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종 여행기/우리문화유산 답사

2015.03.21 -우리문화유산답사-<충절의 고장-천안일대>-(25)

땡큐 이영옥 2015. 4. 1. 19:20

 

2015. 03. 21.

 

 

        우리 문화 유산 답사

        

     <충절의 고장-천안 일대>

                           (25)

                                             ,사진: 한 종

 

 

                                            (사진: 유 관순 열사 영정)

 

 

 

 

천안일대는 서울에서 멀지 않아 경부선을 따라가면 한 시간 이내에 도달 할 수 있는 위치이다.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였고 주변이 얃으막한 산과 분지로 되어있어 하늘아래 살기 좋은 곳이란 의미로 <天安>이란 지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천안 삼거리는 옛날부터 민요의 고장으로 흥겨운 소리의 탄생 지이기도 하다. 또 이 지역은 역사적으로 볼 때 충절의 고장으로 역사에 길이 남고 있다.

즉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하여 일제에 항거한 3.1 독립운동의 요람으로 어린 나이에 여자의 몸으로 이 고장의 만세운동을 이끌어 민족혼을 불러 넣어준 <유 관순> 열사의 탄생지이기도 하다.

유관순 열사의 정신을 후세에 기리기 위해 그의 사적지를 성역화하고, 생가, 그녀가 다녔던 매봉 교회를 다시 세우고 그의 거룩한 정신을 추모하기 위한 각종 행사가 매년 열리고 있다. 아울러 일본의 침략으로 고국을 떠나 망국의 서러움과 고난의 생을 살아간 해외 동포들을 위해 망향의 동산을 이곳에 세웠으니, 일본, 중국,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미국 캐나다, 브라질, 프랑스, 독일 등지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한 해외 동포 영령들의 안식처로 영혼이 잠들어 있다.

우리 민족의 5천 년의 역사에서 수많은 외세의 침략, 특히 일제의 침탈 아래 조국을 수호한 강인한 독립정신을 영원히 계승하기 위한 독립기념관이 세워져 있어 후세의 교육장으로 중요한 지주역할을 하고 있다.

그 외에 <조 병옥> 선생 생가가 유 관순 열사 생가에서 수 Km 떨어진 곳에 있으니 그는 일제 때 흥사단 등 독립 단체에 참가해 조국광복을 위해 투쟁하며, 광복 후에는 정치에 투신하여 내무장관 등, 야당투사로 활약하고 대통령 후보에 나섰다가 심장병으로 미국에서 서거하였다.

 

 

 

                                                     (사진: 답사할 천안 일대 지도)

 

그 외에 <이 동령> 선생의 생가도 이곳에 있으니 그는 28세에 독립협회에 투신하여 구국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만민공동회 운동으로 투옥되어 되었고, 월남 <이 상재> 등과 YMCA 운동에 참여하였으며 독립기념관 근처 목천에 기념관이 마련되어 있다.   

또한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홍 대용>선생을 기리는 과학관과 생가지가 이곳에 자리잡고 있다.

가전리에는 임진왜란 시 왜적을 물리친 김 시민 장군의 유허지가 자리잡고 있다.

광덕면에는 광덕산 (699m) 기슭에 자리잡은 천년 고찰 광덕사가 있으니, 이곳에는 많은 불교유산이 있으니, “노사나불 괘불 탱화를 비롯해 부처의 사리 등과 불경서적이 간직된 가람으로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천안일대에는 호도나무의 고장으로 천안 명물 호도과자의 생산지로서 이름 높고 누구나 이곳에 오면 호도과자를 맛볼 수 있다. 광덕사 대웅전 입구에는 수령 400년을 자랑하는 호도나무가 천연기념물( 398)로 지정되어 있다. 

이 일대는 국내 호두생산의 보고로 견과류 중에는 영양가가 가장 높으며 항 산화 물질이 다량으로 함유되어 있어, 우리의 두뇌 발달에 큰 영향을 주는 영양소라 한다...

