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엘로라 석굴(Ellora Caves Temples): 세계문화유산
인도를 대표하는 문화재를 들라면 엘로라 석굴, 아잔타 석굴과 타지마할을 꼽을 것이다.
인도 중부의 마하라쉬트라주의 인도 예술의 보고인 엘로라와 아잔타가 자리잡고 있다.
엘로라 석굴은 규모와 방대한 조각으로 인해 방문객은 입을 다물 수 없다. 여기서 북쪽으로 100 km 떨어진 곳에 아잔타 석굴은 화려하고 정교한 벽화로 그 명성을 떨첫으나 발굴 당시에 보존 처리의 미숙으로 화려한 벽화는 생명을 상실해 가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아잔타 석굴은 에로라 보다 먼저 조성되었고 당시에 석공들이 엘로라로 이동하여 다시 석굴을 조성하면서 이 후 400여 년 간에 걸친 석굴 조성공사가 진행 되었다 한다.
엘로라의 석굴 사원 군은 6~8세기에 “Gupta” 왕조시대에 차란다리(Charandari) 바위 언덕에 조성된 34개에 이르는 방대한 것이다. 화강암, 편마암의 단단한 석질의 수천 톤의 암석을 파내고, 깎아 내고 연마하고 그 위에 아름다운 조각을 한 것은 인도인들의 신앙의 결집이자 조각과 건축의 영원한 금자탑이다.
이 사원군은 불교, 힌두교, 자인교의 시대별로, 종교 별로 나누어져 있어 인도 종교의 다양성에 그 특별한 의미를 부여 할 수 있다. 편의 상 부여한 순서대로 한다면 1~12번 까지의 석굴은 불교 시대의 석굴이다. Bijapur의 Badami의 차루키아 왕조 시대인 A.D 600~700 년 사이에 조성 되었다. 다음으로는 13~29번 사이에 16개의 석굴은 힌두교의 석굴로 A.D 700~800년 사이에 조성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30~34번 까지 5개의 석굴은 자인교의 석굴로 A.D 800~1000 년 사이에 “Rashtrakuta” 왕조시대에 조성된 것이다.
무려 500여 년간 종교를 초월하여 이런 거대한 석굴을 조성 하였다는 사실은 종교분쟁이 상존 하던 시대에 인도인의 철학적 관용이 넘치는 특이한 현상이다.
당시에 석공들이 현무암 암벽을 쪼아서 엄청난 석재를 밖으로 배출 하면서 기둥부터 벽면까지 이르는 모든 조각들을 정교하게 하면서 원형의 돌을 하나도 훼손 하지 않고 조성하였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도 두고두고 수수께끼에 머무를 것이다.
그렇다면 인도인들은 왜 이런 바위굴을 파고 석굴사원을 조성 하였나? 하는 의문이 첫째다.
인도의 엘로라, 아잔타 석굴, 중국 돈황의 막고굴, 배제크리크 석굴, 용문 석굴, 운강 석굴, 아프간의 바미안 석굴 등 주로 내륙 지방의 바가 안 오는 건조한 기후를 갖은 곳에서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토록 어려운 석굴사원을 조성 하였을까?
이는 붓다가 해탈 전후에 동굴에서 명상하고 그 후에 그의 제자들이 동굴에서 수행하고 명상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수행자들에게는 석굴이 기후변화에 무관하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듯하고 금욕생활과 명상하기에 좋은 장소로 생각하고 한번 조성하면 영속적인 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석굴 조성에 드는 그 엄청난 경비와 장인들의 비용을 어떻게 조달하였을까? 의문은 꼬리를 문다.
석굴이 조성된 지역을 관찰하여 보면 당시에 실크로드를 중심으로 한 교역로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인도에는 어떤가? 인도는 이 석굴 사원 지역이 불교의 전파과정에서 이루어 졌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다양한 종교의 석굴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들 석굴이 처음에는 아잔타 석굴처럼 다 불교사원과 승원으로 되었다가 점차 종교가 다양화 되으로서 힌두교, 자인교 등의 사원으로 변화해 간 것으로 해석 할 수 가 있다.
