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Syria-Damascus
(사진: Syria 전국지도)
어제 늦게 시리아에 들어와 교외에서 조용한 휴식을 취하였다. Al-Wadi 호텔은 돌로 외관을 장식하여 눈에 확 띠지 않으나 그런대로 육중한 모습으로 건축하였고 커다란 수영장이 있다. 앞으로는 “기사의성 (Crac des Chevalier)” 이 멀리 산정으로 보이고 경치가 좋은 곳이다.
시리아에 대한 상식. 면적은 18만 6500㎢, 인구는 1.650만, 수도 다마스커스는 185만이다.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을 연결하는 위치에 있다. 사회주의 이스람 국가로 오스만 터키의 지배를 받다가, 제 1차 대전 후 오스만 터키 왕조가 무너진 후 프랑스 통치하에 있다가 1946년 독립. 1967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시 골란 고원을 이스라엘에 빼앗겼다. 1976년 이 후 레바논에 평화유지군 명목으로 군사배치를 하였다.
시리아는 생활수준은 낮으나 농촌은 풍요로워 보인다. 다마스커스는 아랍어로 다마스 라고도 한다. 시리아는 유프라테스 강에 땜을 만들고 유적을 옮기었다.
1) 기사의 성 (Crac des Chevalier): 이 성은 홈즈 시내로부터 50 km, 해발 650 m 산정에 아랍인들이 1000년 전에 중세의 요새로 축성 하였다. 처음에는 쿠루트 족의 상인들이 들어갔으며 쿠르트 요새로 삼았다. 12세기에 성이 함락되면서 요새는 더욱 튼튼하게 방어용으로 만들어 졌다.
(사진: 기사의 성 전경)
13세기에 와서 맘룩 황제 베이바르(Mamluk Sultan Baybars) 수중으로 넘어 갔다. 이 성은 시리아에서 가장 잘 보존된 건축물이다. 물을 대기 위해 21개의 저수조가 마련되어 있고, 성안에는 궁전, 운동장, 교회, 창고, 각종 홀이 있다. 이 성은 전망이 최고이다. 외벽으로는 바위 벽 틈으로 잡초가 돋아있고 노랑 꽃이 피어있어 더욱 신비하고, 견고한 돌로 축성하여 위용을 자랑한다.
기사의 성에서 내려가는 길은 야생화의 천국이었다. 노랑, 보라, 빨강색의 이름 모를 꽃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다투어 피었다. 평야가 무한대로 펼 처 지며 아주 풍요로운 풍경이다. 밀밭이 끝없이 이어지고 언덕위로는 노란 야생화와 엉겅퀴 사이로는 양떼, 소떼가 움직여 간다.
홈즈(Houms) 시내에는 정유공장 굴뚝이 높이 솟아있고 불꽃이 치솟아 오른다. 원유탱크가 줄지어 있고 초원 위에는 농가가 군데 군데 있다.
팔미라로 가는 도로에 나오니 홈즈 시가 가까이 보이고 제법 도시답게 큰 건물이 많았다. 도로 가에는 유채꽃, 빨간 아네모네와 이름 모를 꽃들이 만발하여 바람에 나부낀다.
(사진: 도로가에 피어난 아네모네 꽃)
팔미라(Palmyra) 110 km 지점을 통과하니 시리아의 사막지대가 나온다.
차는 광활한 사막지대로 풀 한 포기 없는 메마른 곳으로 나아간다. 멀리 흰구름만이 떠있고 또 오른쪽으로 정유공장 굴뚝에서 시뻘건 불꽃만이 솟아 오른다.
이제 팔미라 72 km 지점을 통과한다. 허허벌판 붉은 흑이 덥힌 사막 사이로 난 도로를 달린다.
팔미라는 대추야자의 집단 재배지이다. 예전에는 무역의 거점도시로서 AD 262~272 년 까지 융성 하여 광야의 도시로서 상권을 장악하여 페르시야 지역에서 지중해 지역까지 교역로의 중심도시로서 성장 하였다.
다마스커스에서 250 km 떨어진 동쪽이다. 드디어 팔미라 시가 나타나고 사막 도시답게 색갈이 엷은 흑갈색의 도시이다. 주변은 오아시스가 많다.
