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종 여행기/아프리카 여행기

아프리카 여행기-(2) 다시 Kenya 에 오다.

땡큐 이영옥 2011. 12. 30. 11:50

 

(2) 다시 Kenya 에 오다

공항 입국 카운터에 외국인 코너가 따로 있어 입국 비자료 50$ 내야 한다. 2인씩 심사. 사진, 오른손 엄지, 오른쪽 4 손가락 지문 찍고 나오니 14:30. 소형 버스로 비가 와서 엉망인 공사중인 도로로 나와 Nairobi 외곽에 있는 Safari Park Hotel(파라다이스 계열)로 향한다. 공항을 나서니 2003년에 우리들의 킬리만자로 등반 시 나이로비에서부터 기사였던 이 기동 .기사를 만났다. 정말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일까? 인연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다. 이곳에서 우리들을 안내할 여행사에 소속한 기사라 반갑다. 그는 우리들의 휴대트렁크를 운반하는 차를 운전하고 있으니!

17:40 Safari Park Hotel에 도착하여 18:00시에 308호에 체크인 후 산책을 나간다. 넓은 부지에 콘도식 호텔인데 열대식물이 가득하게 어우러진 경내를 산책한다. 저녁은 이곳 식당에서 철판구이로 소고기, 닭고기, 랍스터 등을 안주 삼아 맥주로 피로를 풀고 복음 밥으로 마감한다. 침대에는 옛날처럼 모기장이 달려있다. 머나먼 곳에서 첫날을 마감한다.

 

                        (사진: Safari Park Hotel 입구)

11. 22 () 오늘 부 터 본격적으로 현지 탐사에 나선다.

우선 이곳 Kenya라는 나라에 대해 알아본다. 켄야는 1963 12. 12 영국에서 독립. 면적은 582650, 7개 주로 구성되었고 인구는 3천만 명이다. 주민은 키쿠유 족 22%, 루야 족 14%, 루오 족 13% 기타 아프리카 계 15 % 43개 부족으로 구성되었다. 종교는 개신교 45% 카도릭 33%, 토착 신앙 10% 등 이다. 

케냐 출신의  Barack Obama가 미국 대통령이 된 것이 특기할 일이다. Barack 은 스와힐리 방언으로 축복 받음 이라는 의미이다. 케냐에는 그의 이복 동생 George Obama 가 살고 있고 그의 아버지는 1982년 교통사고로 사망 하였다.

켄야의 역사를 살펴 보면 BC 1000년경에 원주민인 Bushman이 거주하였고, 10 세기경에 아랍인이 상륙하였다. 16 세기경에 서쪽에서 반투족이 이동해 왔고, 동부해안을 아랍인과 포루투칼 인들이 상륙하여 점령하였다. 1824년에 영국이 몸바샤 지역을 장악하여 1888년 부터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1895년 켄야의 몸바샤에서 우간다로의 연결 철도선이 건설되면서 노예를 징발하였다. 이 철도는 1901년 다시 빅토리아 호수까지 연결 하면서 직할 식민지로 만들고 그 후 우간다와 탄자니아까지 합병 통치 하였다.

2차 대전 후 영국에서 Kenyata가 귀국하면서 Mau Mau 독립운동을 전개하여 196412 월에 공화국을 선포하고 초대로 Kenyata 대통령, Odinga가 부통령이 되었다. 1978년에 켄야타가 사망한 후 부족 갈등이 격화되고 유혈사태가 일어나고 오딩가도 탄압을 받았다. 그로 인해 친미적 독재가 성행하면서 빈국으로 추락 하였다.

 

그 후 선거를 통해 다니엘 모이 922, 973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켄야 민족 동맹 창당 후 초대 Kenyata14, 2, 3대 모이가 24, 도합 38년의 독재 정권이 들어서면서 친미국가로 정권을 유지, 그 후 최근에는 2007 12 27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키쿠유 족의 키바키 가 대통령에 당선 되었으나 키바키는 정권 유지를 위해 1550명의 사상자와 25만 명의 난민을 양산하면서 선거 부정으로 당선되었다 한다.

아직도 영국의 식민 통치의 유산이 남아 사회적 혼란이 재현되고 있고, 결국은 미국이 영국을 대신해서 동 아프리카에 세력을 유지하려고 독재정권을 옹호하면서 60%이상이 빈민으로 전락 하였다.

