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4월23일
대학교 동창들과 봄나들이를 강릉으로
대학후배들이 경영하는 대화제약을 방문하고
벗꽃이 활짝핀 벗꽃터널길을 지나
오죽헌으로 경포대로 선교장으로
오죽헌에는 오래된 배롱나무 목백일홍이 아직은 꽃도 잎도 나오지 않았지만
꽃이 활짝피는 여름에 다시 한번 찾고싶은 곳이다.
강릉에 있는 동창도 만나고 즐거운 하루다.
종 목 | 보물 제16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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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 강릉오죽헌(江陵烏竹軒) |
분 류 |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인물기념/ 탄생지 |
수량/면적 | 1동 |
지정(등록)일 | 1963.01.21 |
소 재 지 | 강원 강릉시 죽헌동 201 |
시 대 | 조선시대 |
소유자(소유단체) | 강릉시 |
관리자(관리단체) | 강릉시 |
일반설명 | 전문설명 신사임당(1504∼1551)과 율곡 이이(1536∼1584)가 태어난 유서 깊은 집이다.
사임당 신씨는 뛰어난 여류 예술가였고 현모양처의 본보기가 되는 인물이며, 신씨의 아들 율곡 이이는 조선시대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는 훌륭한 학자였다. 오죽헌은 조선시대 문신이었던 최치운(1390∼1440)이 지었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앞면에서 보면 왼쪽 2칸은 대청마루로 사용했고, 오른쪽 1칸은 온돌방으로 만들었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부재들도 새부리 모양으로 빠져나오는 간결한 형태로 짜은 익공계 양식으로 꾸몄다. 우리나라 주택 건축물 중에서 비교적 오래된 건물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며, 유서 깊은 역사를 가진 건물이다. 오죽헌(烏竹軒)은 우리나라 어머니의 사표(師表)가 되는 신사임당(申師任堂)이 태어나고 또한 위대한 경세가(經世家)요 철인(哲人)이며 정치가(政治家)로서 구국애족(救國愛族)의 대선각자(大先覺者)인 율곡(栗谷) 이이(李珥)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사임당(師任堂) 신씨(申氏)(1504∼1551)는 성품이 어질고 착하며 효성이 지극하고 지조(志操)가 높았다. 어려서부터 경문(經文)을 익히고 문장(文章), 침공(針工), 자수(刺繡)뿐만 아니라 시문(詩文), 그림에도 뛰어나 우리나라 제일의 여류(女流) 예술가(藝術家)라 할 수 있으며 자녀교육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 현모양처(賢母良妻)의 귀감이 되고 있다. 율곡 이이(1536∼1584) 선생은 어려서 어머니에게 학문을 배워 13세에 진사초시(進士初試)에 합격하고 명종(明宗) 19년(1564) 생원시(生員試),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모두 장원급제(壯元及第)한 후 황해도(黃海道) 관찰사(觀察使), 대사헌(大司憲) 등과 이조(吏曹)·형조(刑曹)·병조(兵曹)의 판서(判書)를 역임하였다. 조선(朝鮮) 유학계(儒學界) 에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과 쌍벽을 이루는 대학자(大學者)로서 기호학파(畿湖學派)를 형성했고 붕당(朋黨)의 조정(調停), 10만(十萬) 군대(軍隊)의 양병(養兵)을 주장하였으며 대동법(大同法), 사창(社倉)의 실시에 노력하였다. 글씨, 그림에도 뛰어났으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문묘(文廟)에 종사(從祀)되었고 선조(宣祖)의 묘정(廟庭)에 배향(配享)되었으며 파주(坡州)의 자운서원(紫雲書院), 강릉(江陵)의 송담서원(松潭書院) 등 20여개 서원에 제향(祭享)되고 있다. 오죽헌은 강릉 유현(儒賢)인 최치운(崔致雲)(1390∼1440)의 창건(創建)으로 아들 응현(應賢)은 사위 이사온(李思溫)에게 물려주고 이사온은 다시 그의 사위 신명화(申命和)(사임당의 부친)에게,신명화는 그의 사위 권화(權和)에게 물려 주면서 그 후손(後孫)들이 관리하여 오던 중 1975년 오죽헌 정화사업(淨化事業)으로 문성사(文成祠), 기념관 등이 건립되어 현재와 같은 면모를 갖추고 선생의 위업과 교훈을 길이 추앙(追仰)하게 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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