2) 팔미라-전설의 고대 로마의 도시. 1980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
BC 274년 로마제국이 동방의 영토인 팔미라 지역에서 셉티미우스 오다나투스(Septimius Odenatus) 와 제노비아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아우렐리아누스 황제는 왕의 비를 노예로 끌고 로마로 개선 했으나 그의 미모에 반해 결국 임신을 시킨다. 그녀는 황제인 남편을 살해하고 대신 권력을 잡고, 아들을 황제에 안치고 자신은 “Augusta” 라고 칭호를 붙였다.
그녀는 페르시아와 동맹을 맺고 동방에 제국을 건설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로 인해 팔미라는 로마로부터 자치를 부여 받았고 동방의 교역도시로 성장 하였다. BC 124 년에는 팔미라가 자유도시로 지정되었다. 인도와 중국에 이르기까지 교역을 확대함으로 서 부를 쌓게 된다.
(사진: 팔미라 고대 도시 입구에서)
기원 전 1세기 이후까지 팔미라가 로마 제국 하에서 발전한 원동력이 바로 교역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실제로 사방이 사막으로 둘러 쌓였고, 세상과 격리되었으나 풍부한 물, 비옥한 땅이었다. 이때 축조된 고대 유적지는 10㎢의 넓은 땅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가나안은 바알(Baal) 지역으로 바알 신은 로마에서는 Jupiter 신, 그리스에서는 Zeus 신을 의미하고, 시리아에서는 Baal을 “Bel”로 불러 벨 신전이 건축된 것이다.
현재는 길이 1188 m, 너비 22 m의 넓은 거리, 벨 신전, 원형극장, 목욕탕, 네보 신전, 무덤지역, 그리스 식 고린도 양식의 건축물 등이 남아있다.
열주 거리는 4개의 구역으로 (1)개선문에서 벨 신전에 이르는 거리, (2) 4개의 기단석으로 된 테트라 필론(Tetrapylon)과 주위의 목욕탕, 네보 신전, 원로원, 아고라, 바알 신전 거리, (3) 주거지를 지나 장례 신전, (4) 무덤의 계곡, 디오클레티아누스 문 등이다.
a) 벨 신전: BC 32 년에 건축. 210ⅹ204m 규모로 제단, 내실, 욕조, 연회실이 있다. 내실에는 태양신 야르히볼(Yarhibol)과 달의 신 아그리볼(Aglibol)의 신상과 주신인 벨 신상(로마에서는 Jupiter 신)이 오른쪽으로 모셔졌다. 이 모든 것은 신에 의존한다는 생각에서 축조. 앞뜰에는 7개의 기둥이 고린도 식 머리장식을 이고 주랑 중간에는 신을 모시는 턱을 만들어 놓았다. 지하에 있는 문으로 도로가 연결된 곳으로 제물을 가지고 들어오게 되어 있다. 제단이 있던 곳은 신전 앞 왼쪽, 오른쪽은 수조로 손과 몸을 씻는 곳이다.
(사진: 벨 신전 전경)
신전 천장에는 조각이 찬란하다. 정면 벽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돌 벽에 구멍이 나있으니 이는 이음새의 쐐기 못 자리이다.
입구에는 위에서 떨어져 내린 대리석 돌 위에 새겨진 정교한 조각품이 3개가 있어 당시의 솜씨를 가늠할 수가 있다. 조각을 살펴보면 가운데는 이 지역의 생명의 나무인 대추나무의 열매, 석류, 파인애플 등의 제수로 쓰는 과일이 조각되어 있고 당시에는 채색이 되었었다.
오른쪽에 놓인 돌에는 달의 신이 좌측에 조각되어 있고 오른편으로는 해의 신의 조각상이 있다. 뒷면에는 좌로 메두사가 조각되어 있고 옆에는 팔미라의 수호신으로 보이는 6개의 신상, 밑으로는 포도송이가 조각되어 있다. 반대편에는 낙타에다 신상을 모시고 오는 것이 조각되어 있다.
b) 개선문: 입구에 거대한 규모로 서있는 문으로 아드리아누스 황제 시 축조 하였다.
c) 목욕탕: 자누비아 여왕의 목욕탕이다.