아프리카에는 부족이 많은데 이 부족의 집단을 무시하고 2차 대전 후 영국, 프랑스 등 열강이 국경을 획정한 것이 문제로 그 후 부족간 투쟁이 격화되어 이것이 인종청소로 이어져 수단, 우간다 등에서 피비린내 나는 내전이 계속되고 있는 것도 다 제국주의의 탓이다.

                          (사진:  Kenya 원주민들의 의상)

새로 놓은 양차선 도로에 나오니 주변은 개발이 한창이며 고급 주택가로 변모 중이다. 현지인이 아닌 유럽계인들이 이주하고 있으나 도로에 배수로도 없고 휴게소나 화장실이 없는 것이 문제다. 이곳 켄야의 한국인은 750명이나 선교사가 250여명이다. 켄야인들의 주식은 옥수수다.

우리가 제일 먼저 방문한 곳이  Great Rift Valley 지대이다. 이스라엘 지역 북방 베카계곡에서 홍해를 거처 동 아프리가 모잠비크 이 이르는 9600 km, 50~75 km의 깊은 계곡이다. 수목이 울창하고, 기름진 협곡지대이다. 멀리 산이 보이고 계곡 안에는 드문드문 주거지 및 시설물이 보이고 있다. 지구상의 동아프리카 지구대가 언젠가는 분리되어 대륙이 나누어 지리라는 이론이다.

또한 켄야의 엘도루 지역은 2400 m 내외의 고원지대이며 이곳 출신은 폐활량이 커서 마라톤에 강한 사람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 요즈음에는 세계 마라톤 경기에서 그들이 석권하다시피 한다.

가는 도로 가에는 트레일러가 쓰러져 있고 교통이 막힌다. 차가 꼬리를 물고 정체된다. 도로가에는 우리가 보지 못하던 선인장이 줄지어 자라난다. 고개를 넘어가니 광활한 초원에는 소떼가 풀을 뜯고, 그 가운데는 하얀 지붕의 원주민의 집이 즐비하다. 길거리에는 요소마다 임시상가가 드문 드 문 보인다. 

           (사진: 동 아프리카 지구대가 분리되리라는 선)

 

 

 

 Naivasha 호수와 초생 달 섬

 우리는 10:50분이 되어서 Naivasha 호수에 도착한다. 나이바샤는 움직이는 눈물이라는 뜻이다. 나이로비에서 빅토리아 호수로 향하는 A 104번 도로를 따라 약 78 km 거리다.

 구명 복을 각기 입고 보오트 한 척당 6명씩 승선하여 호수 유람에 나서니 수면에는 물망초가 보라색으로 피어나고 호수 안으로는 나무들이 그림같이 자라나고 물새들이 무리 지어 나른다. 하마 무리들이 10여 마리나 여러 곳에 무리 지어 호수에서 잠수하거나 서로 힘을 겨룬다.

Fish Eagle이 물고기를 낚으려고 나무 위에서 수면을 노려보고 있고, 페리칸이 무리 지어 이동하며, 코모란이 그 사이에서 몸을 떨면서 이동한다. 특히 목을 떠는 모습은 아주 신기하다.

호수 Safari를 끝내고 이번에는 동물 사육장으로 이동. 이곳의 초생달 섬의 동물은 처음에는 영화 촬영을 위해 사육하던 것들이다. 영화 Out of Africa 도 이곳에서 촬영하였다.

   (사진: - 호수면에 나온 하마 떼.   -페리칸, 코모란) 

 

 

 

 

   초원에는 맨 먼저 큰 키의 기린이 2~5마리가 나타나 우리들을 기다려 주듯이 사진을 찍게 한다. 얼룩말 무리, 누우 떼는 사람들을 피해서 다라 난다. 한참을 함께하니까 그 놈들도 이제는 가까이가도 다라 나지 않는다. 다음에는 사슴, 임팔라, 가젤 등도 친근해 져서 가까이 볼 수가 있다. 점점 이곳 동물들과 친해져 이제는 접근해도 다라 나지 않는다. 우리는 초생 달 섬을 한 시간 이상을 걸어 다니며 수많은 동물들을 만나면서 서로 교감을 나눌 수가 있었다.

