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병술 년 새해가 밝아왔다.
小寒 밑이라 매서운 추위가 밀어닥치고 바람이 세차다.
오후 늦게 우리는 고대문명의 발자취를 탐사하러 인천공항으로 향하였다.
공항에 들어가니 저녁인데도 만원이다.
방학기간을 이용하여 어린이 단체 출국도 많았다.
KE 951편으로 Dubai 경유 Cairo 행 편에 올라 21:30분 이륙.
인천서 Dubai 까지는 약 6740 km를 가야 하는 먼 나 먼 여정.
10시간 30분이나 지루한 비행을 하여 현지시간
A.M 3시경에 사막의 현대도시로 태어 났다는 Dubai 공항에 착륙하였다.
Cairo 는 여기서 다시 2시간 정도 쉬었다가 출발하여야 한다.
공항구내 Duty Free 지역에서 쉬면서 이스람의 본고장을 엿볼 수 있었다.
얼굴이 약간 검고, 곱슬머리, 큰 눈, 높은 코, 코밑 수염을 기르고,
여자는 히잡, 차도르나, 브루카를 쓴 모습이 드문드문 보였다.
2 시간을 보낸 후 다시 탑승하여 Persia 만과 Arabia 반도를 가로 지르는
약 2430km 를 3시간 30분을 더 비행하여 인천을 출발한지 약 16시간 만에
우리는 세 번 째로 머나먼 Africa 땅 Nile강 삼각주 상공에 들어왔다.
홍해 넘어서 일출하는 광경이 비행기 안에서 신비롭게 느끼는 순간
국적기는 고도를 낮추어 황량한 공항 지역을 날라
황토색 땅만이 무한대로 펼처진 Nile 강 동쪽을 지났다.
회색의 도시 Cairo
둘째 날: Cairo 공항에 06:25분 착륙. 한국과는 시차가 7시간 늦다.밤새도록 비행한 피로가 엄습한다. 출입국 수속을 마치고 공항을 나오니,
공항 밖 넓은 땅에서는 공사가 한창이고 버스에 오르니 현지인 안내자로 “Asdin”이 소개된다.
그는 한국말이 유창하여 우리를 놀라게 하였다. 그는 Cairo 대학 상경학부를 졸업하고
한국말을 배우러 연세대학교 한국어 학당에 유학을 온 이집트 청년이다.
현지인으로는 유일하게 우리말을 자유롭게 구사한다.
97∼99년 I.M.F 기간을 거치면서 어려움을 이기고
99년 부터 한국인을 위해 안내자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이제 Egypt 에 대하여 알아보자.
이나라는 면적이 약 99만8천㎢, 인구는 7천 500백만의 대국이다.
동으로는 홍해, 서로는 리비아, 북은 지중해, 남쪽은 수단과 접해있다.
전 국토의 96%가 사막이고 농경지는 3%에 불과하다.
인구의 대부분은 나일강 연안과 수도 지역에 밀집하여 살아간다.
국민의 97%가 이스람 교도이다.
주요산업으로는 석유생산, 농업, 관광 등 일차산업이 주를 이룬다.
한국과는 95년에 수교하였고 북한과의 인연이 깊다.
아침부터 부산하고 도로가 막힌다.
도시의 청결상태가 불결하여 첫 인상이 나쁘다.
학생 20만의 Cairo 대학에 한국어과가 최근에 생겨 20-30명이 배운다 한다.
아랍국가가 22개인데 모두 아랍어만 사용한다.
아랍지역에 특징은 기독교, 이스람교, 유대교 등
3대 종교가 모두 사막에서 태어난 창시자에 의해서 이루어 졌다는 사실이다.
고층 건물이 밀집한 Cairo 신 시가지를 지나
구 시가지로 향하니 더욱 도시 모습은 황량하다.
왼쪽으로 묘지를 바라보면서 나아간다.
이곳 묘지는 도시 면적의 5분의1 이나 차지할 정도로 전부가 매장지이다.
지하 1칸에 시신을 매장하고 그 위로는 제사 지내는 곳이 2 칸 이상 이다.
고대에는 특이한 이집트어가 있었으나 647년 부터 Arab어 만을 사용하며,
나일강 연안 좁은 땅에서 삼 모작으로 농업이 발달해 왔다.
나일강은 6675 km로 중부 아프리카에서 부터 9개국 을 거처 흐르는 장강(長江)이다.
화폐로는 Pound 화를 사용한다. 1 파운드는 약 우리 돈 200백원으로
석유 1 L, 1 US$ =5.7 Pound 이다.
우리가 방문할 곳은 주로 고대 왕국의 문화 유적이다.
참고로 시대 구분을 하여본다.
1) Old Kingdom: 제1 왕조∼11 왕조 B.C 3100∼1986 년. 태양신 숭배시대
2) Middle Kingdom: 제12 왕조∼17 왕조 B.C 1985∼1539 년. 미이라화 되어 영생시대
3) New Kingdom: 제 18왕조∼31 왕조 B.C1538∼332 년. 왕권시대( Ramses 왕조)
4) Dark Age : Greece 지배 ( BC 305-30), Roma 지배 ( BC 30-642 AD) 등.
고대 왕도 Memphis 의 거석 문화와 지하 묘지의 영화
우리는 우선 고대 도시 Memphis로 간다.중간에 가면서 과일 가게에서 Orange, Banana 등 간식거리를 장만한다.
Memphis 는 고대 시대인 BC 3200년 전에 수도 였다.
이 당시에 발굴된 돌로 된 유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고대의 석상, 상형 문자 석, 왕의 석관 (큰 돌을 위에서 파내 린 것), 제단 등이 남아있다.
가운데 있는 Alabaster Sphinx 는 BC 1200 년경에 만들어진 것이다.
