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북극권의 섬나라 Iceland 탐구
이 Keplavik 공항은 수도 Reykavik의 관문으로 2차대전시 미국이 건설한 곳으로, 당시 이 공항에서 발진한 연합국의 공군기들이 독일지역을 공습하여 2차대전의 승기를 잡는 계기가 되었던 전략 요충지였다.
이제 전혀 생소한 북극지방의 섬나라에 와서 버스로 공항을 나서니 4차선 도로가 뻗어있다. 아이스란드는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으로 1번 도로가 섬의 해안을 따라 나 있다. 인구가 해안가에 살기 때문이다. 내륙에는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라서 도로가 내륙으로 들어갈 이유가 없다. 차도를 따라 해안가에 주택이 있고 도로 가에는 수산물 가공공장이 즐비하다. 오른쪽 도로변으로는 저층으로 2~3층의 아파트가 서있고, 도로 가에는 이곳에서 만 피어나는 보라색 꽃들이 긴 겨울잠을 깨고 만발, 왕복 2차선의 수도 레이카빅크로 가는 풍경은 황량하고 생경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곳은 화산 폭발로 용암이 흘러내린 것이 오랜 세월 동안 풍화되여 이끼가 돋아나고 그 위로 풀이 나고, 다시 조그만 나무가 자라나는 새로운 땅으로 자연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지구촌의 새로운 땅이다. 도로는 이제 왕복 각 일 차선으로 줄어들면서 차가 붐빈다.
이제 이이스란드라는 나라를 간단히 소개한다.
Iceland는 Irland(아일랜드)의 수도승이 처음 상륙한 후 Viking의 후예들이 개척한 땅으로 나중에 Denmark의 지배로 넘어갔다. 본래 아이슬란드는 무인도였는데, 874년 노르웨이로부터 첫 정착민이 들어왔다. 그 뒤 930년 의회가 생겼다. 1262년 노르웨이령이 되었다가, 1380년 덴마크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1904년에는 자치가 인정되었고, 1918년 12월 1일 아이슬란드는 비로소 독립국이 되었다. 그 후, 1944년 6월 17일부터 지금까지 공화국으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는 “Johanna Sigurdardottir"(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이 여성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행정구역은 8개 주로 되어있다.
동쪽 해안과 북쪽 해안으로는 지질시대인 홍적세(洪積世) 때 섬 전체를 덮었던 빙하가 만든 피요르드가 발달하였다. 서쪽과 남쪽 지방의 내륙은 해발 200m의 평지이며 경작이 가능하나 국토의 70%는 400m이상으로 불모지이고 12%는 빙하지대이다. 가장 큰 빙하지대는 Vatnajökull(바트나 요쿨)로 약 8.300㎢으로 남미의 페레트모레노 빙하와 버금간다. 그리고 남부에 “Myrdalsjökull”(596㎢),중앙에 “Hofsjökull”, “Langjökull” 등 크고 작은 빙하가 있다.
섬의 북부 중앙에서 남서부 일대는 제4기 현무암, 동부와 북서부는 제3기 현무암 대이다. 활화산으로는 헤클라(1491m), 카틀라, 아스카 등 30여 개가 있으며, 1100년 동안 관측되어 왔다. 온천과 간헐천이 260개 지역에 있으며 지열 발전으로 전기는 남아돈다. 정확히 1년 전, 아이슬란드에서 발생한 화산 폭발은 전 세계 항공로에 교통대란을 일으켰다. 당시 화산 폭발은 1주일 뒤 조금씩 정상화됐지만, 화산학자들은 더 큰 위험을 경고했다. 폭발지인 “Eyajafjalla"(에이야피라) 옆에는 카틀라 화산이 있고, 두 화산은 연쇄폭발을 일으킨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평화롭기만 한 아이슬란드의 아름다운 풍광 뒤에는 지금도 거대한 시한폭탄이 돌아가고 있다. “Eyjafjalla”의 폭발 징후는 약 한 달 전부터 감지됐다. 아이슬란드 남부의 대규모 빙하 2곳 부근에서 지진이 연거푸 일어난 것이다. 3월20일 저녁 용암 분출이 시작됐으며, 4월13일에 시작된 2차 분출은 1차에 비해 규모가 크고 격렬했다.
이때 엄청난 양의 화산재가 분출됐고, 남쪽으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며 유럽의 항공 교통은 마비됐다. 약 4만 여대의 항공기와 300만 명의 승객이 고생을 하였다.
(사진: Eyjafjalla- 에이야피라 화산 폭발 장면)
화산활동과 빙하작용 때문에 호수와 폭포가 매우 많으며 폭포 이름을 따 아이슬란드 국적(國籍)의 선박 이름으로 붙였다. 지진은 자주 일어나는데, 1896년의 남부 대지진이 특히 유명하다. 북위 63°15' 부근 남쪽 앞바다에는 1963년 11월 14일부터 분출하기 시작한 쉬르트세이 화산이 있다. 섬의 남쪽과 서쪽에는 멕시코 만류가 흐르고, 북쪽과 동쪽 앞바다에는 한류(寒流)와 유빙(流氷)이 흐르기 때문에 해양성기후를 나타낸다.