 

 

 

 

 

 

 

 

 

 

 

 수많은 동물들을 사귀고 특히 얼룩말들은 나중에는 가까이 가서 함께 사진을 찍어도 가만히 함께한다. 다시 보오트로 출발 13:20Lake Naivasha Sopa Resort 에서 뷔폐로 점심식사를 하나 이곳에는 웬일인지 파리가 많다. 식사 후 Hells Gate Park 로 이동한다.

 Hells Gate National Park

그레이트 밸리 와 함께 있는 일명 지옥의 문이라는 국립공원을 처음으로 방문한다. 큰 동물인 Big Five 들은 볼 수 없으나 작고 귀여운 동물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국립공원이다.이곳은 넓은 골짜기로 되어 있어 그레이트 밸리에 가깝다. 

입구에서 차를 내리니 노란 동판이 바위에 붙어있는 것이 눈에 띠어 가까이 가보니 뜻밖에 유엔의 반 기문 사무총장의 방문 기념패이니 반갑기 그지 없다. 2011 4. 2일 그가 이 지구에 원자력 발전소를 세울 계획이 있는 부지를 시찰 했다 한다. 동판에는 이 국립공원을 방문했다는 기념패로 되어 있다.

 

 이 고원은 버스로 돌아본다. 들어가는 입구에 Fish Eagle Tower 라 부르는 송곳바위가 길 가운데 나타나고 그 밑에는 이 바위를 오르는데 필요한 장비를 대여해 주는 곳이있다.

 

                                (사진: 송곳바위 모습)

이 고원에는 멧돼지, 톰슨 가젤, 아프리카 꿩, 임팔라, 얼룩말 등 이 초원을 누비며 뛰어 다닌다. 동물들이 물을 먹는 웅덩이도 보인다.  이 공원 둘레로는 주상절리 같은 암벽이 둘러 쌓여 있고, 멀리 주위로는 바위산이 둘러 처져 있어 이곳에 살기 알맞은 초식동물들만이 살고 있어 걸어서 둘러 볼 수가 있는 곳이다.

 

                      (사진: 빗속에 나타난 멧돼지 가족)

 비가 뿌리는 가운데 헬스 파크를 돌아보고 버스를 돌려 나오니  Karuturi 라는 초등학교가 보이며 학생들이 운동장에 가득하다. 도로 가에는 농산물, 야채 등을 길 양 방향에서 잘 보이도록 진열하여 팔고 있다. 장터도 보이고 할 일이 없어 빈둥대는 남자들이 많고 풀밭 위에다 옷을 펼 처 놓고 파는 곳도 있다.

영화 Out of Africa 의 현장을 찾아

이번에는 오늘의 마지막 코스로 카렌 부릭슨(Karen Brykson) 박물관으로 향한다. 이곳에는 그녀가 살았던 당시 (1917~32)의 생활상이 자세하게 사진으로 전시 되어 있다.

이곳 주변에 광활한 땅이 모두 카렌이란 이름이 붙어 있다. 이 집은 1912년에 지어 그가 살던 집이다. 그녀는 1885년 덴마크 출신이고 1914년 아프리카에 왔다. 1917년 부 터 이곳에 거주, 1925년 바람둥이인 그녀의 남편과 이혼, 그는 그 후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1932년 까지 그녀는 이곳에 살았다.

카렌 브릭센의 생애는 Out of Africa 라는 영화로 만들어져 1986 12 12일 개봉 되었다. 카렌 브릭센 역에는 메릴 스트립, 그의 두 번째 남편인 데니스 해튼 역에는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을 하였고 감독은 시드니 폴락(Sydney Pollack)으로 당시에는 인기였다.  

                                (사진: 카렌 브릭슨이 살던 저택)

줄거리는 덴마크 출신인 카렌 브릭슨은 아프리카에 있는 자기의 커피 농장으로 가던 중 벌판에서 기차를 세워 상아를 실는 해튼과 만난다. 그녀는 먼저 농장에 가있던 브로 브릭센과 결혼한다. 첫 남편 브릭센은 사냥에 나가면 며칠씩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 남편에 지 처 그녀 집에 찾아온 데니스 해튼과 친해진다. 둘은 함께 사파리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카렌은 전남편에게서 얻은 매독으로 덴마크로 요양을 떠난다. 그 후 돌아와 전남편과 이혼하고 데니스 해튼과 결혼한다. 얼마 후 그도 비행기 사고로 죽으니 또 홀로 된다.