앞에 유물관에 있는 Ramses Ⅱ의 누워있는 “Limestone” 은 실내에 전시 되었고
67세에 죽었다는 그는 이렇게 돌의 석상으로 남아 현재를 지배한다.
다음의 방문 지는 “Tomb of Ka-Gmni” 의 지하 묘지.
BC 2340 년 전에 만들어진 귀족의 무덤으로
지하 방에는 그가 살았던 당시의 생활상이 모두 벽에 조각되어
문자가 없던 시대라 조각으로 모든 것을 표현 하였다.
나일강의 물고기, 제사 지내러 가면서 가져가는 제물의 모습,
강가에서 낚시 하는 모습, 농사 짓는 도구 등 일상 생활의 모든 면이 상세히 표현 되었다.
관이 놓여있던 방에는 관 위 정면 벽에 상형 문자로 당시의 모든 것을 표현하여 놓았다.
과일, 야채, 양 등 사람이 먹고 쓰던 모든 것이 벽면에 새겨지고 채색이 되어 있다.
이곳은 오래동안 모래에 덮혀 있었고, 건조한 기후라 현재까지 보존이 되었으나
발굴당시 훼손으로 일부만 복원되어 있다. 무덤 주인의 모습이 벽면에 크게 새겨져 있다.
“Mere Ruka” 의 지하 묘지는 왕의 딸과 사위의 무덤으로
당시의 왕족의 화려한 생활상을 벽면에 조각하여 놓았다.
파티에서 춤추는 장면, 포도주를 만드는 과정을 조각으로 표현,
밀 재배 장면, 탈곡 장면, 양 등 가축의 도살 장면 등
거의 일상 생활의 모든 면이 조각으로 재현 되어있다.
이곳에도 무덤 주인의 석상이 가운데 있고 제단이 지하 방에 마련되어 있었다
. 이곳도 입구가 모래에 덮혀 있어 비교적 훼손을 면할 수 있었다.
이 지구에 있는 4700년 전에 만들어진 Pyramid 는 지상 최초의 것으로
60 m 높이로 돌로 쌓여 있으나 오랜 풍화로 인해 부식되어 있다.
그 앞에 석조로 축조한 건물에서 제사가 진행된 것으로 보아 이는 후대에 지은 것이다.
문은 북쪽에 있고 묘실은 Pyramid에 있다. 이집트에는 총 108개의 유사한 피라미드가 있다.
정오 경에 Sahara Restorant 에서 식사를 한 후 이제는 구 Cairo시를 방문 하기로 하였다.
이곳에서도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교회인 “Ben Ezra Synagogue”를 찾아 구시가 골목으로 들어갔다.
교회 건물이 당시대로 원형 보존 되어 있으나 사진 촬영이 금지 되어있다.
다음에 찾아간 곳은 Cairo 에 세워진 최초의 기독교 교회로 조그만 돌문으로 들어가
지하에 세워진 교회를 찾았다. 천정은 나무로 되어 있고 교회내부는
옛 로마시대의 기둥으로 석주가 세워져 있고 너무 오래되어 마모가 심했다.
그러나 벽에는 예수의 옛날 그림이 걸려있고 지하방도 있는 교회로서 보존가치는 있었다.
이렇게 다른 교의 교회도 보존하다니 놀라운 일이다.
우리는 오후 일과를 좀 일찍 끝내고 피곤을 풀기위해 Sheraton Hotel 에서 들어와
오후 5시 까지 휴식. 오후 7시에 이번에는 Nile 강 유람선에 승선하여
야경을 감상하면서 선상에서 부패식으로 저녁식사. 선상에서 벌어지는 음악과 쇼를
감상 하면서 식사 후에는 2층, 3층 밖에서 강을 따라 가면서
Cairo의 신, 구 도시의 야간 모습을 비교 할 수가 있었다
끝없는 사막을 달려 가면서
셋째 날:오늘은 흑 사막을 경유 백 사막으로 가는 날이다.
오아시스 마을인 “Bahariya”로 가기 위해 370 km 를 약 4시간을 걸려 가야 한다.
Cairo 시 외곽으로 나가면서 도로좌우에는 새로운 주택이 들어서고 있으나 우중충한 모습이다.
이곳을 지나니 이제부터는 끝없이 사막이 전개된다.
좌측으로는 단선으로 광 괘도의 철도가 깔려있고
그 위로 옛날 기관차가 철광석을 실어 나르는 모습이 신기하다.
Tour Police 1명을 대동하고 오전 내내 달려가다 중간 휴게소에 멈춘다.
휴게소라야 썰렁한 단층 건물에 안아 힁하니 비어 있다.
차와 과자 등을 팔고 있고, 한쪽에선 물 담배를 피고있는 사람이 4명이 앉아 있다.
쉴 곳도 마땅치 않고 주위가 불결하다.
밖으로 나오니 한국의 대학생 3명이 광주에서 왔으며 그들도 백 사막으로 간다고 한다.
다시 출발하여 가는 도중 도로 견에 차를 세우고 내려가서
기차 선로가 신기한 듯 사진을 찍는다.
사람하나, 집하나, 풀한 포기, 나무 한그루 없는 그야말로 황무지의 연속이다.
이곳 유목민은 이스람 교도로서 그들은 땅의 소유가 필요치 않고,
마음이 순수하고, 성격도 단순하며, 언어도 어휘가 적고 간단할 뿐이다.
사막 가운데 Green Valley 는 나무를 심어 가꾸고 나일강 물을 끌어 식수를 해결한다.
가는 길에는 안개가 끼어 시야가 아주 흐리다. 잠시 달려가면서 날씨기 밝아지고 햇빛이 나면서 환해진다.
사막에는 별, 하늘, 모래 뿐이며 유목민들에게는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나?”
하는 생각에 사로 잡혀 명상 시간이 유일한 안정을 주는 것이다.
이들에게 민주주의란 복잡하고 맞지 않는다 한다.