d) 열주랑: 입구에서부터 주욱 늘어선 기둥은 지면에서부터 중간 높이까지 마모가 심하다. 이것들은 지진이 나서 땅속으로 매몰 되었다가 발굴되어 지상으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 팔미라의 열주 거리 전경)
e) 세관 터: 이곳이 세관 터라는 사실은 이곳에서 발굴되어 러시아 아미르타주 박물관에 보관된 유물에서 확인 되었다.
f) 식당 가: 무너진 기둥과 돌만이 딩굴고 있다.
g) 상수관: 팔미라는 물이 풍부한 지역으로 상수도 관을 돌에 구멍을 뚤어 연결된 것이 남아있어 그 당시에 사정을 알 수 있다.
h) 원형극장: 현재도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이다. 극장 안으로 들어가니 중앙의 무대가 제법 크게 되었으며, 무대 뒷면은 기둥으로 장식되고 여러 조각으로 치장되어 있다. 극장 좌석은 둥글게 원형으로 11열, 위로 좌석 열은 12줄로 되어 있다. 거의 완벽한 형태로 무대기 남아있고 좌석도 바닥만 방석을 놓는다면 손색없는 공연장이다. 옆 좌석은 아래로부터 방사형으로 12줄, 통로가 11개 줄로 1000 여명이 관람할 수 있다.
i) 무덤 지역: 먼저 개방 시간을 감안하여 무덤지역으로 간다. 돌로 쌓은 구조물에 가족 묘가 형성된 곳이다. 이곳은 “에라벨” 가족의 4형제 무덤으로 견고하게 돌로 복원하여 놓아 관광객에게 개방한 곳이다. 내부로 들어가니 많은 관을 보관하게 구조가 되었고, 2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오르니 그곳에도 관을 보관하는 구조물이 좌우로 구분되어 있다.
전체로는 4층 정도 높이로 기단 위에 돌로 쌓았고 내부는 1층에 중앙에 감실(龕室)이 있고, 좌 우로 관을 안치하는 곳이 마련되어 있다. 기둥위로는 조각이 되어있고 가운데는 신을 모시는 제단이 있다. 2층 중간에 밖으로 뚤 린 창이 하나 있어 햇빛이 들어온다. 주변에는 수많은 무덤 군이 산재해 있으나 모두 붕괴되어 가고 있다. 이 것은 1800~2000년 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 된다.
(사진: 팔미라의 무덤지역에 복원된 구조믈)
J) 지하 무덤: 이번에는 지하에 축조된 무덤을 방문한다. 이것은 3 형제의 무덤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 무덤은 세워서 묻는 형식으로 300구 이상을 수용할 수 있다. 관을 세워 넣고 밀봉하게 되어 있다. 이 무덤은 나중에는 다른 가문에 팔려 이용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중앙에는 수직 무덤 위에 프레스코화가, 기둥마다 인물벽화가 그려져 있다. 전면은 3 인의 그림, 좌 우 측면은 3 인씩 총 9 명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입구 앞 기둥에는 전신상이 그려져 있다. 새로 주인이 된 사람의 조각상이 있는데 둘 다 머리가 없다. 출입구는 육중한 돌문이 달려 있다.
오후에는 말룰라로 간다. 도로는 황량한 사막으로 풀이 난 곳에는 그래도 양떼가 점점이 움직인다. 이 길로 130 km를 가면 이락의 바그다드로 간다. 이제 가는 도중 그 이름을 딴 “Bagdad” Café 에서 쉬기로 한다. 이 근처가 예전에는 바다였던 흔적이 나타나고 있다.
Café Bagdad는 여행객의 휴식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막에서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차를 한잔하면서 주변의 생활상을 살펴 볼 수 있는 마을도 있다. 근처 집에서는 닭도 기르고, 아이들 소리도 난다. 들어오라는 여인의 친절이 고맙고, 아이들도 즐거운 표정이다. 물론 1$가 필요한 곳이다. 카페는 비욜라를 타는 아저씨가 주인이다. 안에는 기념품 점으로, 직물제품, 책도 판다.