성거읍에는 고찰인 천흥사가 있던 자리에 지금 남아있는 당간지주와 오층석탑이 문화재로 남아있다. 북면 성거산 (579m) 중턱에는 천주교 박해 시 박해를 피해 산속으로 숨어 들었던 교우들의 줄 무덤이 이곳에 자리잡고 있다. 1801년 신유박해 이후에 이곳에 숨어들어 그들만의 신앙을 유지하며 살던 천주교인들의 생존지이다.

고지대에 있어 경관이 빼어나니, 천연의 성지로 자리매김되어 있다. 들 꽃과 단풍으로, 겨울에는 환상적인 설경으로 장관을 이룬다

 

 

 

1.   유관순 열사

유 관순은 1902 12.16일 충남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에서 부모님 <유 정권, 이 소제> 사이의 3 2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1916년 감리교 공주교구의 미국인 여 선교사의 도움으로 이화학당에 입학하였고, 옆에있는 정동교회에 다니며 나라와 민족에 대한 애국심을 키워나갔다.

1919 3. 1운동이 일어나자 고등과 1년생으로 만세 시위에 참가하였고, 당시 일제가 이화학당을 강제로 휴교시키자 고향으로 와서 청신 학교에서 서울에서의 독립시위를 소개하며 그의 향리에서 시위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 4 1일 천안 병천면 아우내 장터에서 3000여명이 참여하는 만세운동을 주도 하였고,

조 인원, 김 구웅, 이 백하 등의 마을 지도자를 규합하여 3 31일 매봉산 봉화를 시작으로 만세운동으로 퍼져나갔고, 연기, 진천, 청주지역의 교회와 더불어 음력 3 1일의 아우내장터에서 장날에 만세시위를 추진하여 당일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인해 일본 헌병대에 총칼에 부모를 비롯해 19명이 순국하였고, 30여명이 중상을 당하였다. 유 열사는 일제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았고, 공주 법원에서 징역 5년의 형을 언도 받게 되었다. 그 후 항소 후 경성법원에서 3년 형을 선고 받고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수감중인 1920 3 1일을 기해 다시 옥중에서 만세운동을 일으켜 모진 고문을 당하였다.

서대문 형무소 수감되어 있으면서 고문 후휴증으로 순국하니 당시 나이 18세로 1920 10 12일 이다.

열사는 독립선언서에 있는 비폭력 평화주의 원칙을 지키며 최후의 일각까지 투쟁하다 순국하였으니, 3.1 만세운동의 정신적 상징이며 겨레의 꽃으로 영원히 살아있다.

정부는 1962 3.1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1972 10 14일 열사의 생가와 봉화를 올렸던 매봉산 봉화지를 사적 230호로 지정 하였다. 생가에서 숲 속 오른쪽 오솔길을 1 km 정도 오르면 봉화탑과 초혼묘가 나온다.

정부는 열사 탄신 100주년을 기념하여, 그의 기념관을 2003 4 1일 개관하였다.  기념관에는 열사의 수형자 기록표, 호적 등본, 재판 기록문 등 관련 자료와 <아우내 장터> 독립만세 운동을 재현한 디오라마, 재판과정의 매직 비전, 애국지사들이 고문 받았던 서대문 형무소 벽관 체험 코너 등과 영상실 등이 마련되어 있다.

 

 

2.   천흥사지(天興寺址)

 

천안시 성거읍 천흥리에 있는 고려시대에 사찰이 있던 터다. 921년 고려태조 4년에 창건되었으나  조선조에 와서 폐사가 되어 지금은 절터와 당간지주와 5층 석탑만이 남아있다.