레이캬비크의 1월 평균기온은 -0.4℃, 7월 평균기온은 11.2℃로서 연교차(年較差)는 적다. 레이캬비크의 연간 강수량은 805mm이며 겨울 반년 동안의 강수량은 여름 반년의 약 2배나 된다. 아이슬란드 부근에서는 1년 내내 저기압이 형성되기 때문에 날씨의 변화가 심하며, 안개가 끼거나 흐린 날이 많고 쾌청한 날씨는 매우 적다. 자작나무숲이 장관인데 사람의 이주가 시작되기 전에는 매우 많았으나 벌채로 크게 줄어들었다. 숲을 복원하기 위하여 20세기부터 식림이 시작되었으나 아직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자작나무, 버드나무, 가문비나무를 비롯하여 불과 400종의 꽃이 있을 뿐이며, 원산(原産) 포유류는 북극여우 뿐이다. 자주 나타나는 순록과 밍크는 다른 곳에서 들여온 것들이다. 조류(鳥類)는 20종이나 되어 감상과 연구의 대상이 되지만 뱀과 개구리는 없다.
(사진: 아이스란드의 아름다운 꽃 루피나의 모습)
1949년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였으며, 세계의 전략적 위치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케플라비크에 대규모 공군기지가 있다. 어업입국이라는 국시(國是)에 따라 1975년에 어업전관 수역을 200해리로 확대하였으며, 그 결과 영국과의 사이에 “대구 전쟁”이 일어났으나 결국 영국의 승인을 받게 되었다. 2001년 3월 솅겐조약(Schengen Treaty)에 가입하여 여행이 자유롭다.
아이슬란드의 GDP 대비 산업별 구성 비율은 농 어업 8.4%, 공업 15.6%, 서비스업 76%(2006년 추산)이다. 비록 비율은 적지만 아이슬란드 경제의 최대기반은 어업이다. 아이슬란드인의 수준 높고 풍요로운 생활수준은 모두 어업에 의하여 이루어졌으며 활발한 어로활동 덕분에 복지국가가 될 수 있었다. 수출의 80% 이상을 수산물이 차지하고 어류 가공설비도 정비되어 있다. 아이슬랜드의 연간 어획량은 1966년에 123만 톤을 기록한 후 다소 정체상태를 보이기도 하였지만 2005년 167만 톤으로 16위를 차지하였다. 특히 아이슬란드 트롤어선은 세계 최고의 생산력을 자랑한다. 어업 다음으로는 목축과 낙농업이 영위되며 농업 생산은 매우 미약하여 식량은 주로 수입에 의존한다.
선진화된 자본주의, 수준 높은 복지, 낮은 실업률, 균등한 소득 분배 등으로 특징되는 아이슬란드의 경제는 최근 공업, 소프트웨어산업, 바이오테크놀로지, 금융 등의 분야로 다각화되고 있으며 생태관광 및 고래 관측 여행으로 특징되는 관광업이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경제성장률도 2002년의 1%에서 2004년의 8%로 성장추세가 지속되었다. 아이슬란드의 어업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유럽연합에의 가입은 반대하고 있지만 교역량은 많다.
시내로 가면서 레이카비크의 상징물인 “Hallgrimskirkja”(할크림스키르카) 교회, 높은 곳에 설치된 대형 물탱크 모양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곳은 화산 폭발로 생기는 지열을 이용하는 발전으로 전기는 남아돈다. 2008년 뉴욕 발 금융위기로 인해 유로존 밖에 국가로는 처음으로 IMF 사태를 맞이한 나라다.
(사진: 레이카비크 시내 풍경)
최근 까지도 경제가 어렵다. 생산, 산업시설이 별로 없고 물가가 최고로 비싼 곳으로 알려졌다. 이곳은 헬싱키에 3시간을 더해 한국과는 -9시간의 시차가 난다.
17:05분 시내를 벗어난 해안가에 “Grand Hotel” 에 도착. 22호에 여장을 풀었다.
18:30분부터 호텔 내 레스또랑에서 저녁 만찬. 푸짐한 음식에 레드와인을 함께하며 아이스란드에 상륙을 자축한다.
식사 후 우리는 걸어서 시내로 나간다. 신시가지를 지나니 길가에는 이제 막 피어나는 이름 모를 노란 꽃 들이 우리를 반기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중심가로 접근하여 가나 일요일 늦은 시간이라 상가는 대부분 문을 닫았다. 피자, 까페는 문이 열려있고 시내를 배회하는 사람들은 다 관광객이었다. Information Center를 들러 보고 벽의 다양한 그림을 그려 넣은 것을 사진에 담아보고 걸어서 호텔로 돌아와 피곤한 하루를 마감한다.
(사진: 홍보센터 벽 장식 모습)
이 나라는 경제적 침체로 31만 명의 인구가 고통을 겪고 있다. 인구가 적어 생산시설, 산업시설이 취약하여 1997년 후반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리만 브러더스 파산으로 인한 여파로 제일 먼저 IMF 사태를 맞이한 EU 국가들 중의 하나이다. Euro 화는 아니더라도 이 나라가 무분별하게 금융산업에 투자하여 년 8% 이상의 이자를 지급하다 파산을 맞이한 것이다. 이 나라는 공업, 산업시설을 운영할 인력도, 내수가 적어 생산 시설도 설치할 이유가 없다. 고율의 이자 지급으로 이곳으로 돈이 몰리고 내국인에게 고율의 대출을 하였으니, 그 여파로 부동산 급등 등, 미국의 여파로 유럽의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국가 부도의 위기에 봉착하였다. 부자들이 유럽으로 탈출하면서 서민만 남아 은행부채로 고통을 당하고 물가는 뛰고 부동산은 침체하여 은행 부채만 증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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