(사진: 사막의 쉼터- 바그다드 카페)
이곳은 Palmyra 105 km, Damascus 135 km 지점이다. 이번에는 행선지를 바꾸어 다마스커스로 가서 “우미야드 모스크”와 그 일대를 먼저 보기로 한다. 바그다드와 다마스커스 갈림길에 이르니 15:30분이 된다. 이곳에서 차는 오른쪽으로 간다. 다마스커스는 아와즈강과 발달강이 흐르고, 안티 레바논 산맥이 자락을 내리는 곳으로 천혜의 요충지로 도시가 탄생했다. 한 시간이 조금 지나 마침내 다마스커스 중심가로 진입해 재래시장 “하미디야”로 들어간다. 아주 붐비는 시장의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함께한다. 온갖 물건과 사람들로 넘 처 나고 아주 현대화된 곳이다.
3) 모스크 우미야드(Mosque Umayyad): 유네스코 세게 문화유산.
우미야드 모스크는 시장을 벗어나서 아주 번화한 거리에 자리잡고 있다. 이들의 종교가 생활 속에 있다는 의미이다. 17:10분 경 우리는 이 중심 사원을 방문한다. 이 사원은 8 세기 초에 “Umayyid Caliph Walid I” 에 의해 10년간 공사 끝에 완공 되었다. 사원의 디자인은 이전에 있었던 건축물에 신성함을 더헀고 전면은 이스람 건축물의 양식에 따라 메카를 향하였고 기도를 하기 쉽게 하였다.
(사진: 우미야드 모스크 전경)
기도 실은 1893년 대 화재로 목재로 지은 세례 “요한”의 사당은 파괴되었고 그 후에 재건 되었다. 비잔틴 사람들이 특수한 여러색의 모자익으로 출입구 전면의 아케이드와 실내 벽을 장식하였다. 모스크는 4000 평방 미터 이상을 모자익으로 장식하였으나 그 후 화재, 지진 등으로 지금은 면적이 크게 줄어들었으나 화려해 졌다.
신발을 벗고 여성은 반드시 검은 차도르를 입어야 한다. 우리도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니 많은 여인들이 기도하고 있었다. 내부에는 열주가 2 줄로 높다란 천장까지 사원을 바 처 주고, 열주마다 윗부분에 고린도 식 조각이 되어 있고, 그 아래로 기둥 중간에도 화려하게 조각이 되어있다. 천장에는 조밀하게 가로 지르는 받침대에 꽃 모양으로 단청을 하였다.
모스크 내부에 중앙에는 기도하는 사람들이 네모난 구역 안에서 하는데 그 앞으로는 세례 요한의 새로 지은 무덤이 있고 모두 이곳을 향해 절한다.
두 번째로 이번에는 혼자서 시장 안에 있는 “Shamsie Amed Bashaa Mosque” 를 방문한다. 신발장에 신을 벗어 넣고 들어가니 수 많은 사람들이 엄숙한 표정으로 모스크에 들어와 신발장에 신을 넣고, 손을 씻고 조용히 합장하고 수없이 절을 한다. 나도 가운데 앉아 그들의 기도 시간에 홀로 참가해 본다. 저녁 시간이 되니까 기도하려고 들어오는 사람의 숫자가 늘어나 100여 평 정도의 모스크 내부가 꽉 찬다. 이스람의 기도 문화를 조용히 지켜보며 오늘을 성스럽게 마감한다. 드디어 저녁 기도 소리가 울려 퍼지고 모두 일어나 머리를 숙이고 마음속으로 코란을 외운다. 순식간에 사원 안은 기도 소리로 넘치고 나는 그 분위기에 앞도 당해 나오고 만다.
(사진: 샴시 이메드 바샤 모스크 내부)
저녁을 우미야 레스또랑에서 뷔폐식으로 한다. 식당 안에서는 음악에 맞추어 이집트 식 수치춤이 2 번이나 공연된다.
4) 말룰라: 말룰라는 입구를 의미하는 말이다. 이름다운 산간 마을로 벼랑에 붙어 있는 듯이 보이는 집들과 긴 협곡으로 이루어진 마을 이다. 바위 위에 세운 교회와 굴이 많다.
로마 군인들이 이 지역에서 체포한 “태클라”라는 여인을 화형을 시키려 하는데 갑자기 천둥 번개가 내려 처서 집행하지 못하였다. 이 지역에서 기도를 하니 천둥이치고, 산맥이 갈라지고 하여 놀란 나머지 로마 병사가 돌아가고, 그녀는 동굴에서 기도를 하며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녀는 이곳에 묻혀있고 그 자리에서 성수가 솟아나 장애인 등이 먹었다 한다.