그러면 석굴 조성에 드는 비용은 누가 부담 했을까? 실크로드의 석굴은 불교전파의 통로로 당시 대규모 대상들이 비용을 부담했다는 설이 있고 그들이 원거리 상거래를 위해 안전을 기원하고 석굴에 묵을 수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 된다.
그 후로 인도는 석굴 조성에 지역관리나 유지들이 비용을 부담하였다는 것이 석굴에 새겨진 곳도 있으니 유추가 가능하다.
인도 서부 데칸 고원의 마하라슈트라 주에만도 45개의 석굴 사원 군이 있다. 이곳에 있는 1000여 개의 석굴은 어떻게 설명이 가능 할까? 이 석굴의 80%가 불교석굴이다. 이 지역의 석굴 조성은 BC 2세기 부터 A.D 7~10 세기 까지 이어진다.
당시는 인도 불교의 최 전성기다. 이때 아쇼카왕(B.C 273~232년)이 남 인도에서 불교 전파를 위해 석굴을 조성 하였다 한다. 돌로 된 석굴은 기후변화에 무관하고 나무보다 영구적인 것이기에 확산되었다. 이런 경향이 7세기에 이르기 까지 계속되다가 인도는 불교에서 힌두교로 전환되면서 힌두교 석굴 사원으로 변하면서, 또 교역로의 역할이 쇠퇴 하면서 석굴 조성은 막을 내리고 세인에게서 잊혀진 곳으로 숲 속에 무치게 되었다.
이제 석굴 조성의 기원과 과정을 살펴 보았으니 석굴 하나하나에 다가가 본다.
먼저 석굴에는 사원 역할을 하는 “차이티아”(Chaityas-신전=본당=Chapel)와 “비하라”(Viharas- 승원=수도원, 기도처)의 두 가지로 구분 된다.
1) 불교 석굴 사원(The Buddhist Caves(1~12)
Cave1: 단순한 비하라 석굴로 기둥만 있고 조각이 없다. 남쪽으로 4개의 방이 있고 동쪽으로 주거 목적으로 승려들이 쓰던 13㎡의 홀이 있고, 그 안에는 아무런 것도 조각되어 있지 않다.
Cave 2: 입구가 계단으로 되어있고 수도를 위한 14.5㎡ 홀이 있고 12 개의 기둥이 바치고 있다. 동굴 입구에 창문 옆에 수호신이 서 있다. 뒤에 신전에는 3 m 높이의 붓다가 앉아있고 좌우로 두 명의 제자가 서 있다.
Cave 3: 정방형의 가운데에 붓다가 연꽃 위에 앉아 있으며 둘레 주위 안에는 12 개의 명상 실이 있다.
Cave 4: 이 석굴은 2층으로 되었으나 보존 상태가 나쁘다. 가운데 방에는 보리수 나무아래 앉아 있는 붓다(Buddha) 가 조각되어 있다.
Cave 5: 엘로라 석굴 가운데 내부가 가장 큰 곳. Maharwada 로서 알려진 이 석굴 은 17.6 mⅹ36 m 로 추정되는 직 사각형의 홀이 있고 단층으로 되어 있다. 24개나 되는 큰 기둥이 있고 홀 둘레로는 20개의 석실 방이 있다. 안쪽으로 중앙 맨 뒤에 신전에는 큰 타라(Tara)관세음 붓다 상이 돌로 쌓은 2단 위의 신전에 서 있고 좌 우로 2 명의 마하마유리(Mahamayuri) 여신상이 조각되어 있다. 마하마유리 여신은 지식과 지혜의 여신이다.
Cave 6: 이 석굴은 2개의 조그만 방과 여러 개의 조각이 되어 있는 정방형의 홀이 있다. 지성소의 입구에는 커다란 조각으로 된 신이 지키고 있다. 또한 예기치 않은 “사라스와티”(Saraswati) 라는 지혜의 힌두 여신상이 있다.
Cave 7: 6번 석굴 아래에 조성된 곳으로 12 개의 미완성 된 석실 방이 있고 붓다가 하나 있다.
