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종 여행기/인도 여행기2

인도 여행기-(2)-9

땡큐 이영옥 2011. 2. 14. 19:58

 

9.아잔타 석굴(Ajanta Cave Temples):세계문화 유산

 인도 불교 미술의 금자탑이다.  BC 2세기~3 세기에 걸처 사타바하나 왕조 시대에 조성된 전기 석굴 군과, 5~7세기에 굽타 왕조가 번영 하면서 조성 된 후기 석굴 군으로 남방 불교와 북방 불교의 특징이 있다.

 

즉 기원전의 소승 불교 시대에는 불상이 없고 대신 부처를 상징하는 대상을 두고 예불을 올렸으며, 그 중에서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Stupa ()가 주였으며 이러한 사원을 차이티아( Chaityas) 라고 하며 이런 석굴에는 신전이나 지성소(법당) 가 있다.

반면에 승려들이 거주하거나 생활을 하는 석굴을 비하라(Viharas) 라 하였다. 아잔타에 조성된 30 개의 석굴에는 전기에 2, 후기에 3개 등 5개만이 차이티야 사원이다. 다른 것은 모두 비하라 사원이다.

 전기 석굴 사원은 소승 불교 사원으로 9,10번 사원이 차이티야이고, 8, 12, 13, 30 4개는 비하라 사원이다.

후기 석굴 사원은 대승불교 사원으로 주로 불상이 모셔져 있고 화려한 프레스코 벽화와 조각장식이 등장 한다. 벽화에는 붓다의 일대기, 전생의 이야기, 해탈 후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아잔타의 석굴의 벽화는 프레스코화 보다는 단순한 Tempera기법이다. 거치른 표면을 진흙으로 두껍게 바르고 쌀겨를 섞은 소똥으로 잘 발라 마무리 한다. 그리고 표면을 매끄럽게 칠한다. 그림에 쓰는 색 갈은 자연물질에서 채취한 yellow, red, blue, black, green 5색을 주로 사용 했다. 그림은 주로 벽과 천정에 두 곳에다 그렸다.

천정에 그림은 비하라 승원에서는 꽃, 식물, 과일, , 동물 등이 주였으며, 벽화는 주로 붓다의 전생과 해탈 후의 설법모습 등 그의 생애를 묘사 하고 있다.

 그 중에 19, 26, 29 번 이 차이티야 사원이고, 나머지 1,2,3,4,5,6,7,16,17,20, 21,22,23, 24, 27, 28, 등 나머지 16개 굴은 비하라 사원이다.

이 석굴 군은 영국군 주둔군 지휘관 장교인 John Smith1819년 사냥을 나갔다가 우연히 발견하면서 1100 년간이나 밀림에 묻혀졌던 것이 세상에 들어 나게 되었다.  당시에는 벽화의 보존 상태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화려한 색채를 간직한 상태였으나 그 후 사람들이 접근하고 개방이 되면서 점차 훼손되어 갔다.

인디야드리(Indyadri)산 언덕 중턱, 와고라(Waghora) 강 위에 말발굽 형태의 암반 속에  조성된 석굴은 모두 28개로 이루어 졌으며  그 중 1, 2, 4, 16, 17, 19, 29  7개의 굴이  가치가 큰 석굴로 평가 되고 있다.

 

우리는 어제 에로라 석굴을 탐사하고 오늘은 08:50분 아잔타로 출발한다. 평탄하고 좋은 길로 가다가 산속 숲으로 들어 가면서 도로가 좁아지고, 사고차의 처리로 늦어진다. 도로가에는 원숭이가 내려와 버스를 처다 보고 무리로 이동한다. 도로는 공사 현장으로 흙을 실어 나르는 트럭들이 줄을 이어 오고 붉은 먼지를 일으키면서 도로를 막는다. 시간이 지체 되면서 간신히 차량들의 꼬리를 벗어나면서 석굴 입구 주차장에 이른다. 상가를 통과 하면서 수 많은 호객꾼들이 모여 들어 가기도 어렵다. 