(1) 성 세루기스 성당: 로마 군에게 순교 당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700년대에 건축한 성당이다. 올라가는 주변에 무덤토굴이 산재해있다. 이곳은 카도릭 성당이다. 십자군 시대를 거치면서 교황세력이 약해지고 황제의 세력은 커지면서 개신교가 대두하고 카도릭에서도 그리스 정교회가 생겨나면서 여러 곳으로 퍼져 나간다.
안에는 원래의 교회가 있고 태클라 성녀의 초상과 제단이 있고 십자가가 세워졌다. 의자에 앉으니 교회측에서 주기도문을 암송하여 준다. 작은 교회이나 돌로 쌓아 석회를 물리어 깨끗하고 정결하다. 교회 주변은 바위산이 위에 있고 주변은 황량한 모습이다.
(2) 태클라 수녀원: 바위 벽에 무덤이 있고 생수가 나오는 곳에서 물을 마실 수 있다. 본당 안에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프레스코화가 천정과 벽면을 엄숙하게 장식하였고 둥근 모스크형 천정으로 태양빛이 들어온다.
(사진: 바위산을 깎고 지은 태클라 수녀원)
5) 다마스커스의 옛 도시 지역: 우리는 다마스커스의 구 도시를 방문한다. 구 도시의 동쪽 문은 역사가 서린 문이다. 사도 바울이 그곳으로 들어와 이곳에서 전도 하였다 한다.
오른쪽 골목으로 올라가면 “St. Ananias”(성 아나니아스)집이 있고 지하에 교회가 자리잡고 있다. 프란체스코 소속의 천주교회다. “사도 행전”에 아나니아스가 다마스커스 사람으로 기독교인으로서 바울이 박해 받는 것을 구해준다. 그는 훗날 이 도시의 주교가 된다. 그는 시리아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구속되어 사형을 선고 받고, 다마스커스의 성벽 밖에서 돌에 맞아 죽는다.
옆방에는 사도 행전의 내용이 작은 일련의 그림으로 그려져 걸려있고, 교회 밖 벽에는 사도 “바울”의 선교 행적의 지도가 그려져 있다.
이제 다시 교회를 나와 좁은 골목을 벗어나 동문을 나와서 성벽을 따라간다. 이번에는 성벽에 중간에 있는 교회를 찾아간다. 이 교회는 “St. Paul Chapel” 로서 바울이 전도하다가 박해를 피해 성벽 위로 피하다가 바구니를 타고 탈출하였다는 전설이 서려있고 당시에 바구니의 모형이 걸려 있다.
(사진: 사도 바울이 전도한 지중해 연안 지도)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서 시리아의 5000년 전의 옛 유산을 만나본다. 박물관을 선사, 시리아 고대, 이스람 유물, 근대 아랍-시리아 유물 등을 볼 수 있다.
진흑 판으로 네모난 곳에 새겨진 고대 문자 판, 석고로 만든 앉은 여인상, “Shibum” 의 상, 우가리트에서 출토된 BC 13세기의 왕자의 두상 등 이곳 박물관에는 몸 전체가 온전한 상들이 대부분이다. 이제 다마스커스의 순방을 마치고 보스라로 간다.
6) 보스라(Bosra): 1980년 UNESCO에 등재
팔미라 다음으로 평가되는 고대 로마 유적지. AD 70년에 나바티안 족들은 요르단에 페트라를 로마에 넘겨준 후 이곳으로 수도를 정했다. 이때부터 이곳을 보스라라고 칭하고 로마제국의 아라바아 지역의 행정 중심지가 되었다. 2세기부터 다마스커스와 홍해를 연결하는 요충지가 되었고 무역로상에 있는 곳이라 빠르게 성장하였다. 또한 메카로 가는 캐러반들의 체류지 였다. 그 후 1140년에 십자군에 점령당했었으나 이스람이 재탈환 하였다. 나바티아 시대의 유적으로 로마시대의 대 극장, 우마르 모스크, 대규모 저수장 등 이 있다.
a) 대 극장: 로마시대의 극장으로 이스람이 점령한 후 검은 돌의 성으로 둘러쌓아 성벽 안에 있으며 성벽 밖으로는 해자가 있다. 밖에서 보면 대단한 요새이나 실은 극장이다. 아랍 건축의 백미로 원형이 현재까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 이유는 이곳을 점령한 로마 군인들이 요새를 세우면서 극장 좌석 바닥을 흙으로 덮었기 때문이다. 후에 발굴이 이어지면서 흙속에서 37열의 객석 6000여 개의 대극장이 발굴 되었다.