천흥사지 터에서는 각종 기와, 토기 등이 수습되면서 天興이라는 명문이 나와 이곳이 옛날 천흥사 터 임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이 곳에 서 발견된 동종은 현재로 국립 중앙 박물관에 소장되어있고, 동종에는 <聖居山 天興寺 鐘銘 統和 28 庚戌 2月日>이라는 명문이 새겨 있어, 1010, 고려 현종 때에 이미 천흥사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천흥사는 조선시대에 폐사된 후 이 일대가 과수원과 민가로 개발되어 그 규모를 알 수 없으나 현장에 남아 있는 당간지주와 5층 석탑의 거리와 규모로 보고, 또 동종의 규모로 미루어 보아 대규모 사찰이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가 있다.

이 동종은 국보 제 280호로 지정되어 있다.

a)     천흥사지 당간지주(天興寺址 幢竿 支柱): 보물 제 99(1963.1.21 지정)

당간이란 절에 행사가있는 날에 깃발을 매다는 장대를 지탱해 주는 지주로 2 개의 기둥을 말한다.

높이가 3m 60의 간격으로 2단의 기단 위에 세워졌다. 상단 꼭대기 끝에 깃대를 고정시키는 구멍이 네모나게 파여 있다. 양 지주는 기단아래 70 정도에 묻힌것으로, 이 기단은 발견 당시 주변에 흩어져 있던 것을 복원한 것으로 네모나게 잘 다듬어져 있었고 상면에는 꽃모양의 장식이 새겨져 있다.

이 당간 지주는 천흥사 5층 석탑으로부터 300m 이상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천흥사의 규모를

추정 할 수 있다.

 

 

b)   천흥사지 5층 석탑: 보물 제 354(1963. 1. 21 지정)

고려시대의 탑이나 시기상으로 보아 신라 석탑양식이 가미되어 있는 고려 전기의 석탑이다.

석탑의 높이는 527, 밑 부분에는 지대석을 놓고 그 위에 2층의 기단을 만들었다. 1966년 해체 복원 시 5층의 옥개석으로 되었으나 기단 일부가 파손되었다. 넓은 지대석 위에 2층으로 기단이 놓여 있으나 하층 기단보다 높아 좀 불안정하게 보인다.

하층 기단은 4개의 돌로 구성 되었고, 각 면에 작은 안상(眼象) 7개씩 조각 되어 있고, 하층 갑석 위에는 2단의 굄돌이 상층 기단을 받치고 있다.

탑신부의 옥신석(석탑의 몸체를 이루는 돌)과 옥개석(지붕처럼 덮는 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구성 되어 있고, 옥신석은 위층으로 가면서 급격하게 크기가 줄어 드는 형태이고, 각 면에는 우주가 새겨져 있다. 옥개석의 받침은 3단으로 되어 있다. 상륜부는 상실되어 아쉬운 모습이다.

 

 

 

 

 

 

 

3.   천안 삼태리 마애여래입상(三台里 磨崖如來 立像): 보물 제 407

천안 태학산 산정 바위에 새겨진 마애여래 입상으로 높이가 8m, 너비가 9m의 커다란 바위에 조성된 거대한 불상이다.

마애불이 위치한 삼태리는 광덕사와 가까운 곳으로 이 마애불은 광덕사의 부속 암자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 된다. 넓적한 얼굴, 치켜 올라간 눈, 광대뼈가 나온빰, 큰 코와 작은 입 등의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소발의 머리카락은 둥글고 큰 육계(肉髻-부처의 정수리 부근의 상투모양으로 묶은 머리)도 인상적이다. 두 손을 가슴 앞으로 모았고, 귀는 양 어깨 아래로 늘어져 있고, 목은 아주 짧아 목에 있을 주름인 3도는 가슴으로 내려와 있다.

넓은 어깨에 걸친 불의는 배 아래로 U 자형의 주름으로 형성되어 전체적인 불상 양식으로 보아 고려 시대의 마애여래로 보인다.

불상위로 바람을 막기 위한 건물을 세웠던 흔적이 있고 아래로는 절터가 크게 남아있다.