생활이 단순하고, 제도가 필요 없으니 왕이 존재하는 왕정제도가 적합하다 한다.
12시가 되어 Tour Police 에 신고하고 12:40분에
“Bahariya Oasis- Gija” 마을에 있는 Western Desert Hotel에 도착.
새로 지은 2층 건물이나 우중충하다.
우리는 여기서 Cairo 시내를 통과할 때 중간에 인수해간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해결 하였다.
별이 쏟아지는 백 사막의 낭만
이 “Bahariya” 마을이 백 사막 Tour의 출발점이다.
여기서 170 km를 Jeep(일제 Toyota)차 한대에 6명씩 타고 13:50분 출발.
끝없는 사막 한가운데로 난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90∼100km 의 속도로 달려 간다.
가다가 오른쪽 중간에 Pyramid 모양처럼 생긴 산아래 차를 세우고 모두 산에 오른다.
먼지가 일어나는 비탈 길을 올라가니 정상에는 돌 무더기가 몇 개 있고
주위에는 황무지 벌판에 군데 군데 Pyramid 모양의 작은 산 봉우리가 수없이 많이 보인다.
고대의 Pyramid 모양과 똑같이 닮은 꼴이니 아마 이것을 모방하여
Pyramid 를 축조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16:40분 끝없는 사막복판을 달려 백 사막 입구에 도착.
이제부터는 비포장 길을 따라 정신없이 차가 덜커덕 거리며 백 사막으로 달려간다.
백 사막은 Calcite (방해석) 성분을 함유한 자연석이 연 강우량 100 mm 내외의 비와, 풍화작용,
침식, 바람, 모래의 상호 작용에 의해 부서지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석회석이 부서져 내리면서 갖가지 기묘한 형상이 생겨나서 하얀 예술품을 방불케 한다.
끝없는 자연 석회석의 전시장 같다. 각종 바위들이 부서지면서 사막화되어 가는 과정에
Calcite 성분이 하얗게 나타나면서 흰색을 띠어 마치 멀리 서 보면 눈이 수북이 쌓인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평평한 사막 한운데 차량 4대를 “ㄷ” 자 형태로 세우고
차 위에 실어온 양탄자로 둘러 치고 바닥에 매트를 깔아 않을 장소를 마련했다.
그리고 9개의 Tent를 치고 야영준비를 한다.
그 안에 2인 1조로, 매트, 침낭, 모포를 각 2개씩을 지급 받았다.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주변의 석회석 산에 올라 멀리 조망하니 온 세상이 하얀 지표면이다.
침식과 풍화를 거치면서 버섯모양, 동물모양, 고인돌 모양 등 다양한 형태로 솟아있어
Turkey의 “카파도키아” 지역을 연상케 한다.
하얗게 모래화 되어 가는 바위에 올라 일몰을 감상,
서쪽으로 지는 태양의 정취는 인생의 과정에 비유되듯이 그저 허망한 느낌이다.
어둠이 깔리면서 모닥불 앞에 모여서 식사를 준비하고,
양 고기를 삶고, 닭 고기를 구어 저녁을 마련한다.
밥에 감자 카레를 얹어 놓은 저녁식사는 별식으로 맛이 있다.
서울에서 가지고온 소주가 나오고, 반쪽의 달이 하늘 높이 드러나고
별이 총총 히 돋아 나면서 사막의 밤은 깊어 간다.
10시가 넘도록 모닥불 피어 놓고 둘러 앉아서 악기를 두드리며 노래를 하면서 옛날로 돌아가 본다.
하늘에는 아직도 반달이 환하게 비추고 별이 무수히 반짝거리는데 우리는 텐트로 들어갔다.
사막의 밤은 이렇게 깊어 갔고 우리는 마치 옛날을 꿈꾸는 소년, 소녀인양 마냥 센티멘탈에 젖어 든다.
12시가 넘어 텐트에서 나와보니 바람이 불면서 달은 지고 밝아진 하늘에는 온통 별천지!
그렇게도 많은 별이 머리 위에 있다니? 북극성, 북두칠성, 카시오페아 좌 ….
어린 시절에 하늘을 보고 별을 헤던 시절이 반세기가 지나,
이제는 나도 지는 별이 되어 이곳까지 머나먼 나라 사막에서 지나간 날을 되돌아보는 회한에 젖어 있다니!
누가 그랬던가,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고”(空手來 空手去), 어느덧 고희에 접어 들었으니?
마음을 정리하고 다시 텐트 속으로 들어간다.
한참 후에 다시 나오니 유성이 쉴새 없이 떨어져 내린다.
인생도 별똥 별처럼 떨어지면 어디로 가나? 시인 박 목월의 “나그네” 가 떠오른다.
“강나루
밑 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또 밤 하늘의 무수히 떨어져 내리는 유성이, 시인 “윤 동주”의 표현처럼
오늘 밤은 유난히도 “바람에 스치운다.”
새벽 6시에 텐트에서 나와 일출을 보러 언덕에 오른다.
다시 끝없이 광활한 모래 평원을 건너 기기 묘묘한 바위들이 늘어선 곳으로 가
조그만 돌산에 올라 장엄한 일출을 맞이한다.
다시 막사로 돌아와 아침은 호밀 빵, 과일, 서울서 가져온 컵 라면 등을 들며 대화를 이어간다.
넷째 날: 08:50분. 야영지를 대충 정리하고 다시 머나먼 길을 돌아가야 한다.
가면서 우리는 차를 세우고 몇 군데를 둘러 본다.
맨 먼저 사막 한가운데서도 크게 자라난 한그루의 나무인 큰 아카시아 나무를 만난다.
아주 큰 것이 오래되어 쓰러졌으나 뿌리가 수맥까지 닿아 꽃이 피고 잎이 푸르다.
두 번째로 마치 미국의 자이언 캐년 같은 바위 지대에 오니 흰 바위산이 엄청나게 크다.