광활한 아프리카의 들판, 모차르트의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그녀는 죽음으로 이루지 못한 사랑을 글로 쓰고 작가로 변신한다.

커피 농장이 망하면서 그녀는 덴마크로 돌아가 작가로 변신 9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그녀는 현지인에게 베풀려 했고, 700여명이나 되는 현지인을 커피 농장에 고용하였고 그들을 위해 베풀다가 이곳을 떠났다. 1959년 이 주택과 시설은 켄야 정부에 기증하고 1985년 정부는 이곳을 국립박물관으로 개관 하였다. 박물관에는 그녀의 유년기부터의 사진을 중심으로 77세에 사망할 때 까 지의 전 생애를 불 수 있다. 남편과의 이혼 후 Denys 와 함께 살았으나 사진으로 보니 그는 대머리였다. 그도 경비행기 사고로 사망하였고 전남편처럼 사냥꾼 이었다.

 

 단층 건물 중앙에는 서재와 응접실이 있고 당시에 쓰던 가구가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거실에는 베치카, 옆으로 침실, 욕실이 있고 당시에 사용하던 욕조는 아주 특이하게 보였다. 변기는 수세식이 아니라 그대로 양변기 아래 통이 마련되어 있었다.

 거실 내에는 그녀가 그린 그림이 2점 걸려 있다. 한 점은 친구를 그린 것이다. 침실의 가구도 당시 대로이며, , 녀의 침실이 따로 있는 것이 특징이다. 주방은 본 건물 밖 건너에 따로 있는데 당시 사용하던 각종 주방기구가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이곳을 방문하고 그녀의 집 정원에서 기념촬영을 하였다. 주차장에는 켄야의 국화인 자카란다의 보라색 꽃이 꽃 비가 되어 떨어진다. 은은한 색 갈의 향기를 머금은 꽃잎은 바람에 휘날리며 오후의 석양빛에 더욱 더 애잔한 마음을 자극하여 준다.

18:00시가 되어 돌아오면서 유럽 사람들이 아프리카에 와서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여 농장을 차려놓고 커피 등 노동 집약산업을 주로 하고, 광산을 개발하여 본국으로 가져다가 부를 누린 시절을 떠올려보며 아직도 식민지 시대의 유산이 많이 남아있어 혼란하다.

도로 가에는 침대 등 가구를 만드는 곳, 그림을 파는 노점, 옷을 잔디밭에 벌여놓고 파는 곳, 청바지를 나무에 걸어놓고 파는 사람 등 여러 가지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다시 우리는 Safari Park Hotel 로 돌아와 내일부터 본격적인 Safari Tour를 준비한다.

                     (사진: 도로 가에 펼쳐 논 물건들)

내일 부 터 4 5일의 Safari 일정으로 여권, 충전기, 일용품, 갈아입을 옷만을 따로 준비하고 저녁 식사에는 이곳 야외 레스도랑에서 각종 고기류, 낙타, 악어, 양고기 등과 음료로 식사와 더불어 무대에서 한국의 노래도 불러주며 흥을 돋았다. 본 무대에서는 남, 녀 현지인들이 각종 춤, 무예, 체조 등으로 단련된 근육질의 연기를 감상하면서 40여분간 진행하였다.

 

 

Amboseli National Park Safari Tour

11.23 (): 오늘은 아침 07:30. 일 찍 도요다산 찝차로 4인씩 타고 Amboseli National Park 로 향한다. 호텔에서 나와 고속도로에 진입하기 까지 도로에는 물웅덩이가 계속된다. 하이웨이로 나오니 넓은 Savannah(초원) 한가운데로 직선으로 난 도로를 달려 250 km 떨어진 Ambolseli 국립공원으로 간다. 도로에는 매연이 심해 코가 매캐하다.

암보셀리 국립공원은 나이로비에서 남쪽으로 250 km, 길리만자로 영봉을 배경으로 392의 넓은 반 사막 상태의 건조지대다. 사자, 코끼리, 코뿔소, 하마, 물소, 가젤, 비비 원숭이 등에 아카시아 파피루스 나무 등이 주로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킬리만자로가 잘 보인다.