Cave 8: 석굴 안에 신전이 있고 홀로 연결 되어 지는 통로가 있다. 아무런 조각이나 신상이 없는 곳이다.
Cave 9: 이 석굴은 6번 굴의 통로를 통해 들어간다. 석실 홀 안으로는 조그만 신전이 있고 밖으로 발코니 형태의 휴식처가 있다. 전면에는 난쟁이 상이 조각되어 있다. 이 곳에는 뱀, 칼, 코끼리, 불의 위협으로부터 “타라” 여신을 구하는 조각이 관심 거리다.
Cave 10: 이 석굴은 불교 석굴 중에서 유일 하게 차이티야식 신전을 가지고 있다.
이 석굴은 이상하게 목공(Carpenter) 의 신전이라 불리며, 수도처가 아래에 있고 승려들의 거처로 여겨지고 있다. 전면에는 계단으로 올라오는 넓은 공간이 있다. 홀 주위의 석실 방에 네모난 기둥이 있고 기둥 아래에는 사자가 조각되어 있다. 뒤쪽으로는 큰 명상 실 이 있고 외부로는 목조 재료가 사용된 흔적이 있다.
중앙의 석실 방은 26 mⅹ13 m나 되어 넓은 편이고 높이도 10 m나 된다. 이를 떠받치는 돌기둥이 28개나 된다. 기둥 마다 병모양, 잎 모양의 조각이 있고 가운데에는 설법하는 붓다가 4.5 m높이로 앉아있는 자세로 조각되어 있는 화려한 장식의 Stupa(탑)가 있다. 천정은 8각형의 기둥과 늑재를 댄 것으로 이루어 졌다. 난간을 바치는 기둥과 3부분 으로된 창문이 특징이다.
나부의 계단으로 올라가는 윗 층에는 좌 우로 조그만 신전이 미완성으로 남아있다.
입구에 위에 있는 둥근 창은 붓다의 얼굴에 영원한 영묘한 영기(靈氣)를 불어 넣어주는 역할을 한다.
Cave 11: 이 석굴은 1876년에 지하 굴이 발견 되으로서 3층 석굴로 판명 되었다. 지하층은 신전이 있는 바깥 공간이 있고 그 뒤로 2개의 작은 석굴이 있다. 중간 층에는 앞에는 8개의 기둥이 있고, 그 뒤로는 5개의 작은 석실이 있다. 중앙에 있는 3개의 석실은 완성되었고 장식이 되어있다. 맨 윗 층은 긴 회랑으로 이어지는 문이 있고, 뒤쪽으로는 붓다의 신전이 있다. “Durga” 와 “Ganesh” 여신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석굴은 뒤에 힌두교에서 사용하였다고 추측 된다.
Cave 12: 3 층으로 된 석굴로서 아래 층에는 돌로 된 잠을 잘 수 있는 의자가 있는 석실이 있다. 2층 석실은 35 mⅹ21 m의 상당히 큰 홀이다. 이 석굴의 3층은 아주 중요한 곳이다. 붓다의 14개의 이미지가 조각되어 있다. 그 중에 7개는 불법을 전수하고 듣는 태도를 가르치고 있고, 다른 7개는 명상의 자세를 가르치고 있다. 7개의 설법하는 붓다의 자세는 붓다가 이미 5000년 마다 이 지상에 왔다는 상징이고, 이미 7번이나 환생했다는 상징을 보여준다.
2) 힌두 석굴 사원 (Hindu Caves : 13~29)
7~9 세기에 조성된 17개의 석굴은 차이타이와 비하라 사원의 핵심으로 이 힌두 석굴 사원은 모두 “Shiva” 신에게 바처 진 것이다. 시바신은 죽음과 시간의 무상함을 표시하는 여러 조각상이 주를 이루었다. 시바신은 또 “Natraja” 라는 춤의 여신으로 추정되는 조각으로 변신 하였다. 또 비쉬뉴 신과 마헤쉬 신이 여러 형상으로 표현 되었다.
Cave 13: 이 석굴에는 특별하게 보이는 것이 없으니 아마 수도승 들의 휴식처로 생각된다. 수호자들이 입구에 있고 벽에는 뒤르가 여신이 새겨 있다.