그토록 색갈이 깨끗할 수 가 있나? Sphinx 를 만들어도 좋은 크기의 바위가 바닥에 서있기도 하고,
아마 고대 Sphinx 도 그렇게 만들어 졌을 것 같다. 건너편 흰 바위 지역으로 건너간다.
세 번째로 Cristal 바위지역에 온다. 이곳에는 자연 보존 지역이란 안내판이 서있다.
수정석( Calcit Cristal and Stone)이 형성되어 가는 곳이다.
네 번째로 버섯바위 지역에 왔다.
갖가지 형상의 석회석이 마치 꼭대기가 버섯모양과 같이 침식되어
하얗게 수 없이 늘어서 있는 곳으로 터키의 카파도키아가 연상 된다.
다섯 번째로 온천 마을에 이른다. 기계로 지하에서 온천 수를 뽑아 올린다.
퍼올려서 정수 한 후 농업용수로 쓴다 한다. 뜨거운 물이 유황냄새를 풍긴다. 마을 아이들이 몰려 온다.
사막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다시 Bahariya 마을 Western Desert Hotel 에 돌아오니 12:50분.
여기서 점심식사 후 12:00시경 출발.
다시 Cairo 시내에 오후 6시경에 들어오니 교통지옥. 신호를 지키는 차도 사람도 없이 언제나 뒤엉킨다.
Cuisine Restaurant 에서 부패식 저녁식사 후 Sheraton Hotel 로 돌아와
1873호에 투숙하니 나일강가 로타리에 근접해 있어 소음이 심하다.
다섯째 날: 오늘은 02:40분에 기상. 03:30분에 로비에 집합.
아침식사를 빵, 음료수 등으로 지급 받으며 4시 이전에 출발하여 Cairo 공항으로 나가야 한다.
기사가 바뀐 탓인지 버스가 제때 오지 않다가 04:00시경에야 출발 하여 공항에 이르니
“Luksor” 행 비행기는 만원이다.
간신히 버스를 타고 활주로에 나가 비행기 MS 131 편에 오르니 국내선이라 좁고 불편하다.
05:10분에 이륙. 45분 만에 06:00 시경에 “Luksor” 공항에 내리니 한국인이 많다.
비행기 안에서 아침을 해결하여 간편하나 피로가 엄습한다.
Luksor는 B.C3500년 전 고 왕국 시대부터 2800년 간 수도인 고대도시다.
현재는 인구 50만. 비가 안 오고 건조하여 산이 무너져 내린다.
왕마다 무덤 하나에 사당 하나인 곳, 18왕조∼20왕조 사이에 유물이 주로 발굴되었다.
이곳은 도굴이 성행하여 주민들이 아예 무덤 위에 집을 짓고 살면서
도굴을 일삼아 정부에서는 전기만 공급하고 수도 물은 공급하지 않는다 한다.
맨 먼저 찾은 곳이 Memnon의 거석상의 방문이다.
높이 20m, 900 Ton 이 넘는 “아멘호템 3세” 의 앉은 석상이다.
다리가 전체의 반을 차지한다. 좌우 측면에는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다.
우측 것은 붕괴되어 다시 축조한 듯이 상체가 4단으로 되어 있다.
좌측의 거석상은 왼팔이 떨어져 나갔다. 뒤에 넓은 공터엔 신전이 있었으나 다 사라져 버렸다 한다
여기서 차를 타고 왼쪽으로 가서 “Ramses Ⅲ” 의 신전에 이르니
평야지대에 거대한 신전이 산 밑으로 향해 자리잡고 있다.
입구 양쪽에 사암으로 된 왼쪽 벽에는 “Ramses Ⅲ”에게 “Amon” 신이 칼을 건네는 장면이 조각되어 있다.
우측에는 태양신과 람세스 3세가 나란히 조각되어 있다.
문안으로는 좌측 8개의 석주에 람세스 3세의 일대기가 조각되었고 그 뒤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우측에 있는 7개의 석상은 그와 그의 가족으로 2개 이외는 훼손이 너무 심하다.
뒤 벽에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장면, 포로들의 모습이 상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왼쪽으로 가면서 람세스 3세의 장제전은 파괴가 심하였다
돌산 지하에 마련된 Pharaoh들의 영원한 안식처.
이곳을 돌아보고 산밑에 있는 도굴마을을 지나 “왕가의 계곡”으로 향하였다.
이곳에는 62개의 무덤이 석산 아래 지하에 조성 되었으나 그 중 61개가 도굴 되었다 한다.
이곳에는 18왕조 때 부터 인 “Thutmose Ⅰ”, ( BC 1524-1518), ‘Seti Ⅱ” “Ramses Ⅱ,Ⅲ,Ⅳ,Ⅵ,Ⅸ”
등의 무덤이 있으며 어느 묘이건 묘실 벽에는 저승의 모습과 내세의 부활을 다채롭게 벽화로 그려 놓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부분의 부장품이 도굴되었으나
19-20 세기에 들어와서 겨우 고대 수도가 발굴되고 상형문자가 해독 되었다 한다.
특히 영국인 “Howard Carter” 는
소년 Pharaoh 였던 “Tutangkhamen” 의 무덤을 발굴하는 개가를 올렸다.
어린 소년 왕(18세에 사망)의 무덤의 관 뚜껑에
“파라오의 잠을 깨우는 자는 죽음의 저주가 내리리라”는 글이 새겨 져있다.
이상 하게도 발굴에 관계된 사람들의 의문의 죽음이 계속 되었다.
지금은 이곳의 무덤을 보존상 번갈아 개방한다고 한다.
우리가 직접 들어간 곳은 “Ramses Ⅲ”의 무덤으로 통로 길이가 140 m 되며
부장품이 가장 많았다 한다. 벽에는 벽화들이 다채롭게 그려져 있으며
내세에서 죽은 자가 부활할 수 있다는 내용의 벽화로서 눈길을 끈다.