 

수 많은 트레일러, 화물차가 다니기 때문이다. 길거리 좌우로는 걸어가는 사람이 많이 보이고 집을 건축하는 곳이 여러 군데 보인다. 화창한 날씨에 08:35분이 되어 이제 몸바사암보셀리 방향의 도로로 나아간다. 잠시 후 Nairobi 국제공항을 지나 끝없는 초원지대로 나아가니 오른쪽은 황무지에 가깝고 왼쪽은 나무들이 가득한 곳에서 처음으로 큰 기린(Giruff) 한 마리가 아카시아 잎을 먹고 있다. 2시간이 지나면서 도로 양쪽으로 구릉지대 숲 속에 붉은 개미집이 군데 군데 솟아나 있다. 밭도 드문 드문 나타나고 길가로는 각종 풍물장이 서있어 사람들로 붐빈다. 과일, 야채, 신발, 옷 등 땅바닥에 벌려놓아 사람들로 왁자지껄하고 활기차다. 잠시 후에는 양파를 망태에 가득 담아 걸어놓은 노점상이 줄지어 나타나고 반대편에는 트럭들이 노견에 줄지어 서 있다.

도로에 휴게소가 없어 3시간 만인 10:30분이 되어서 Karibu Tena 마을에서 휴식을 한다. 그 사이에는 노반 도로공사, 포장공사 등으로 쉴 수 있는 곳도 없었다.  공사 중에 난 임시도로는 완전히 먼지길이다. 우리나라의 고속도로 휴게소와 화장실이 생각난다. 아직 이 나라가 우리수준에 이르려면 얼마나 걸린 것 인가를 생각해 본다.

휴게소 기념품 점으로 들어가니 나무로 만들어 칠한 아프리카인 상, 추장상, 창을든전사, 그림, 직물, 크고 작은 목각 인형 등의 공예품이 가득하게 진열된 곳을 지나야 화장실이 나온다.

우리 부부가 2003 2월에 킬리만자로 등산을 하러 왔을 때 보다는 도로 사정이나 생활형편이 크게 나아졌다. 휴식 후에 출발하여 3거리에서 우회전, 암보셀리 78km의 지점 부 터 시작이다. 일직선으로 포장된 도로 좌,우로는 넓은 초원이 푸르름이 가득하고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다.  한 무리는 웅덩이의 물을 마시고 있다. 소가 도로를 가로 지르느라고 차량통행을 막으니 잠시 기다려야 한다. 10여 마리의 소가 도로를 건너가니 잠시 기다린다. 잠시 후 암보셀리 입구를 지나 우리는 오늘의 목표지인 Sopa Hotel 로 간다. 날씨도 쾌적하고 해도 구름에 가려 적도 아프리카 개념이 사라진 날이다. 도로를 달려 가면서 Masai 족이 2~3명식 붉은 천을 두르고 지팡이를 집고 가는 것을 몇 번이나 만난다. 이제는 Kimana 마을을 지나가니 군데 군데 검문소가 보이고 제복을 입은 젊은이가 지키고 있다.

                         (사진:  SOPA 호텔의 모습)

직진하면 Mosi 로 가고,우리는 암보셀리 20 km 지점에서 우회전 이제부터 비포장 길을 가는데 뭉구스 한 마리가 차 앞으로 급히 건너간다. 마침내 Sopa Lodge 로 들어간다.

12:10. 장장 4시간 40분만에 오늘의 숙소에 도착하니 새로 지은 곳이다. 아프리카 향기가 묻어나고 키 큰 마사이 사나이가 붉은 복장으로 맞이하니 그가 바로 이곳 마사이 마을 촌장이다. 마사이 족은 12살이 되면 할레 의식을 치르고, 20살이 되면 전사가 되고, 사자를 사냥해 오면 최고의 전사가 된다. 그러나 이제는 과거와 달라 사냥도 할 수 없고 목축업도 어려워지고, 전사의 지위도 어려워져 지금은 관광 수입에 의존한다.

오늘 가는 암보셀리 공원의 동물의 주인은 코끼리다. 키가 3 m, 5 Ton 이나 되는 거구도 종종 볼 수 있다. 평생 11 마리씩 새끼를 5번까지 나을 수 있다. 코끼리 같은 대식가는 하루에 1톤이나 되는 초식을 먹기 때문에 초원의 사막화를 촉진 시킨다. 다음으로는 누우(Knu) 떼와 얼룩 말(Zebra)이 개체 번식에 압도적이기 때문에 그들은 먹이를 찾아 계절에 따라 대이동을 하는 것이다. 이번에 과연 이런 대이동을 볼 수 있을 까? 행운을 빈다.