무대 위 전면에는 6개씩 좌우에 열주가 서있고, 또 그 옆으로 6개씩의 열주가 출입구 양쪽에 있고 중앙에는 큰 출입문이 있다. 극장 바닥으로는 반원형의 모자이크가 되어있다. 무대 전면으로는 좌석은 5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젓고 부채 살 모양으로 뻗어있어 위로는 15 열씩 2단의 검은 자연석으로 배치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좌석이 둥글게 배치되어 아주 현대적인 배치모형이다. 위로는 좌석이 3 단계로 되어있고 그 사이로는 가로로 통로가 되어 있다. 맨 위로 오르니 높이가 30 m 내외의 건축물이다. 의자는 검은 돌로, 무대 밑은 반원형의 흰 돌로 바닥이 깔리고 무대 위는 회로 바닥을 발라 편편하게 되었다.
(사진: 보스라 대 극장 전면 무대)
b) 목욕탕 : 2세기에 지은 로마 식 목욕탕으로 남 녀로 구분되어 있고, 앞에 8개, 뒤에도 8개의 열주가 서 있는 돔 형식의 목욕탕이다. 일반 목욕탕으로 모스크 건너에 있는 목욕탕은 개인이 샤워하는 곳이 욕탕 안에 둥글게 둘러 있고 가운데는 욕조가 크게 자리잡았다.
c) 시장 거리 : 100~150 m의 열주가 직선으로 연결된 거리로서 좌 우에 상점이 있었던 곳이다. 바닥은 검은 돌로 깔았으며 기둥과 무너진 기단이 엉클어져 있다.
d) 오마르 모스크: 대형 모스크로 안으로 들어가니 현재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어린이들이 그룹을 지어 신앙 교육을 받고 있으며, 밖에서와는 달리 완벽한 모스크였다.
e) 바실리아 성당: 검은 돌로 쌓은 2 층 규모의 성당이나 방치되어 허물어지고 입구를 폐쇄하였다.
f) 나바티안 문: 제법 큰 규모의 문으로 그 안으로 마을이 있던 곳으로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아 모두 붕괴되어 있다. 문의 양쪽기둥에는 조각이 되어 있고 그 윗 쪽으로는 신을 모시는 곳이 한군데씩 있다.
(사진: 나바티안 마을로 들어가는 문)
g) 물 저장소 : 200ⅹ200 m정도의 정방형으로 아주 큰 규모이다. 이로 미루어 당시의 이곳 인구 규모가 크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지금도 이 근처에는 주민이 살고 있다.
이제 시리아의 유적 답사를 끝내고 요르단으로 간다. 요르단 국경으로 가는 길은 농토가 넓고 끝이 안 보인다. 양들이 풀을 뜯고 오리브 밭, 밀밭이 계속된다. 17:05분이 되어서야 시리아 검문소통과. 다시 요르단 세관으로 간다. 오후 6시경 세관을 통과 요르단으로 입국하니 벌 써
팔미라 유적지
(사진: 벨 신전 열주의 조각 모습)
(사진: 신전에서 떨어져 내린 기둥 머리의 조각)
(사진: 벨 신전 내부 벽- 돌 사이에 쐐기를 박었던 자국)
(사진: 테트라 필론 신전 전경)
(사진: 열주기둥-중간에 신을 모시는 턱의 모습)
(사진: 돌에다 수로를 판 모습)
(사진: 원형 극장의 질서 정연한 좌석)
(사진: 지하 무덤 내부의 모습)
(사진: 바그다드 카페 주변 풍경)
(사진: 사막의 낙타들)
'김한종 여행기 > 중동문화 유적답사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5) Israel-Jerusalem (0) | 2010.04.28 |
---|---|
4) Jordan-Amman (0) | 2010.04.27 |
2) Lebanon-Beirut (0) | 2010.04.27 |
1). Dubai-The United of Arab Emirates (0) | 2010.04.26 |
중동 문화유적 답사기 (0) | 2010.04.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