“Ramses Ⅸ” 의 무덤은 그가 일찍 죽어서 미 완성인 채로 남아있고
벽면에 벽화가 없는 곳도 여러 곳이 있다.
왕이 죽으면 그 다음 왕의 무덤이 축조되기 때문이 미완성으로 남는다 한다.
“Ramsesm Ⅳ”의 무덤에는 화강암의 석관이 남아있고
벽 천장에는 태양의 신이 누르여신과 한 쌍이 되어 낮과 밤을 여행하는 그림과
신들의 행차, 기도하는 모습 등이 그려져 있다.
후에 프랑스인 학자가 이 무덤의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개가를 올리면서
그 당시의 생활상이 공개 되었다. 오전 탐방을 마차고 3시반 까지 휴식.
가장 예술적인 Karnak Temple
오후에는 “Karnak” 신전을 방문, 일명 “Amon” 신전이라고도 한다.
세계에서 제일 큰 회랑을 자랑하며 “Seti Ⅰ”(1313-1292 BC)와 그의 아들
“Ramses Ⅱ”(1292-1225 BC)가 18만 평의 대지위에 연이어 건축 하였다.
이 신전은 안으로 갈수록 오래된 기둥이 도열 되어 있다. 진흙으로 만든 성벽 안에 세워 졌으며,
어떻게 높게 축조 하였는가를 알 수 있게 한쪽 벽에 진흙을 쌓아 올리고 공사를 한 흔적이 남아있다.
안으로 들어가면서 134개의 엄청난 높이의 기둥이 도열 되어 있고 천정이 없어진 부분이 있다.
이는 모두 “RamsesⅡ”때 만들어 졌다. 중간의 기둥 한 가운데에는
기둥 회랑을 지나면 2개의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다. 이것은 원래 한 개의 돌로 만들어 세운다.
아스완 채석장에서 배로 Luksor로 옮겨와 300 ton 정도의 무개의 돌의 사면에 상형문자를 새긴다.
이 큰 돌기둥을 세우려면 고대인들은 두개의 모래언덕을 쌓아올리고
그 위로 끌어올려 양쪽언덕 사이로 넣어 세웠다 한다.
오벨리스크는 태양신과 인간세계를 연결하는 의미를 가지며, 새겨진 상형문자는 왕의 위대성을 찬양했다고 한다.
신전은 대개 3 가지로 분류된다. 1) 신을 위한 신전, 2) 왕을 위한 신전, 3) 장제(葬祭) 신전 등이다.
이 “Karnak” 신전은 규모나 조각면에서 세계에서 최고의 신전이다.
밖으로 나오니 Nile 강과 연결된 호수가 잔잔하다.
이곳에서 신전에 제사할 때 몸을 청결히 하는 곳이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야간에 “Luksor” 신전을 보기위해 나섰다.
보통 이 “Luksor” 신전 일대를 천정이 없는 박물관이라 일컬어진다.
“Ramses Ⅱ”가 축조 하였다고 하며, 석상이 양쪽에 서있고,
북쪽으로는 “Sphinx” 의 거리가 조성 되어 양쪽에 도열 되어 있다.
당시에는 600여 개에 이르렀다고 하나 현재는 100여 개가 남아있고
이 도로를 따라가면 “Karnak” 신전과 연결되고 “Amon La” 남쪽 규방으로 불리었다.
기원전 1900 년 경 제12 왕조의 Pharaoh 였던 “Sesostris Ⅰ”가 세웠다 한다.
두개의 축은 태양의 궤도를 반영하는 동서 축으로 만물의 신성함을 상징한다.
나일강과 평형을 이루는 남북 축은 왕권의 영역과 기능을 상징한다고 한다.
신전 안으로 들어가면 석상이 좌우에 서있는 광장이 나오고 그 안으로 가면
“Alexsander 대왕”이 정복자로서 이곳에 왔었다는 사실이 기록된 상형문자가 새겨진 방이 있다.
그 뒤로는 지성소가 있으나 심하게 훼손 되었다.
신전 순례를 늦게 까지 마치고 야간 Bazar (시장)에 들러 생활상을 점검해 보고
관광 마차를 타고 시장거리를 통과하여 호텔로 돌아왔다.
여섯째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정원이 너무나 아름답게 가꾸어 졌고 수영장도 2 개나 있다.
오늘은 07:50분 Aswan 으로 출발.
여기서도 Tour Police 호송 하에 270 km 거리를 버스로 가면서 도중에
“Edufu” 신전, “Kom Ombo” 신전, “Philae” 신전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이들은 Egypt 가 Greece, Roma, Osman Turkey 등에 정복 당했던 시대의 신전이다.
Alexsander 대왕이 BC 332년에 Egypt 를 정복하고
“Alexsandria” 라는 도시를 만들고, 도서관, 박물관, 등대를 만들었으나
1332년 지진으로 등대는 붕괴되었다.
그 후 “파트로 뮤즈1-4세”왕까지 이집트가 번영을 하였다.
“파트로뮤즈12세”는 “Cleopatra” 의 부친으로
그 후 “Julius Caesar” 와 “Cleopatra” 가 부부로 되면서
수완을 발휘하여 이집트는 더욱 번영을 누렸으며
그들 사이에서 난 “파트로 뮤즈 15세”가 왕이 되었다.
시이져가 죽은 후 크레오파트라는 “Antonius” 와 결혼하였고,
안토니우스가 파트로뮤즈 15세를 죽였다.
후에 이집트는 더욱 번영하였으며 그녀가 죽자
이집트는 Roma 제국에 합병되어 670년 간을 통치 받았다.
그 후 Osman Turkey 가 350년간을 지배하면서 이집트는 문맹률이 높아 졌다.