우리는 로지에 여장을 풀고 잠시 쉰 후에 14:40분 경에 먼저 예전에 갔었던 Masai 마을로 간다. SOPA Hotel 에서 함께 온 거인이 우리를 안내 하면서 예전에(2003)10$였던 것을 이번에는 일인당 20$를 낸다.

 

 

 

 

                     (사진: 마사이 족의 환영 행사 모습)

그러나 아쁠사! 마사이 마을로 들어가는 순간 소 똥 위에서 마사이 족이 공연을 시작하면서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다. 비를 맞으며 그들 나름대로 15명이 한 줄로 서서 막대기를 들고 춤을 추며 노래를 하는 순간 빗줄기가 거세지면서 공연이 더 이상 어렵게 된다. 간신히 사진을 몇 장 찍고 똥을 밟으며 주위에 둥글게 지은 그들의 거처로 분산하여 비를 피해 들어간다. 순간 비가 굵어지며 바닥이 진창으로 변하여 신발이 엉망으로 된다. 얕은 지붕 아래서 지붕이 새는 곳에서 어린이, 마사이 성인, 전사들과 비가 그치기를 기다린다. 일부는 그들의 흑집으로 들어가 그들의 생활상을 직접보기도 하였다. 둥글게 주위로 형성된 그들의 거처는 양쪽으로 출구가 터져 있고 저녁이 되면 기르는 가축인 소, 양들을 이곳으로 몰아 넣어 가두고, 밤을 지내니 가축들이 이곳에다 배설물을 싸게 되어 언제나 그대로 마르고 밟고 다닌다. 이것이 바로 관광 자원이다. 그들의 거처로 들어간 분들은 마사이의 가정 살림 살이, 2개 가운데 통로 흑 담 아래 조그만 창 아래 불씨 등을 돌아볼 기회를 같게 된다. 방이라야 통로보다 조금 높은 흑 바닥에 소나 양의 가죽을 깔아 잠을 자게 하는 곳이다.

우리는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다 할 수 없이 나중에 오기로 하고 차에 올라 동물 Safari를 먼저 하기로 한다. 차를 타고 이동 하면서 암보셀리 공원으로 간다. 그러니까 신기하게도 내리던 비가 그치고 오히려 해가 나고 시원하니 하늘의 훼방인가?

 

                        (사진: 암보셀리 국립공원 입구)

사파리 차가 한참을 달려 암보셀리 공원 입구에 이른다. 해가 뜨겁게 내려 쬐는 가운데 신발에 묻은 똥을 털어내고 한참을 기다린 끝에 다시 사파리 차에 오르니 바닥이 말이 아니다 깨끗하던 찝차가 아주 더러워져 어찌할까?

한참을 달려 들어오니 어느새 코끼리 떼가 좌측에 나타나고 우측에서 도로를 건너가 가족과 합류하려 한다. 해가 나면서 역광이라 사진도 어렵다.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문제다. 대형 코끼리 떼가 오른쪽에도 10여 마리가 출현, 사파리 찝에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내놓으며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이다. 찝차가 전진하면서 코끼리 떼는 우리를 맞이한다. Big Five 중 처음으로 만나는 초식동물, 앞으로 나아가니 사슴 20여 마리가 앉아서 쉬고 있다. 건너편으로는 리더 사슴이 앉아 있고 그 앞을 30여 마리의 크고 작은 놈들이 엉키어 있다. 역시 동물 세계에서도 보스가 제일 인가 보다. 차를 멈추고 한참을 관찰한다.

                   (사진: 암보셀리 국립공원의 코끼리 가족)

 

 

차가 움직여 나가면서 이번에는 톰슨 가젤의 무리에 접근한다. 날렵한 몸매에 큰놈, 어린 놈이 섞여 있어 아주 자유스럽게 뛰어 다닌다. 이번에는 임팔라 무리가 나타난다. 가젤이나 임팔라는 다 집단으로 다니며 함께 살아간다.  그 사이로 타조 (Ostrich) 가 드문 드문 나타나나 주목을 받기가 어렵다.