 간신히 사람들을 벗어나 바위 언덕을 파서 올라가는 길을 돌길로 다듬은 굽은 길을 따라 올라가니 입구에서 모두 신발을 벗고 입장하여야 한다.

 바위 석벽 안에 파 들어 간 석굴, 그 아래 계곡, 그 위에 전망대가 자연과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제 석굴 하나하나를 살펴본다.

Cave 1:  A.D 500 년대에 조성된 비하라 석굴이다. 인도의 바위석굴 가운데 가장 뛰어난 곳이다. 기둥마다 붓다와 그의 수행자들의 아름다운 조각으로 가득 차 있고  벽에는 아름다운 벽화로 가득하다.

 왼쪽 회랑에 Mahajannaka Jataka(마하자나카 본생) 이 그려져 있다. 붓다는 마하자나카 왕자로 탄생하였다.  왕자와 아내인 Sivali가 궁전에 있고 왕자가 출가를 하는 장면은 아주 정교한 그림이다. 왕비는 왕자를 위해 춤을 추는 여성들을 바라보며 아쉬워 한다. 왕자는 코끼리를 타고 왕궁을 떠나 출가하는 모습이 영원으로 향하는 자세다.

 천정에는 여러 동물들의 모습과 꽃들이 그려져 있고 장난치는 원숭이의 모습에 이를   자비로 받아 들이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Bodhisattva Padmapani(지연화 보살)이 연꽃을 들고 있는 모습은 아주 기품있고 우아한 여성미를 표현하여 눈길을 끈다.

 

이 석굴에서 또 눈길을 끄는 벽화는 관능적이고 풍만한 여인들의 모습으로 벽면을 가득채운 프레스코화 등이다.  이 굴은 벽화가 유명하지만 이제는 많이 훼손되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붓다의 얼굴이 빛의 투영에 따라 여러 가지 표정으로 보이는 것도 이색적이다.

 Cave 2: 이 석굴은 바하라굴로 A.D 600년 전후에 조성 되었다. 회랑에 그림이 있으며, 붓다의 탄생 설화를 표현한 것이다. 붓다는 공중으로 날아가 무리 앞에 나타나고 연꽃 위에 앉아서 명상하는 그림이 있다.  기둥과 천정에 새겨진 다채로운 연꽃이 이름답다.

특히 지성소(감실)에는 붓다의 조각상이 있고 그 옆으로 그를 수호하는 제자가 좌 우에 서 있다.

 Cave 3:  2번 굴 위에 있어서 함께 보며 중요한 것이 없는 굴이다.

 Cave 4:  A.D 600년 전후하여 조성된 비하라 굴이다.  이 굴은 아잔타에서 가장크고 28개의 기둥으로 지탱하고 있다. 벽화가 아름답고 부조로돤 조각도 수준급이다. 인간의 근심 거리를 8가지로 표현, 즉 사자, , 코끼리, 악마, , 약탈자, 쇠사슬 등으로 표현 했으며 이로부터 구원받는 Bodhisatta 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Cave 5:  A.D 600년 경에 조성된 비하라 굴이다. 굴은 입구 외에는 미완성인체로 남아 있다. 그러나 Salbhanjkas 라 부르는 아름다운 여인이 문 위에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Cave 6:  이 석굴은 후기 비하라 굴로 역시 A.D 600년 전후에 조성 되었다. 2층으로 되었으며, 16개의 네모난 기둥이 네 줄로 서있어 지탱하고 있다. 기둥을 두드리면 은은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신기한 곳이다. 붓다 상이 안치되어 있다.

 Cave 7: 후기 비하라 굴로서 A.D 400년 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전에는 붓다의 신상과 그의 수행자들이 새겨져 있다. 연꽃 위에 앉아 있는 많은 부처도 볼 수 있다.

 Cave 8: 이 석굴은 미완성인체로 남아있다.  지금은 주로 발전 시설을 보관하고 있다.

 Cave 9: B.C 100년 전후에 조성된 석굴로 전기 차이티아 석굴이다.  23개의 기둥이 바치고 있으며 가운데에 3 m 높이의 보존이 잘된 Stupa() 가 있다. 이 석굴의 신전은 크며 벽에는 프레스코화가 가득하다.  그 중에도 보석이 달린 양산을 쓴  붓다가 아주 밝게 그려졌다.