 

 

4.   광덕사(廣德寺):

신라 진덕 여왕 시인 652년에 자장대사가 창건 하였다. 832년에 흥덕왕 7년에 <진산 화상>  중수하였고, 1344년에 대대적으로 중창하였다. 신라의 자장율사가 당에서 수행을 한 후 634년 귀국 시에 진신 사리 10. 법의, 불치, 화엄경 등 불구를 가지고와 광덕사에 안치하였다.

광덕사 사적에 의하면 금당, 종루, 범각, 법전, 천불전, 만장각 80, 그리고 주위에 89개의 암자를 거느렸던 대 사찰이었다고 한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전소된 것을 선조 31(1598)에 복원하였고, 최근인 1998 12월에 천불전이 화제로 소실되어 2009 9월에 복원되었다.

a)     광덕사 대웅전: 충남문화재 자료 제 246.

대웅전에는 중앙에 석가모니불이, 좌측에 아미타불이, 우측에 약사불이 모셔져 있다.

광덕사 문루인 보화루를 지나면 광덕사 사적기가 있으니, 여기에는 신라 흥덕왕 7년인 832년에 진산 화상이 창건하고, 당시에 자장 법사가 중국에서 수행 후 석가의 불치 1, 사리 100과를 가지고와 이 사찰에 안치하였다고 한다.

 

전면 5칸에 14m, 측면 3칸에 8,5m 의 맞배 지붕의 다포계 건물이다. 기단 위의 기둥자리에는 조각한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웠고 가운데 측면 중앙 기둥만 사각기둥을 세웠다. 건물의 창호는 격자살문으로 되어 있다.  중앙의 불상 뒤로는 1741년 영조 17년에 제작된 삼세불도가 모셔져 있다.

 

 

 

b)     광덕사 3층 석탑: 충남 유형문화재 제 120.

대웅전 앞 뜰에 있는 탑으로 높이가 2,8m이다. 기단이 2중으로 되어 있고, 1층 기단 면석에는 8개의 안상(眼象)이 조각되어있고, 2층 기단에는 탱주(撑柱)와 우주(隅柱)가 양각되어 있다. 갑석 상면에는 탑신을 받는 옥신 괴임이 1단으로 높게 조각되어 있다.

1층 탑신과 옥개는 각 1장의 돌로 되어 있다. 탑신 동측 면에는 문비(門扉)의 열쇠가 모각되어있고, 옥개 받침이 4단으로 되어있고 경사도가 심하고 상륜부에는 노반(露盤)과 복발(覆鉢)이 남아있다. 균형이 잘 잡혀있는 탑으로 고려초기의 탑으로 추정 된다.

 

 

 

c)     광덕사 천불전: 충남도 문화재 자료 제 247

광덕사의 천불전은 임진왜란 당시 소실된 것을 중건하였고, 현재의 건물은 1975년에 해체 복원한 것이며, 다시 1998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최근 복원 공사를 하였다.

정면 5,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의 다포계 건물이다. 돌기단위에 둥근 주춧돌과 둥근 기둥 위에 주간포를 배치하였다.

 

 전내에는 3천불을 모시었는데 본존불은 비로자나불로 지권인(智拳印)을 한 모습이고, 양 옆으로 제자인 <가섭과 아난존자>를 협시로 모시고 있다.

<삼천불직조금화탱삼좌>(三千佛織造錦畵撑三座)는 삼존의 뒤에 천불마다 각각 한 폭씩 모두 3개의 탱화를 걸어 놓았다. 이는 광덕사 사적기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나 화재로 전소되었다.

 

 

 

 

d)    광덕사 부도: 충남 유형 문화재 제 85.

광덕사 대웅전에서 위쪽으로 산기슭에 4기의 부도가 있다. 이는 청상당 부도, 적조당 부도, 우암당 부도, 무명 부도라 부르며  광덕사 사적기에 의하면 조선시대의 것으로 추정 된다.

청상당 부도는 청상스님의 사리를 모신 것이다. 그는 조선 선조 36(1603)에 출생하여 현종 12 (1671)에 은적사에서 입적하였는데 그 제자들이 이곳에 사리부도를 세웠다.