 공원으로 깊숙히 들어가니 각종 새들도 보이나 역시 큰 동물이 관심 거리다. 왼쪽으로 꺾어 가면서 이번에는 하마(Hippo) 한 마리가 멀리서 자태를 들어내고 그 주변으로는 역시 코끼리 가족이 인기를 독차지 하며 이동한다. 사파리 차량이 여러 대가 모여든다. 한참을 나아가니 멀리 동물의 왕 사자(Lion) 2 마리가 마주 대고 누워서 게으름을 피운다. 쌍안경으로 보아야 하며 어두워지면 사냥에 대비하려는 모양인 것 같다. 외국인 들은 모두 쌍안경으로 살피면서 떠날 줄을 모른다.

 

 

이제 이곳을 떠나 전망대로 향한다. 왼쪽 멀리 자그마한 산 위로 전망대가 보인다. 한참을 달려 도로공사중인 곳을 지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계단을 따라 오른다. 올라가면서 Noomotio Hill 이라고 쓴 안내판을 만난다.  이 언덕은 Kilimanjaro 산이 화산 활동을 통해 이곳에 형성된 작은 산이다.  Noomotio 란 물을 머금은 바위 구멍을 의미한다. 언덕으로 오르니 오른쪽으로 Kilimanjaro 정상이 안타깝게도 구름에 쌓여 있다. 이 언덕도 화산재가 날아와 형성된 곳이라 한다. 언덕아래로는 Euokou 호수가 길다랗게 산 방향으로 이어가고 가운데 섬에는 하얀 물새가 걸어 다니다. 언덕에서 주변을 다 조망하니 엄청난 평원이 끝없이 하늘과 맛다아 있다. 참으로 끝없는 평원이란 표현밖에 적당한 것이 없다 

                             (사진: 임팔라 가족들)

  언덕 위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지는 해를 바라보며 Kilimanjaro 정상인 Uhru Peak가 보이기를 고대하나 하늘은 기회를 주지 않는다. 바람에 흔들리는 하얀 꽃을 사진에 담아보고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17:30 분경에 해가 서서히 기우니 돌아가기로 한다. 오늘 07:30분부터 함께한 기사 Nahason Nioroge 의 싸인을 받아놓고 하루를 마감한다.

 

 

 

서둘러서 해지기 전에 왔던 길을 되돌아 나오면서 다시 사자 가족 2마리를 쌍안경으로 관찰, 아까와 같은 모습이다. 어둠이 내리면서 속도를 내어 이제는 동물들도 밤을 지샐 자리로 이동하는 것을 바라보며 입구에 이른다. 다시 SOPA 호텔로 달려온다.

저녁에는 소주 맥주로 피로를 풀고 어두운 길을 따라 77호로 별을 보며 가면서 2003 2월에 이어 두 번째의 암보셀리 사파리를 아쉬움 속에 끝낸다.

우리가 머문 Masai Mara Sopa Lodge 는 넓은 땅에 선인장을 비롯한 열대식물이 우거지고 이름 모를 꽃이 만발하고 자연 돌길을 조성한 곳으로 각 숙소가 연결되어 있고 밤이면 별이 쏟아져 내린다. 전기는 1차로 저녁 8~12시까지 공급한다.  2차로 새벽 4~8시 까지 들어온다. 단층 건물을 둘로 나누어 두 가구로 분리 되어 있다. 주변에는 조그만 원숭이 들이 무수히 많으니 과일 같은 것을 뺏기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한다. 허나 어미가 새끼를 품에 안고 다니는 모습은 아주 동물의 모성 본능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행위이다. 내일 아침에는 과연 정면으로 보이는 Kilimanjaro 정상을 볼 수 있을까 

                   (사진: 숙소 앞에서 본 Kilimanjaro 산의 모습)

 

11.24(): 아침에 비가 온후 06:00 시경에 나오니 마웬지 봉과 길리만자로 우르피크 봉이 눈으로 하얗게 덥힌 채 구름 속에 나타나고 롯지 밖에는 마사이 모자를 쓰고 제복을 입은 젊은 이들이 우리 방을 노크하고 기상을 알린다. 주위에 선인장이 아침 비를 맞고 싱싱해 졌고, 후박나무의 흰 꽃이 향기를 내 뿜는다. 아침을 끝내고 와서 간이 옷 가방만을 들고 나선다. 트렁크 2개는 나이로비 사파리 파크 호텔에 두고 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옷 가방을 얼른 빼앗듯이 가져가고 호텔로비로 들고 가고, 또한 아침부터 우리 문 앞을 지키고 전화도 없는 곳에서 모닝콜을 대신해준 수고로 팁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