 Cave 10: 이 석굴은 차이티아 석굴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이나 보존 상태가 좋지 않다. 신전에 있는 프레스코 화는 B.C 2세기 소승 불교 시기에 그려진 것이다.  당시에 소승 불교는 붓다를 상징 적으로 그렸다.

홀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Stupa 가 서 있고 이는 초기 불교의 상징 물이다. 천정에는  아치형으로 되었고 나무 서까래가 이어져 있다.

 

원통형 지붕에는 연꽃 위에서 명상하는 붓다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석굴의 안쪽 오른쪽 벽 위로는 이곳의 발견자인 영국군 기병 대장인 <John Smith 1819 April> 라고 새겨져 있다.

 Cave 11:  A.D 400년 간에 조성된 곳으로 비하라 석굴이다. 네 개의 기둥으로 지탱되고 있다.  붓다의 상이 신전에 있다.

 Cave 12,13,30: 3개의 석굴은 A.D 100~200 년간에 조성된 비하라 석굴이다.  평평한 가운데 홀이 있고 3면에 작은 방이 있고, 수도사들의 거주용의 돌 침대가 2개씩 마련되어 있다. 이 석굴은 우기에 승려들의 거처로 사용한 곳으로 보인다.

 Cave 14:  이 석굴은 A.D 600 년간에 조성된 곳으로 13번 석굴 위에 있으며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

 Cave 15: 비하라 굴로 기둥도 없이 조성된 조그만 굴이다.

 Cave 16:  A.D 450년 경에 조성된 곳으로 말발굽 형태의 산 가운데 있다. 바깥 벽에 새겨진 글씨에 의하면 Harisena 왕이 수도승에게 바친다는 것이 새겨져 있다. 중앙 홀은 20 개의 기둥으로 버처지고 있다. 천정에는 난장이, 악사 등이 조각되어 있다.  이 사원은 설법을 하는 커다란 붓다 상이 서 있으나 균형이 맞지가 안는다. 이 바하라 굴에는 죽어가는 공주 라는 프레스코하가 유명하다. 그녀는 붓다의 이복 동생인 Nanda 가 출가하려 하자 아내가 슬픔에 잠기어 죽는다는 설화를 담고 있다.

  Cave 17:  이 석굴은 아잔타에서 가장 상태가 좋은 곳으로 A.D 450 년경에 조성 되었다. 입구에는 7개의 붓다 상이 그려져 있고, 이어지는 회랑에 있는 프레스코 화는 붓다의 초기 화신들에 얽힌 이야기를 그린 것으로 두 남녀가 서로 얼싸 안고 포도주를 마시는 모습이 있다. 회랑을 따라 약 30여 개의 붓다의 전생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특히 붓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아들인 Yasodara Lahula 가 삭발하는 것을 그린 장면과 관능적으로 춤을 추는 여인들의 그림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Cave 18: 이 석굴은 물 저장고로 쓰였던 곳으로 규모가 작다.

 Cave 19:  A.D 600년 전 후에 조성된 곳으로 차이티아 사원으로 돌 건축 기법의 정수로 평가 되는 곳이다. 기둥마다 보살과 명상하는 붓다가 조각되어 있다. 전면에 아치 형태의 입구는 동굴사원의 아름다움을 표시하고 잇다.

 Cave 20~25:  이 석굴 들은 후기 비하라 굴이다. A.D 5~6 세기에 조성 된 것이다.  대부분이 미완성인체로 남아 있다. 이 석굴의 벽화는 알아볼 수 없게 훼손되어 있다. 다만 24 번 굴에서만은 석굴의 조성 방법을 짐작할 수 있는 단서가 남아있다. 미완성인체로 남아있는 기둥, 벽에서 조각의 과정을 유추해 볼 수 있다.

 Cave 26:  A.D 625년 경에 조성된 굴이다. 마지막 차이티야 굴로서 19번 굴보다 크다. 회랑의 천정과 기둥이 붕괴되어 가고 있다.