형태는 전체가 8각을 이루고 있고, 기단부와 탑신부에 장식을 하고 있다. 탑신은 둥근 모습으로, 그 위에 6각의 지붕 돌이 얹혀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이 조각되어 있으며, 사적기에 따르면 현종 13년에 부도를 세운것으로 되어 있다.

                        (사진: 청상당 부도 모습)

적조당 부도는 천체가 8각을 이루고 있고, 기단부와 탑신부, 머리부에 장식을 갖추고 있다. 기단부는 아래와 윗 받침돌에 연꽃무늬를 조각하였고, 그 사이에 8각 가운데 받침돌은 면마다 난간을 새겼고, 한 면에 적조당이라는 글씨가 있어 사리의 주인공을 알리고 있다. 6각 지붕 돌 꼭대기에는 보륜(寶輪)과 보주(寶珠)가 올려 있어 특이한 모양이다.

 우암당 부도는 기단부가 둥근 받침돌에 올려있고 우암당이라는 글씨가 새겨 있다. 탑신은 원형의 몸 돌과 6각 지붕 돌이 있고 그 위로 둥근 머리 장식이 올려 있다.

 무명 부도는 연꽃무늬를 새긴 아래 받침돌 위에 8각의 받침돌을 올리고 세 줄로 연꽃 잎을 새긴 윗받침 돌을 얹어 기단을 만들었다. 탑신은 종모양을 하고 있고 꼭대기에는 보주를 얹어 장식을 하였다.

e)     광덕사 노사나불 괘불탱(盧舍那佛 掛佛幀): 보물 제 1216

<광덕사 노사나불 괘불탱>은 영조 26(1750) 승려화가인 금어화사사혜비구니를 중심으로 6명이 함께 제작하였다.

화폭에 중앙에 화려한 보관을 쓴 불상을 중심으로 여러 존상이 좌우대칭으로 배치된 그림으로 야외 의식 때 사용한 것이다.

노사나불 괘불탱은 높이가 10.62m, 폭이 7,11m의 삼배 바탕에 그린 것으로 21폭의 삼베를 연결하여 제작하였고 상단과 하단에 봉이 있고, 상단 봉에는 고리가 3개있어 이 괘불을 지주에 걸 수 있었다. 괘불의 중앙에는 화려한 보관을 쓴 불입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2보살과 사천왕, 아난, 가섭 등 10위의 제불을 좌우대칭으로 배치하였다.

 중앙에 위치한 보살은 설법인의 수인을 한 노사나불로 좌우에 보살과 균형을 이루도록하였다.

 

*광덕사노사나불괘불탱 (廣德寺蘆舍那佛掛佛幀)

 

 

 

f)      광덕사 감역교지(減役敎旨):  보물 제 1246

조선조 세조 3년에 (1457) 왕이 친히 천안의 광덕사의 잡역을 경감하라는 내용의 교지로, 사찰에서 각종 잡역을 면제한다는 내용을 담은 것이다.

교지의 크기는 세로 41,8, 가로 21㎝로 표지는 청색의 비단으로 감쌌고, 그 위에 御筆”(어필) 이라는 제첨이 붙어 있다. 7행이 한지에 해서체(楷書體)로 쓰여 있으며, 끝에는 국왕이라는 것을 쓰고 수결(手決)을 한 뒤 연 월 일 위에 시명지보(施命之寶)를 찍었다.

조선 전기에 사패 교지는 공로가 있는 자에게 나라에서 부역을 면제해주는 것을 문서로서 내려주는 자료로, 당시에 사찰의 보호와 불교정책을 살피는 자료이다. 당시에 광덕사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이 교지는 천안박물관에 복제품으로 전시되어 있다.