Cave14: 이 석굴은 7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단층으로 되었다. 원래는 비하라 양식으로 되었으나 쉬바신을 모시는 힌두 사원으로 바뀌었다. 입구에는 강가 여신과 야무나 여신의 조각상이 있다.
벽에는 탄타바(파괴)춤을 추는 시바, 물소로 변한 악마 “Mahisha”와 싸우는 “Durga”(뒤르가) 여신이 벽에 파넬 형태로 새겨져 있고, 그 안에는 “Vishnu, Shiva, Laksmi, Parvati” 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Cave 15: 이 석굴은 “Avatara” 로 알려졌고 8세기 중엽에 조성 되었다. 초기 불교 사원인 비하라 형태로 되었으나 그 후에 힌두교 사원으로 사용되어 시바 신을 모시고 있다.
2층으로 되었고 1층은 단순한 석굴로 되었고 2층에는 신화를 표현하는 조각으로 가득차 있다. 왼쪽 벽의 전면으로부터 시계 방향으로 시바신이 “Andhaka” 를 죽이고, 시바와 파르바티가 결혼하고, 춤추는 장면, “Kailash”(티베트의 성산) 산을 흔드는 “Ravana”(악의 신) 로 부 터 시바신이 나타나 구출하는 장면이 조각되어 있다.
전차를 타고 뱀 위에 있는 크리슈나, 비쉬뉴 신에게 덤비는 악귀를 몰아내는 장면 등이 있다. 또 반인 반수(伴人半數)의 “Narasimha” 조각상도 유명하다. 이곳 에는”Rashtrakuta” 왕의 치적이 “Pali” 언어로 29행이 각인되어 있다.
Cave 16: 이 사원은 티베트의 카알리쉬 산(불교의 성산으로 수미산<須彌山>이라고도 하며, 6717 m로 우주의 중심으로 여겨지며 힌두교에서도 쉬바신의 거처로 여긴다) 을 재현하여 거대한 산밑에 하나의 바위 덩어리를 깎아서 만든 사원으로 세계 최대의 석조 사원으로 손꼽히고 있다.”
“Rashtrakuta” 왕조의 “Krishna Ⅰ세”(A.D 757~783년) 때에 깊이 86 m, 폭 46m, 높이 35 m 대규모로 조성 되었다. 100년이 넘는 공사로 22만 톤의 돌을 깎아 만든 것으로 천여 명의 장인들을 동원하였다 하며 부조 하나하나가 걸작으로 평가 된다.
이곳의 돌을 깎는 일은 위로부터 시작하여 아래로 내려 오는 방식이었다. 입구의 문, 거대한 기둥과 신전은 통으로 된 돌을 깎아 만든 것이다. 주 신전은 이층에 깎아서 만들고 아래 층은 아래에 또다시 만들었다. 카일 리쉬 산의 눈 덥힌 정상을 본 따서 맨 위 탑에는 흰 석고를 바르기도 했다.
이 사원은 드라비디언 건축 양식으로 사원 입구도 길이가 50 m, 폭이 33 m, 중앙 사원 양쪽에 탑이 29 m의 높이로 솟아있고 거대한 코끼리가 그 앞에 지키고 있다.
Ganga와 Yamuna 여신이 문 기둥에 새겨져 있다. 입구의 4개의 기둥에는 풍요와 번영의 상징으로 인도의 꽃병과 꽃잎을 부조 하였다. 기둥에 양쪽에는 부의 신 “Kubera”의 이미지가 있고 행운의 상징인 연꽃이 새겨져 있다.
왼쪽에는 “Ganesh” 신, 코끼리 머리 위의 쉬바 신의 아들 상, 악마와 싸우는 쉬바의 아내인 “Durga” 신상이 압권이다. 입구의 기둥 뒤의 벽에는 세 강의 여신인 “Ganga, Yamuna, Sarasvati” 가 부조 되어 있다. 이 신들은 강가는 악어를 타고, 야무나는 거북을 타고, 사라스바티는 코끼리를 탄 형상이다. 이층에 있는 신전에는 시바와 비쉬뉴 신을 조각하여 놓았다.