언어나 종교는 그대로 유지 되었고 이 3개의 신전은 그 시대에 지어진 것이다.
Edfu Temple
2300 년 전에 축조 되었으나 19 세기에 복원 되었다.Greece 왕들이 건축. 이집트 신전과 같이 “Horus”(선의 신) 신을 위해 만든 것으로
길이 137 m, 교각높이 36 m, 정면은 79 m, 신전의 출입구에 독수리 모양의 형상은 “Horus” 를 상징한다.
태양신의 문에는 코브라 2 마리가 조각되었고 15 명의 Greece 왕이 200년 동안 공사를 하였다 한다.
왕이 가운데 있고 신이 좌우에 조각되어 있다.
지성소가 가운데 있고 그리스 신과 신화가 벽화로 그려져 있다.
지성소 안에는 석관이 있고 “Horus” 신의 모습과 상형문자가 조각되어 있다.
Kom Ombo Temple
신전은 두개가 나란히 붙어있다.
오른쪽은 풍요의 신 “세백신”에게 바치며 세상의 창조주로 생각하였고,
왼쪽은 “Horus” 신전이고 전투적인 태양의 신이다.
조각된 것에는 그리스 왕과 왕비가 그리스 옷을 입고 있으며,
제물을 바칠 때의 날짜와 계획된 제물이 정해져 있는 것이 상형문자로 조각되어 벽면에 남아있다.
Philae Temple
Aswan Dam 공사로 인해 물속에 잠기게 된 것을
UNESCO의 지원을 받아 옮기어 안전한곳에 건축하여 1982년 공개하였다.
배를 타고 섬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한다.
신전이 원래 있던 섬은 강 건너 먼 곳에 터전이 보인다.
이 신전에는 1978년 “Napoleon” 이 오면서 학자들을 데리고 왔다는 기록도 조각되어 있다.
교회 제단도 마련되어있다.
신전을 몇 개를 돌아보니 나름대로의 건축법이 있고
조각기법도 거의 동일하고 상형문자도 통일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Isis Island Hotel”로 가기 위해 Nile 강의 범선인 Paluka 를 타고
바람의 방향을 잡아 섬에 있는 호텔로 향한다.
그 사이 조그만 보오트를 타고 2명의 소년이 접근하여 노래를 부르면서 팁을 요구한다.
우리가 가는 호텔은 Nile 강 하류의 섬으로 넓은 땅을 차지하고 경치가 대단히 아름답다.
일곱째 날: 오늘 부터 이곳은 “Big Bairum”이라는 종교행사가 4일간 계속된다.
모두 기도하고 멕카로 순례를 갔던 순례자가 돌아오고, 양을 잡아 축제를 열고 나누어 준다.
Abu Simbel 신전의 비밀
아침 09:10분 Aswan 에서 280 km 떨어진 “Abu Simbel” 로 가는
MS 247기를 타기위해 Isis Island 를 나섰다.
45분을 비행 후 10시 경에 사막 한복판에 있는 공항에 착륙하여
Shuttle Bus 를 타고 신전으로 향하였다. 이 신전은 커다란 바위산을 파서 신전을 조성하였다.
“Ramses Ⅱ”가 나일강 아스완 남쪽 282 km 지점 왼쪽 뚝에 암벽을 파내어
기원전 1279-1212년 사이 신전을 축조 하였다.
그러나 Aswan High Dam 축조 공사로 물에 잠기게 되어
원래 있던 곳에서 200 m 떨어진 곳에 바위산을 새로 만들고 이전 복원 공사를 하였다.
3200년 전에 세워졌던 신전이 1969년 2월 UNESCO 도움으로 4200만 $ 를 투입해
4년간 공사로 이전 작업의 기적을 이룩하였다.
1만 5000 Ton 의 돌을 1036개로 잘라 이전 복원하였다.
이 모든 과정이 준비, 이전, 복원의 3단계로 나누어 안내 센터에 사진과 더불어 전시 되었다.
고대 “누비아”왕국은 BC 6000년의 역사를 간직.
이 지역은 중앙 아프리카의 교역 중심지로 노예 7000 명을 동원하여
“Ramses Ⅱ”가 재위 34년 간에 건립한
“Abu Simbel” 신전은 왕비 “Nefertari” 와 “Horus” 여신에게 바친 것이다.
높이 30 m, 너비 37 m 의 크기로 바위산을 깍아 축조하였다.
20 m 앞에 좌상 4개는 “Ramses” 왕 자신의 상이다.
대 신전의 정문은 탑문처럼 보이고 2 번째 석상은 지진으로 파손되었다.
신전 내부는 두 줄로 8개의 석상이 서있는데 이것도 왕 자신을 묘사한 것이다.
내부에는 “Ramses Ⅱ” 가 자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장면도 조각 되었고,
이것은 산자인 인간을 위해 이 신전이 만들어 졌다는 의미이다.
기타 활 쏘는 장면 등 전쟁 승리를 기념하는 벽화도 그려져 있다.
정문 가운데 위에는 태양신이 조각되어 있다.
태양의 빛이 신비하게 내부까지 비추어 지는 기간은 6월 20일 과 10월 20일 2차례이다.
옆에 건축된 “Nefertari” 의 신전은 그 규모가 적으며 6개의 석상이 전면에 서있다.
이는 “Ramses” 의 석상 4개와 왕비, 어머니의 석상이고 딸과 아들의 석상은 그 아래 조그맣게 조각되었다.
여왕이 제물을 차려 놓고 2개의 연꽃을 들고 앉아있는 3명에 신에게 경의를 표하는 장면도 새겨져 있다.
이 신전 유적은 그 후 모래에 매몰되어 오다가 1817년 3월 영국인 “Giovanni Belzoni” 라는
사람이 모래 속에서 입구를 찾아 마침내 햇빛을 보게 되었다.