 *천안 광덕사 감역교지 (天安 廣德寺 減役敎旨)

 

 

g)    광덕사 조선 사경 (朝鮮寫經): 보물 1247

광덕사의 조선 사경은 

1)     백지묵서부모은중경 부 불설장수멸죄호제동자다라니경

<白紙墨書父母恩重經 佛說長壽滅罪護諸童子陀羅尼經>

부모은중경은 부모의 은혜를 10가지로 나누어 설하고, 은혜를 갚기 위해 공양을 행하라는 내용.

2)     백지묵서묘법연화경

<白紙墨書妙法蓮華經>

3)     백지묵서불설장수멸죄호제동자다라니경 부 대승기신론

<白紙墨書佛說長壽滅罪護諸童子陀羅尼經 大乘起信論>

 

*천안 광덕사 조선사경 (天安 廣德寺 朝鮮寫經) 

 

 

 사경이란 불경의 내용을 적어 화려하게 장식한 것으로 백지에 먹으로 썼고, 내용에 따라 그림이 그려져 있고, 이는 태종의 둘째인 효령대군 부인이 시주하여 만든 것이다. 서지학 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다.

h)     광덕사 호두나무: 천연기념물 제 398

중국이 원산지인 호두는 고려 충렬왕 16(1290) “유 청신”( 淸臣)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면서 호두나무 열매와 묘목을 가져와 이곳 광덕사에 심었다 한다. 이로인해 이곳이 우리나라 호두 재배지가 된 것으로 오늘날 광덕면 일대에는 우리나라의 호두의 원산지로 60%를 차지하게 되었다. 호도는 뇌를 맑개하는 식품으로 유명하다.

 현재 절 입구에 심어진 호두나무는 약 400년의 수령으로 추정되며, 높이가 20m, 나무의 밑 둘레 4.38m, 윗 둘레 3.7m의 거목으로 자라 지표로부터 1m 의 위에서 줄기가 동서로 갈라져있다.

 이 호도나무는 1998 12 23 일 천연기념물 제 398호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5.   조 병옥 박사 생가

維石 炳玉 (1894,5.21~60.2.15) 박사는 유 관순 생가에서 가까운 병천면 용두리에서 태어 났다. 그는 평양 숭실 학교를 거처 1914년 연희 전문을 졸업한 후 1918년 미국 유학으로  1925년 컬럼비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근세의 독립 운동가로 생가가 유 관순 열사 인근에 위치해 있다. 그는 미국 유학 중 한인회, 흥사단 등의 단체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을 하였고, 귀국 후 신간회와 항일운동으로 5년 동안 옥중생활을 하였다. 광복 후 한민당 창당에 참여하고, 1950년 이 승만 정부에서 내무부 장관을 한 정치가로 일생을 살다가 이승만 박사에 대항하여 1960년 대통령에 입후보하였다가 심장병으로 미국 월터리드 육군병원에서 돌연 타계한 정치가였다.

반 독재 투쟁 시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 삼 간을 태울 수 없다는 명언을 남기었다. 사후 수유리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그는 독립운동 유공자로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 되었다.

 

 

6.   천안 박물관

천안 박물관은 2008 9 22일 개관하였으며, 지상 2층 지하 1, 옥외 건물 6동으로 되어 있다.

선사유적에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천안 일대에서 출토된 모든 유적과 유물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상설전시관으로 제 1 전시실은 천안 고고실로 청동기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는 유적과 유물을 전시하여 변화과정을 살펴보게 하였고, 발굴 과정의 자세한 과정을 밝힘으로서 고고학에 대한 이해를 쉽게 하였다.  2 전시실은 천안 역사실로 향촌사회의 생활사를 중심으로 전시, 3 전시실은 천안 삼거리의 상징적인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4 전시실은 조선왕실의 교통수단과 지하철, KTX에 이르기 까지 각종 교통관련 유물들, 5 전시실은 어린이를 위한 곳으로 체험을 통해 우리 유물과 역사를 배울 수 있게 하였다.

특히 국보 제 280호로 지정된 성거산 천흥사 동종, 보물 제 1189호로 지정된 암행어사<박 문수>의 초상화,  보물 제 1246호인 광덕사 감역교지 등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