로 광장 높이가 30 m 정도, 광장에는 기묘한 종유석, 석순이 얼커 있는 모습은 우리나라 동굴과 흡사하다.  반대편 출구로 나와 다시 배를타고 이제 부터는 바다로 나간다. 섬이 점점이 떠있고 그 섬 너머로 또 섬이 오버랩되어 끊임없이 연결된다. 진짜 바다의 선경이다. 안개 속에 크고 작은 바위섬은 검프르게 보이고 어느섬이고 나무들이 바위에 붙어  천년의 세월을 견뎌가는 것 같았다. 2시간 이상을 섬사이로 배가 나가면서 끝없는 절경이 어진다. 중국 계림에 비유할 수 없는 규모이다. 조물주가 어떻게 이런 천혜의 절경을 이곳에 내려 주었을까?

우리는 2시간 정도의 산상 유람을 하고 수상 시장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바다돔 3 kg  정도 나가는 생선을 사서 이내 한국식으로 회감을 선상 조리사에 의뢰, 잠시 후 먹음직 스런 생선회 파티가 우리의 국산 양주 진로 참이슬과 더불어 진행되어 기쁨을 두배로 하였다.

 배는 어느덧  Tip-Top  섬에 도착. 이섬의 이름은 호치민이 소련 방문시 우주선을 만드는데 공헌한 학자와 친분관계를 맺은 사람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섬이다.

1992년 호치민이  Tip-Top 과 산책한 곳으로 정상까지 80 m 높이에 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중간에 전망대기 있고, 정산에는 아주 무한대로 보이는 전망대가 있어 더욱더 아름다운 섬을 바라볼 수 있다. 섬 너머로 또 섬이 끝없이 안개속에 나타나는 바다. 전망대에서 기념촬영을  한후 다시 배로 돌아와 또 제2의  파티와 식사가 계속되면서 회항길에 오르니 12:30분.

또다시 장도에 올라  하노이로 귀환길에 올라 가던길을 되돌아 오니 하노이 시내는 오후 퇴근 무렵이라 오토바이,자전거 물결로 초만원. 간신히 수상인형극 공연장에 도착. 30분간 수상극 관람. 물과 가까운 자연조건, 농민의 고달픈 삶을 수상 인형극이란 예술로 승화시킨 인형극은 베트남의 토지의 혼이며, 물을 이용하여 인형을 조종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것이나 인형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선녀들의 노래와 춤에 맞추어 오리떼가 헤엄을 치면 물은 아주 잔잔하게 흐르고 수군들의 전투나 힘센 용이 출현하면 물은 사납게 춤춘다.

1999년 한국에와서 공연한바가 있으며, 전세계를 상대로 공연을 한다고 한다.

 시내로 들어 오면서 오토바이에 밀려 교통이 정체되고, 우리는 이번에는 베트남 민속품과 농산물 센터를 방문하여 한동안 휴식을 하였다.

마지막 식사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인삼 가든에서 김치 찌게 백반으로  마친 후 공항으로 이동 여유있게 비행기를 기다리다 자정이 지나서야  VN 936편에 탑승하여 밤새 비행하여 한국시간으로 06:40분 인천공항에 안착. 다시 한겨울 추운나라로 귀환. 겨울비가 조금씩 내리는 가운데 일정을 마치었다.   (End)

05-02-03 15:43     IP : 211.204.2.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