신전 탐방을 마치고 시원한 강바람을 등에 지고 입구로 나와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한 후
12:30분에 출발하여 “Aswan High Dam” 으로 향하였다.
이 댐은 Nasser 가 대통령 재직시 수천년간 빈곤에 시달려온 Egypt를 부흥 시키기 위해
1960년 건설에 착수한 대 역사이다.
그 규모는 1) 길이 500 km, 2) Max Height 111 m, 3) Max Length 3830 m, 4) Base 깊이 980 m,
5) Tunnel 6 개, 지류 24개, 6) Turbine 12 개, 7) 발전량 17.5000 kw, 8) 넓이 6000㎢, 9)
총 저수량 169.000 million ㎥(1천 6백90억㎥)의 대 역사다.
“Gamal Abdel Nasser” 는 1952년에 청년 장교인 중령으로 실로
2800여년 만에 이집트에 왕조를 붕괴시키고 통일국가를 건설하였다.
그리고 1869년에 완공하여 영국에 관리 하에 있던 “Sues운하”를 58년 영국과 “Sues 전쟁”을 일으켜
운하의 국유화 조치를 단행. 그로 인해 년간 20억 $의 국가 재원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1967년 “Israel”과의 6일 전쟁에 패하여 그 해 심장마비로 사망.
부통령인 “Anwar Sadat” 가 대통령을 승계하여 73년 제3차 중동전을 일으켜
“Sinai” 반도 등 실지를 회복하였으나 그도 81년 암살 되었다.
다음은 미완성의 Obelisk 건설현장을 방문하러 간다.
화강암의 석 산에서 돌을 채취하여 Nile 강을 통하여 돌을 운반하여 간 곳이다.
현재는 당시에 가장 큰 규모의 돌을 채취하기 위해 작업을 하던 약 1000 Ton 규모의
화강석이 누워있는 형태로 남아있다.
보통 300 Ton 정도의 돌로 만들었으나 이것은 그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
좌우에 돌에다 금을 내고 밑의 작업만 미완성으로 남아있는 것으로
과연 고대인들은 이 거석을 어떻게 채취하고 운반하여 갔을까?
현대적인 장비도 불가능한 위업을 그들은 인위적으로 하였으니
그 노력과 고생이 얼마나 컷을 까? 상상을 불허한다.
이곳을 보고 다시 13:10분 비행기편으로 Aswan 으로 돌아와 “Issi Island Hotel” 로 귀환하여
2시간을 휴식 한 후 식사 후 야간 “Barzar”를 구경하기위해 나섰다.
서민의 시장으로 주로 향료, 식품, 과일, 의류, 신발 등 일상생활 용품이 넘쳐 난다.
이곳에서 저녁 9시 까지 즐기다가 다시 Aswan 공항으로 이동히여 MS 202 편으로 22:45분 출발.
이 튼 날 새벽 1시경에 Cairo 공항에 착륙. 먼 저의 Sheraton Hotel 에 들어오니 02:00시경.
너무나 피곤한 여정을 마감 855호에서 휴식을 하였다.
여덟째 날: 오늘로 탐사의 마지막 날이다. 09:00 시경 출발하여 “Gija Pyramid” 로 향하니
도시의 빌딩 숲에 가려 보인다.
기자의 언덕으로 오르는 오른쪽의 건물인 “Mina House Hotel”(1869년 건축)은
우리나라가 1945년 해방이 되었을 때 전후 처리를 위해 세칭 “Cairo Conference”가 열렸던 곳이다.
영원한 불가사의 Pyramid 와 Sphinx 의 위용
Gija Pyramid 는 1979년 UNESCO에 고대문화 유적으로 등록 되었다.
기원전 26세기 대부분을 통치했던 제4 왕조의 “Pharaoh”인 “Khufu, Khafre, Menkaure 의 3대왕이
세운 것으로 40 m 의 언덕이라 Nile Delta 삼각주가 내려다 보인다.
1) Khufu Pyramid: 왕의 재위 23년 동안 공사 ( BC 2656-2633).2∼3 Ton 에 이르는 돌 250만 개로 축조. 높이 147 m, 밑변길이 230 m,
그러나 지금은 침식으로 인해 높이가 138 m 이며, 입구는 17 m 높이 가운데 있다.
아래 지하 입구에서 50 m 정도 내려가면 첫째 방, 우측으로 통로가 나온다.
곧게 연결통로로 32 m 를 올라가면 길이 47 m, 높이 8.5 m 의 회랑이 있고,
이를 통과하면 묘실이 나온다. 10 mⅹ5m 의 묘실에 “Khufu”왕의 석관이 안치되어 있다.
묘실 위의 5개의 빈방에서 벽에다 낙서한 인부들의 기록에서 알 수가 있다.
약 10만 명의 노동자가 하루에 수십 개씩 쌓았다고 한다.
2) Khafre Pyramid: 아버지인 Khufu 왕의 무덤에서 남쪽으로 좀 떨어진 곳에 축조.
밑변길이 210 m, 높이 143 m, Khufu 왕의 것보다 경사가 기울고,
위쪽에는 공사 시에 쌓은 돌이 그대로 있으나 그 아래 부터는 돌을 띠어다가
다른 곳에 사용하였기에 차이가 난다.
3) Menkaure Pyramid: Khafre 왕의 아들인 Menkaure 의 Pyramid.
고원지대 남쪽 공간에 축조. 밑변 104 m, 높이 65 m, 묘실 배치는 Khufu 왕의 Pyramid 와 같다.
이 3대 Pyramid 축조 방법에 대한 기록이 없다.
상층부 까지 쌓아올린 돌을 어떻게 올리었을까?
여러 가지의 가설이 있으나 모두 불확실하다.
또 기자의 3 대 Pyramid 는 밤하늘의 오리온 별자리와 유사하게 배치되어 있고
별들의 크기와 일치한다고 벨기에인 “Robert Boval”이 주장한다.