옆으로 돌아가면 벽면에 좌로는 마차들이 부조되었고 채색이 되었으나 바래 버렸고, “Mahabharata” 의 이야기가 7층 높이로 조각 되었다. 뒤로 돌아가면 중심부의 탑 모양은 히말랴야 산을 상징한다. 그 주위로는 코끼리가 바치고 있고 맨 위의 큰 탑 주위로는 작은 탑들이 둘러 싸고 있다.
중앙의 신전 건축물 둘레에 바위를 깎아 만든 회랑의 기둥에도 칸마다 불상이 조각 되었으니 기둥만 3 면에 36개가 회랑으로 되었으며, 그 사이 사이에 불상 조각이 모두 대칭을 이룬다. “마하바라타” 이야기와 대칭을 이루는 곳에 “라마야나” 이야기를 역시 7층으로 조각하였으니 그 예술적 가치는 무엇으로도 평가 할 수 없으리라.
Cave 17: 이 석굴에는 거대한 기둥이 있고 이 기둥에는 “Brahma,Vishnu, Ganesh” 등의 신들이 조각되어 있고 신전에는 “Shiva-Linga”가 있다.
Cave 18: 이 석굴에도 4개의 기둥이 있고 신전에는 17 굴과 같이 “Shiva-Linga” 상이 있다.
Cave 19: 이 석굴에도 신전에 “ Shiva-Linga” 상이 있다.
Cave 20: 이 석굴을 향해 몇 계단을 올라가면 거대한 수문장이 서있고, 신전에는 “ Shiva-Linga” 상이 있고 그 옆으로 “Ganesh” 신이 조각되어 있다.
Cave 21: 이 석굴은 전면에 아름다운 여인이 새겨 져 있고 에로라 석굴 초기인 6세기 초로 생각되며 아주 세련된 조각이 넘친다. 좀 높은 기단 위에 “Nandi” 상이 있고 그 옆으로 강의 여신인 “Ganga” 와 “Yamuna” 신이 조각되어 있다. 인간의 모습으로 악어 등에 탄 강가신의 자세는 아주 세련되어 있고 바위를 절단하여 깎아내는 기술의 절정을 보여준다. 또 다른 신들 앞에서 시바와 파르바티의 결혼 장면이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브라흐마, 두르가, 카일리쉬 산을 뒤흔드는 악마의 신 “Ravana” 신 등이 춤추는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Cave 22: Shiva-Linga 신의 푸른 빛깔의 상이 있고, 손상된 “Nandi” 신이 자유롭게 서있는 조그만 신전이 있다.
Cave 23: 이 석굴의 특징은 “ Bramha, Vishnu, Mahesh” 의 3신의 결합된 조각이 있고 이 상은 “Trimurthi” 로 알려져 있다.
Cave 24: 이 석굴에는 조그만 4개의 Shiva상을 모신 사원으로 되었다.
Cave 25: 이 석굴에는 전면에 아름답게 조각된 기둥이 기단 위에 넓게 저리 잡고 있다. 힌두교의 부의 여신 “Kubera” 신이 오른쪽에 서 있다. 쉬바신은 없고 천정에는 7마리의 말이 끄는 태양신의 마차가 새겨져 있다.
Cave 26: 이 석굴에는 여섯 개의 기둥이 있고 두 명의 여성을 거느린 “Shiva-linga” 가 있다.
Cave 27: 이 석굴에는 왼쪽에 브라흐마, 비쉬뉴, 마헤쉬 여신이 있고, 다른 쪽에는 “Balarama” 신의 조각이 있다. 또한 뱀을 감고 있는 비쉬뉴 신의 조각이 있다.
Cave 28. 이 석굴은 폭포 밑에 있는 것으로, 신전에는 “Shiva-Linga” 가 있고 홀에는 8개의 팔이 달린 “Durga” 여신이 조각되어 있다.