 실내에는 옆으로 누운 와불 형태의 6 m나 되는 열반(Nirvana)에 들어가는 붓다 상이 조각 되어 있다. 열반에 들어가는 부처 주위로는 제자들과 신도들의 표정이 다양하게 새겨져 있고, 지상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죽음에 대해 탄식하고 신음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조각되어 있다.

 

 

 

 

 

 

 

 

 

 

마침내 붓다는 악마 Mara 의 유혹에도 명상을 계속하며 악마의 손을 물리치고,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것들이 조각되어 있어 마지막 석굴에서 우리도 모든 근심과 걱정을 털어내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석굴 답사를 마친다.

 

 13:30 분이 되어 26번 석굴에서 되돌아와 다시 신발을 찾아 신고 참으로 엄청난 세상을 경험 한 것을 간직하고 내려 온다.

 입구에 하나밖에 없는 레스또랑에서 늦은 점심을 간단한 카레식으로 해결한다.

 14;40분 버스를 타고 다시 기차역으로 간다.  이제 마지막 코스인 Bophal 역으로 간다. 16:00시 경 기차역에 이르니 이곳도 아수라 장이다.

 우리는 트렁크를 가지고 역 구내 계단을 올라 고가를 건너 가서 내려 가야 하니 이것도 문제다.  일 꾼 들이 덤벼드니 흥정이 벌어진다.  그들에게 맡기니, 한 사람이 머리위로2~3, 팔에 걸 처 하나 등 한 사람이 3~5개를 운반 한다.

 

 각양 각색의 복장을 한 인도인들이 짐을 가지고 역구 내에 대기하고 우리도 그 틈에 끼어 있다.

 기차는 예정된 시간을 조금 지나 17:35분에 들어 온다. 우리 부부는 A1 5~6번 좌석 겸 들어 누울 수 있는 칸으로 배정 받는다. 17:50분이 되어 기차는 서서히 출발하여 간다. 트렁크를 의자 밑으로 밀어 넣고 공간을 확보 하여 마주보고 앉아 한 동안 차창 밖으로 인도의 시골 풍경을 감상한다.  기차는 철도 변의 복잡한 빈민들의 주거지를 지나 날이 어두워 지면서 캄캄한 밤에 서서히 덜컹거리며 달려 간다. 마치 우리나라의 60~70년대를 연상하니 마음은 평화롭다.

18:45분이 되어 도시락으로 저녁 식사를 한다. , 국수, 닭 고기, 샌드 위치 등으로  비장의 대한미국 위스키인 참 이슬을 더한다.  이역 만리에서 한 것 마음의 여유를 부려본다.

희한한 인도 식 여행을 즐기면서  우리 들의 열차는 보팔을 향해 어둠을 가르고 나간다.  나는 이층으로 올라가 좁은 공간에 몸을 눕혀 본다. 180 ㎝ⅹ50 의 좁은 공간이면 인간이 누울 수 있다. 고작 70 평생의 희로애락을 마감하면, 이 땅에서 나는 9000 평방㎝ 있으면 누울 자리로 족하다. 죽어서도 이 공간만 차지하면 되는 인생이다?

마침내 기차는 6시간 여 를 달려와 11:50분 보팔 역에 정차 한다. 안내 방송도 없이 어둠 속에 어디를 가는지 궁금한 것이고 우리 외국인들에겐 지나 치기가 쉽다.

다시 트렁크를 인부에게 맡기고 역 구내를 벗어나 나오니 대낮처럼 사람들로 붐빈다. 낮이고 밤이고 사람으로 넘처 나는 인도인가?  다시 버스를 타고 불빛이 희미한 시내를 지나 00:45분이 되어 어둠 속에 언덕에 위치한 Noor Us Sabah. Palace 라는 호텔에 들어오니 아 이제야 아비규환의 상태를 벗어난 듯 마음이 가볍고  상쾌해 진다.

 

 우리 부부는 230호에 들어가니 깨끗하고 격이 높다. 우리는 2시가 되어 겨우 피곤한 몸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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