또 일설에 의하면 Khufu 왕의 대 Pyramid 가 동경 31도, 북위 30도, 수직선과 수평선을 그리면
세계 대륙면적이 4등분되어 지구의 중심에 위치한다.
Pyramid 의 밑변이 동서, 남북으로 향해 있고, 밑변은 지구의 남북 거리를 2천만으로 나누면
약 365로 일년의 주기가 된다.
지구의 반지름 6378 km를 43.200으로 나누면 약 147m로 높이와 거의 일치한다.
또 적도 둘레 40075 km 를 43.200으로 나누면 Pyramid 의 4변 둘레 921.46m 가 나온다.
이렇게 보면 43.200분의 1로 축소된 북반구의 투영도라고 할 수 있다. 학설이자 가설이다.
1818년 3월 2일 “Belzoni” 가 석관에 도달하여 보니 유물은 하나도 없고 중간에는 공기 통로가 있었고,
그 오른쪽 방의 유물실은 이미 도굴된 상태였다. 당시에 미이라는 약 70일이 걸려 만들고,
내장을 다 꺼내고 심장만 남기고 만든다. 미이라를 만들어 장제(葬祭)를 치르고, Pyramid 에 안치 하였다 한다.
Pyramid 를 본 후 낙타를 타고 주차장까지 이동하여 우리는 다시 “Sphinx”로 접근하였다.Khufu 왕의 Pyramid 옆으로 내려가면 높이 20 m 의 거대하고 불가사의한 조각상이 나온다.
그 옆으로는 보존상태가 좋은 두개의 신전이 있고 서쪽의 것은 너비기 55 m 나 된다.
Khufu 왕의 Pyramid를 만들고 남은 큰 돌에 조각한 것이라 한다.
Sphinx 는 맹수의 힘과 인간의 지혜를 동시에 가진 “Pharaoh”를 상징한다고 한다.
화강암은 Aswan에서 가져 다가 사용하였고 얼굴은 “Khafre” 왕 자신을 조각하였고,
몸통은 사자상으로 BC 450년까지 모래 속에 파묻혀 있었다 한다.
그 옆에 것은 장제 사원으로 건축하였다 한다.
점심은 한국식당인 구룡관에서 모처럼 한식으로 진행 하였다.
이 곳 Cairo 에는 약 800여명의 교민이 있으며 식당이 10곳이고 초등학교도 있다.
식사 후 이스람 사원을 방문 하였다.
1) Salan Aldin Citadel: 11 세기에 축조 되었고 Turkey 의 Blue Mosque 사원과 같은 양식이다.
사원 내부는 상상을 초월하는 조각과 돔 장식이 되어 있고,
오른쪽 입구에는 “함마 달리”의 무덤이 있다. 행사 기간이라 인산 인해다.
2) 이븐 톨 로온 사원: 규모가 크나 화려함이 없어 탐방 객이 없다.
868년에 건축하였고 다른 이스람 사원과 공통점이 많고 단순하다.
미이라로 된 왕들은 영원히 사는가?
오후에 마지막으로 우리는 Cairo 박물관을 방문하였다.
일반 박물관 입장료에다 미이라 실은 별도로 입장료를 내야 한다.
우리는 먼저 음침한 미이라 실로 향하였다. 이곳에는 역대 왕의 미이라 12개가 안치되어 있다.
1) Tuthmosis Ⅰ,Ⅱ,Ⅲ세의 제 18왕조 ( BC 1504-1492)의 미이라
2) AmenhotepⅠ 세의 왕비의 미이라
3) SetiⅠ 세 의 제 19 왕조 ( BC 1290-1279)의 미이라
4) RamsesⅡ 세 ( BC 1279-1213) 의 미이라
중앙에 있는 “Ramses Ⅱ” 세의 미이라는 키가 180 m 이상이나 되고,
머리칼도 그대로 남아있다. 과연 그는 자신의 소망대로 혼이 영생을 하고 있을까?
“Tutangkhamen” 의 유물관의 신비
어린 소년 왕으로 18세로 세상을 떠난 그에게 왕가의 계곡 그의 무덤에서 발굴된 수천 점
의 유물은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순금관(棺)(표면에 화려한 무늬의 조각), 그의 권위의 상징으로 대표되는 금으로 된 투구, 금관,
순금의자(등받이에는 자신과 왕비를 조각) 등 너무 다채로워 말로 표현하기가 불가능하다.
그가 부활하면 먹을 수 있는 빵, 과일 등 도 부장품으로 발견 되었다.
또 365명이나 되는 수행원의 석상도 나왔다. 지팡이, 문장, 순금침대, 양산, 속옷 등
금제품으로 된 수천가지가 출토되었고 무덤 안에 그것들의 보관상자도 금으로 치장 되었다.
사후에도 이렇게 영화를 누린 Egypt 의 역대 “Pharaoh” 들은
과연 영혼의 세계에서 편안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 일가?
그들의 후예들은 왜 그 찬란한 유산을 물려 받고도 문명국가로서 세계를 이끌어 나가지 못 할 가?
우리는 박물관에서 수많은 생각에 사로 잡혀 마지막 일정인
“Sound and Light” show 를 보기 위하여 다시
Sphinx 가 서있는 공연장으로 이동하였다.
한시간 동안의 추위 속에서 고대와 현대를 이어주는 음향과 빛의 향연을 감상하면서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고대 문명을 탐사하는 순간을 정리하였다.
마지막 저녁식사를 한 후 호텔로 돌아와 다음날 아침 일찍 출국준비를 서둘렀다.
이번 세계문화 유적 답사의 좋은 Program 을 마련한 Themasaytour 와 강희옥 과장
의 노고에 감사를 드리며, 홍교수 부부와 회원님들, 좋은 답사기행에 만나길 바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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