Cave 29: 이 석굴은 폭이 50 m, 높이가 5 m가 되며, 뭄바이의 “엘레판타” 섬의 동굴과 유사하다. 석굴 입구 3곳이 있는데, 앉아있는 사자가 지키고 있는것이 조각되어 있다. 규모가 커서 제 2의 “Kailash” 석굴로서 비쉬뉴의 7번 째 화신인 “Sita” 가 목욕하던 곳이다.
태양빛이 잘 들어오게 되었고 26 개나 되는 주랑에는 악마를 죽이는 시바신과 거북을 타고 가는 “야무나” 여신도 조각되어 있다.
1) 자인교 사원(Jain Caves)
9~11 세기에 조성되었다. 원래의 석굴 군에서 2 km 북쪽에 바위산 밑에 조성 되었다.
자인교는 불교보다 더 오래된 교파다. 자인교는 모든 욕망과 나약함을 물리치고 무지함과 유혹을 멀리 하는 것이다. 이곳 석굴 안의 조각장식이 너무 복잡하여 단단한 돌이 불투명한 무늬처럼 보인다.
Cave 30: 이 석굴은 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작은 카일리쉬 사원으로 불린다.
홀 한 가운데에 기둥이 서 있고 천정에는 연꽃이 조각되어 있다.
Cave 31: 이 석굴에는 “ Mahavira” 와 다른 신상이 조각되어 있다.
Cave 32: 9세기 경에 조성된 것으로 자인교 사원 중에 가장 우수하다. “Indra Sabha”라는 곳으로 이는 인디라 신의 궁전이란 뜻이다. 가운데 피라미드 형태의 신전이 있고, 기둥 벽에는 코끼리, 사자 등이 새겨져 있다. 2층으로 되었으며 아래 층은 조금 미비하나 웟 층은 아주 섬세한 조각이 들어차 있다. 2 층에 모셔진 신상은 자인교의 창시자로서 알려진 “마하비라”(Mahavira) 라 한다. 벽면에는 3명의 마탕가(Matanga) 신이 부조로 새겨져 있고, 천정에는 가운데에 큰 연꽃이 새겨져 있다. 이 굴에는 벽화가 눈길은 끈다. 여인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그려져 있다.
Cave 33: 32번 석굴과 비슷하며 5개의 신전이 있으며, 각기 조각으로 되어 있고 “ Mahaveer”와 “Matanga” 모습이 2단으로 조각되어 있다.
Cave 34: 자인교의 석굴 가운데 내부 곳곳에 조각이 짜임세 있게 들어차 있어 가장 우수한 조각으로 보인다.
Cave 35: 자인교 사원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곳으로 5m 높이의 “Parashwanath” 신상이 조각되어 있다.
엘로라 석굴 사원 순례를 마치고 휴식에 들어가 한동안 사원을 집중적으로 본 것을 정리 한다.
휴식 후 17:00 시경에 다시 나와 이번에는 작은 “Taj Mahal”을 찾아 나선다. 데칸 고원에 무갈 제국의 건축 양식을 본 딴 것이다.
이 아름다운 무덤은 이곳에서는 “Bibi-Ka-Maqbara”라 부른다. 황제 “Aurangazeb” 의 아들인 “Azamshah” 에 의해 그의 어머니 “Dilras Banu Begum” 을 위해 1650~57년 사이에 지은 것이다. 무덤입구에 새겨진 곳에는 이 무덤은 아그라의 타지 마할을 모방하여 세운 것이라 쓰여 있다.
이 건축 물은 458 mⅹ275 m 되는 지역에 지어 졌고 둘레에는 대칭으로 정원이 이루어 졌고, 도로, 수로, 연못이 갖추어져 균형을 이루었다.
묘지는 네 귀퉁이마다 탑이 서 있고 높은 단위에 자리 잡았다. 건축물의 상, 하는 흰 대리석으로 아름다운 조각이 가득하게 차있다. 중간 부분은 석고로 발라 졌다.
아래 중앙의 무덤은 정교하게 대리석으로 디자인 되었다. 무덤 둘레로는 중앙에 돔이 있고, 꽃으로 장식된 내부의 벽은 아그라의 무덤처럼 섬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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